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에 처한 ‘귀여운 악마’를 구하려던 인류의 노력이 주변 펭귄 군락에는 심각한 타격을 입힌 것으로 나타났다. 섬으로 옮겨진 태즈메이니아 데빌이 새로운 거주지에 적응하면서, 원래 섬에 거주하던 펭귄들의 씨를 말렸기 때문이다.
가디언은 21일(현지시간) 10년 전 태즈메이니아 동남부의 마리아섬에 서식하던 ‘요정펭귄(쇠푸른펭귄·꼬마펭귄)’ 3000마리가 종적을 감췄다고 보도했다. 꼬마펭귄은 성체의 키가 30~33㎝에 불과한 현존하는 펭귄 중 가장 크기가 작은 펭귄으로, 주로 호주 남부 해안에 서식한다.
116㎢의 규모의 작은 섬에 2012년 태즈메이니아 데빌이 유입된 후로 꼬마펭귄의 개체수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처음 28마리였던 마리아섬의 태즈메이니아 데빌은 4년만에 개체수가 100마리까지 증가했다. 태즈메이니아 데빌은 작은 개 정도의 체구를 가졌지만, 현존하는 육식성 유대류 중에선 가장 큰 동물이다. 이들은 빠르게 펭귄을 사냥했고, 꼬마펭귄 3000마리는 10년도 안돼 자취를 감췄다.
태즈메이니아 데빌을 마리아섬으로 보낸 것은 인간이었다. 호주 정부와 태즈메이니아 주정부는 멸종위기에 처한 태즈메이니아 데빌을 구하기 위해 섬 이주를 진행했다. 1990년대 중반 태즈메이니아 데빌 사이에서는 안면종양이 전염병처럼 퍼졌다. 안면과 목에 종양이 번지는 병이었는데 치사율이 매우 높았다. 서로의 얼굴을 물어뜯으며 싸우는 태즈메이니아 데빌의 습성 탓에 병은 더 빠르게 퍼졌다. 당시 14만 마리에 이르던 태즈메이니아 데빌의 개체수는 2만 마리까지 감소했다. 2008년 국제자연보전연맹은 태즈메이니아 데빌을 레드리스트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다. 이에 호주 정부는 ‘세이브 더 태즈메이니아 데빌’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각지의 동물원과 일부 서식지로 태즈메이니아 데빌을 이주시키는 사업을 진행한 것이다.
환경단체 버드라이프 태즈메이니아의 연구원 에릭 뵐러는 BBC에 “국립공원이자 새들의 피난처 역할을 하는 섬에서 펭귄 3000마리를 잃은 것은 ‘큰 타격’”이라며 “인간들이 의도적으로 혹은 우연히 해양섬에 포유동물을 들여올 때마다 항상 같은 결과가 있었다. 한 종 이상의 조류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태즈메이니아 주정부 역시 ‘세이브 더 태즈메이니아 데빌’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 부터 이 가능성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주정부는 육식성을 가진 태즈메이니아 데빌이 펭귄과 슴새 개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지난해 한 연구에 따르면 태즈메이니아 데빌은 마리아섬의 슴새 군락도 파괴했다. 학술지 바이올로지컬 컨저베이션에 실린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멸종위기 육식동물의 보존을 위한 거주지 이전은 해당 종의 보호와 원래 거주하던 종이 받을 잠재적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정부는 꼬마펭귄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태즈메이니아 데빌 구하기를 우선하기로 했다. 태즈메이니아 주정부 대변인은 외신 기자들에게 “과학과 우선순위를 고려해 프로그램을 조정하겠다”며 “마리아섬은 테즈메이니아 악마 개체수를 복원하고 유지하는 데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