대북 제재 끌어들인 ‘아베의 속셈’

도쿄 | 김진우 특파원
대북 제재 끌어들인 ‘아베의 속셈’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 정권이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조치에 북한 문제를 끌어들였다. 일본이 한국에 수출한 전략물자가 북한에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을 흘린 것이다. 일본 여론에서 민감한 사안인 북한·안보 문제로 보복조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풀이되지만, 한·일관계 전반에 대한 재조정까지 시야에 둔 위험한 시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 이유로 ‘신뢰 관계 훼손’과 ‘부적절한 사안 발생’을 든다. 특히 아베 총리와 자민당 간부들은 이 ‘부적절한 사안’이 북한이나 대북 제재 이행과 관련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7일 한국의 대북 제재를 언급하면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국제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 무역 관리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군사 전용이 가능한 물품이 북한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고까지 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관방부 부장관은 8일 브리핑에서 “이번 결정의 배경에 부적절한 사안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의 이 같은 대응에는 다목적 포석이 있어 보인다. 우선 북한 문제를 끌어들여 ‘안보상 예외 조치’ 명목으로 경제 보복조치를 정당화하면서 한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다. 일본은 이번 조치가 “세계무역기구(WTO)에 반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2010년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분쟁 당시 ‘환경 보호’를 명분으로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을 규제했다가 WTO에서 패소했다. WTO 협정 21조가 안보를 이유로 한 무역 제재를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점을 노려 ‘북한 관련설’을 끌어들인 것이다. 다음달 군사전용 가능성이 있는 품목에 대해 허가 신청을 면제해주는 ‘화이트(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기 위한 정지 작업 성격도 있다.

‘안보상 예외 조치’ 명목으로
경제 보복 정당성 확보하고
‘논점 회피’로 여론전 노려

여론전을 노린 측면도 있다. 이번 조치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자유무역 역행’ 등의 비판이 일고 있다. 여론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북한·안보 문제를 끌어들여 ‘논점 회피’ 효과를 노렸을 법하다. TBS방송 계열인 JNN이 6~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이번 조치가 ‘타당하다’는 응답이 58.4%로 ‘타당하지 않다’(24.0%)보다 2배 이상 많았다.

기저엔 ‘우방국 아니다’ 인식
한·일관계 재조정 포석도

기저에 한국의 대북 정책에 대한 불신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부적절한 사안’이라면서도 내용은 밝히지 않고 한국의 대북 제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한국은 안전보장상 이해를 같이하지 않기 때문에 ‘우호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가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일각에선 향후 한·일관계의 재조정까지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은 2017년까지 외교청서에 한국을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고 표현했지만, 지난해 이 표현을 삭제했고 올해엔 “한국 측의 부정적 움직임이 있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고 기술했다.

이런 관점에서 화이트 국가에서의 한국 배제는 안보 환경변화 가능성 측면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정진 쓰다주쿠(津田塾)대 교수는 “일본은 향후 한국을 배제하고 독자적인 대북 정책을 취하거나 한국의 전략물자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과시할 수 있다”며 “이번 일이 미국 묵인하에 재무장을 노리는 일본이 한·일관계를 재편하겠다는 밑그림을 그리는 빌미가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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