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값 70% 폭등…또 ‘아랍의 봄’ 기폭제될까

정원식·박은하 기자
지난 2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에서 한 노동자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격이 급등한 이집트 전통 빵 ‘바라디’를 굽고 있다. 카이로 | AP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에서 한 노동자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격이 급등한 이집트 전통 빵 ‘바라디’를 굽고 있다. 카이로 | AP연합뉴스

전쟁 탓 우크라 밀 수출 막혀
아랍권 식량 위기 ‘직격탄’
“왜 우리가 비싼 대가 치르나”
수단·이라크선 항의 시위도
유럽 등 대체 수입처 물색

“왜 우리가 이 전쟁으로 인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식량 위기가 중동과 아프리카 등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지역의 국가들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식량 가격 폭등이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져 2010년 ‘아랍의 봄’으로 알려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던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아랍 국가들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1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아랍 지역의 식량 안보와 정치적 안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가 생산하는 밀의 절반이 중동 지역으로 수출되는데 그 수출이 막혔기 때문이다. 러시아도 세계 최대의 밀 수출 국가다.

전쟁 발발로 우크라이나산 밀이 시장에 풀리지 못하자 전 세계적으로 밀 가격은 20% 이상 올랐다. 식생활에서 밀 비중이 큰 아랍권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3월 이후 레바논에서는 가게에서 밀가루가 사라지고 빵 가격이 70% 올랐다. 대학강사 파디아 하미에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슈퍼마켓이 기본적인 생필품을 사재기했다가 비싼 값에 되팔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부터 레바논 경제는 고질적인 금융위기와 식량난에 시달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밀 수입량의 90%를 의존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격을 받으면서 레바논 서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국가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밀 수입량의 80% 이상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들여오고 있는 이집트에서는 전쟁 발발 이후 3주 동안 빵 가격이 25% 상승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대한 밀 수입 의존도가 이집트와 비슷한 수단도 빵 가격이 50% 올랐다.

여파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까지 미치고 있다. 말라위에서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빵과 식용유 가격이 평균 50% 상승했다. 말라위에 사는 파트사니 피리는 “이 전쟁은 우리와 관련이 없고 우리가 그렇게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우간다에서는 비누, 설탕, 소금, 연료 가격이 급등하는 등 생필품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다. 캄팔라의 가게 점원 리타 카바쿠(41)는 AFP에 “4인 가족이 음식과 기타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평균 5000실링을 쓰지만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 지난 14일 수단 하르툼에서는 수천명이 빵 가격 인상과 군부 지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지난 9일에는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에서 500여명이 빵과 식용유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중동·아프리카 지역 아랍 국가에서 식량 가격은 정치적 폭발력이 큰 사안이다. 2007~2008년 주요 곡물 수출국가의 가뭄과 에너지 가격 인상 등으로 서민들의 생활고가 악화하면서 이 지역 아랍 국가에서는 2010년 말 ‘아랍의 봄’이 촉발된 바 있다. 그 여파로 튀니지, 이집트, 예멘에서는 정권이 교체됐다. 수단에서도 2019년 빵 가격 급등에서 촉발된 반정부 시위로 오마르 알 바시르 당시 대통령이 축출됐다.

아랍 국가들은 유럽에서 새 밀 수입처를 물색하고 밀가루, 파스타, 콩에 대한 배급과 수입 제한 조치를 취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레바논은 모든 밀가루 공급을 빵 생산으로 돌렸다.

세계 최대 밀 수입국인 이집트는 21일 빵 가격을 1㎏당 11.50이집트파운드(약 768원)로 고정시켰다. 이집트는 또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국 농민들이 생산하는 밀 구입량을 지난해보다 50% 이상 늘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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