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만 있으면 뭐해?” 접종 인프라 없는 미국·인식 부족한 유럽

장은교·김향미 기자

지난 달 8일(현지시간) 영국을 시작으로 36개국이 코로나19 백신접종을 진행하고 있다. 접종 전엔 물량확보가 중요했지만, 지금부터는 접종률이 관건이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 등 전문가들은 집단면역이 이뤄지려면 최소 60~90%까지 접종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최대한 접종률을 높이는 게 중요하지만, 정치적 상황과 문화적 특수성이 접종계획에 영향을 미치면서 나라별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접종을 미리 준비하고 중앙정부가 강하게 통제한 이스라엘 등은 높은 접종률을 보이는 반면, ‘접종인프라’가 미비한 미국은 목표치에 훨씬 못미치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은 백신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스라엘의 한 의료진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준비하고 있다. 텔아비브|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의 한 의료진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준비하고 있다. 텔아비브|AFP연합뉴스

이스라엘, 군대까지 동원해 가장 빠르게 접종... 팔레스타인은 제외돼 비판

영국 옥스퍼드대 분석사이트 ‘아워 월드 인 데이터’ 자료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백신접종이 이뤄지고 있는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지난 달 20일 접종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열흘만에 전체 인구의 10% 이상이 백신 1차 접종을 끝냈다. 1일 기준으로 인구 100명당 11.55명이 백신을 맞은 셈이다. 이스라엘 언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접종률에서 앞서 나갈 수 있는 이유는 디지털로 관리된 지역기반 통합의료서비스 시스템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율리 에델스타인 보건장관은 지난 1일 “이스라엘은 ‘얼리버드’처럼 제약회사들과 빠르게 백신계약을 진행했다”며 “미리 접종을 준비한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접종을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정확한 계약가격과 물량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에델스타인 장관이 (우리가) 조금 더 비싸게 계약했더라도 (봉쇄를 풀고) 경제활동을 한 주 더 먼저 재개하는 것보다도 가치있는 일일 것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보건부는 “하루 15만명씩 접종이 진행되고 있고, 다음 주 텔아비브 광장에 대형 접종센터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국 언론 텔레그래프는 “이스라엘 정부가 코로나를 ‘전쟁’처럼 여기며 군대까지 동원해 접종을 홍보하고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백신접종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부패스캔들로 기소돼 정치적 위기를 겪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입지도 올라갔다. 네타냐후 총리는 직접 아랍민족 마을을 다니며 백신접종을 권장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을 향한 백신 정책을 두고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스라엘 정착촌이 있는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통제 속에 살고 있는 약 500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은 백신 접종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정부는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백신 공급을 요청하지 않았고, 이스라엘 국민에게 맞출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면 팔레스타인에도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스라엘 내 감옥에 있는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에 대한 접종도 미뤄진 상태다. 미들이스트아이에 따르면 이스라엘 공안부는 지난달 26일 ‘교도소 내 수감자들이 백신 접종을 받을 것’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현 단계는 교도소 직원만 접종 대상”이라며 정치범들에 대해 백신 접종을 허가 없이 시작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스라엘에서 ‘정치범’은 대다수가 팔레스타인인들이다.

팔레스타인 당국은 백신 공동 구매·배포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서 백신을 공급받을 예정이다. 언제 백신을 공급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데다, 콜드체인(저온유통) 미비는 어떻게 해결할지도 문제로 꼽힌다. AP는“(이웃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백신 경쟁’의 결과가 세계 어느 곳보다 극명하게 드러난 곳”이라고 했다.

국가별 코로나19 백신 접종상황(인구 100명당 접종률). 아워 월드 인 데이터 홈페이지 캡쳐

국가별 코로나19 백신 접종상황(인구 100명당 접종률). 아워 월드 인 데이터 홈페이지 캡쳐

미국, 접종인력·인용 미비 “재앙 수준”

미국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백신접종을 시작했지만, 아직 접종률이 1%를 겨우 넘었다. 많은 물량을 빨리 확보하고도 백신접종이 늦어지는 이유는 시스템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백신접종을 진행할 인력과 비용 수급 등 ‘접종 인프라’를 미리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AP는 지난 달 30일 미국 플로리다주 보니타 스프링스의 한 접종센터에서 노인들이 장시간 줄을 서서 대기한 상황을 전했다. 한 69세 여성은 “14시간을 줄서서 기다렸고, 동트기 전에는 기다리던 사람들끼리 싸움이 일어날뻔 했다”며 “접종을 대기하는 것 자체가 슈퍼전파행사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 인텔리젠서는 백신 접종 상황을 “재앙”이라고 표현하며 “ “(이런 속도라면) 배송 보관 중인 백신의 유통기한이 1월 말에 만료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 예방접종관리자협회는 “백신투여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에 80억 달러(약 8조원) 이상이 필요하다고 경고했지만,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전 선거용으로 백신 개발을 압박했지만, 접종을 위한 준비는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NBC는 “이런 속도라면 전국민이 백신을 맞는 데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달 31일 “취임하는대로 접종속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로마의 한 접종센터에서 2일(현지시간) 노인들이 코로나19 백신을 맞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로마|AP연합뉴스

이탈리아 로마의 한 접종센터에서 2일(현지시간) 노인들이 코로나19 백신을 맞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로마|AP연합뉴스

유럽, 백신 거부감에 물량부족까지

유럽은 정부가 백신에 거부감을 보이는 시민들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이 전례없이 빠르게 승인되고 보급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시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 12월 여론조사에서 “백신을 맞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약 40%에 그쳤다. 50%였던 10월 여론조사 때보다 낮아진 수치다. 비슷한 조사에서 영국의 응답률은 77%, 미국은 69%로 조사됐다. 전염병 전문가들과 야당은 정부가 시민들 눈치를 보느라 백신접종을 강하게 밀어부치지 못해, 전염병위기를 더 키우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백신 접종 때 ‘서면동의’를 의무화하고 있다. 27일 시작했으나 30일까지 겨우 332명이 백신을 맞았다. 프랑스의 유전학자 악셀 칸은 유로1 인터뷰에서 “정부의 백신 전략은 지금과 같은 위험한 상황에선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달 31일 연설에서 “백신접종은 의무가 아니지만, 과학과 이성을 믿어달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역시 국민의 3분의 1 정도가 백신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의사 등 보건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출했다. 이탈리아 언론 안사통신은 지난 달 30일 “의사협회가 예방접종에 대해 잘못된 주장을 퍼뜨린 의료진 10명에 대해 징계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EU)의 대응 자체가 느리고 수동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독일언론 도이체벨레는 “유럽의약품청(EMA)는 지난 달 21일에야 백신을 승인하고 주문도 적게 했다”며 “독일은 물량이 부족해 예방접종을 시작하고도 며칠 뒤에 접종센터가 일시적으로 폐쇄되는 일까지 발생했다”고 밝혔다. 화이자와 함께 백신을 개발한 바이오엔테크의 우그르 사힌 대표도 독일언론 슈피겔 인터뷰에서 “백신 승인이 느려저 구멍이 생기고 있다”며 “EU의 대응이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영국 런던에선 지난 2일 “백신을 맞으면 불임이 되고, 정부의 감시를 받게 된다”며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이 거리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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