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사진입니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자

김창길 기자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들의 자녀들이 담요를 덮고 있다. 3월 4일. / AP Evgeniy Maloletka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들의 자녀들이 담요를 덮고 있다. 3월 4일. / AP Evgeniy Maloletka

“빌어먹을!”

어린아이의 죽음을 세 번이나 지켜봤던 이의 반응 치고는 강도가 높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3월5일,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보도사진가 예브게니 말로레카(Evgeniy Maloletka)의 짧은 메모다. 폭탄 파편을 맞아 의식을 잃은 아이들이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한 병원에 실려 왔다. 축구를 하던 16세 소년 일리야(Iliya), 유니콘이 그려진 바지를 입고 있던 여섯 살 소녀, 하늘색 담요를 덮고 있던 18개월의 아기 크릴(Krill). “우리가 전쟁을 알기나 할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흘째에 기록된 사진가의 말은 고민일까, 아니면 울분일까?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미디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전쟁의 사진들과 이미지를 살펴봤다.

CNN 홈페이지 캡쳐

CNN 홈페이지 캡쳐

우크라이나의 하늘에는 ‘아이언돔(Iron Dome, 미사일 방어체계)’이 없었다. 땅거미가 채 가시기 전, 새벽녘의 몽환적인 하늘빛은 미사일 포격으로 사라졌다. 지난 2월24일이었다. CNN 방송 모니터에는 수도 키이우(키예프)의 하늘로 치솟는 검붉은 연기가 나타났다.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것이다. 방송 이미지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으로 알려졌다. 국내 일간지 대부분은 이 장면을 1면 사진으로 선택했다.

미디어는 전쟁의 시작을 어떻게 알렸을까? 지난해 5월 또다시 불붙었던 중동의 화약고가 떠올랐다. 너무 빈번하게 발생해 웬만해선 쳐다보지 않았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무력 충돌이지만, 국내의 모든 일간지는 1면에 사진을 실었다. 낯선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리듬체조의 리본처럼 부드럽게 구불거리는 주황빛 광선들이 예루살렘의 밤하늘 위로 뻗어나갔다.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발사한 로켓 ‘카삼’을 요격하는 장면이었다. 다소 긴 노출 시간으로 찍는 불꽃놀이 사진과 유사한 매뉴얼로 촬영된 이미지는 색다른 구경거리였다. 살생의 장면이 은폐됐기에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없는, 거실 소파에 기대어 편안히 관람할 수 있는 전쟁 이미지였다.

실전에 모습을 드러낸 아이언돔의 방어율이 카메라를 통해 성공적으로 기록됐다. 타인의 고통이 삭제된 아이언돔 사진을 지켜본 한국은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을 방어할 한국형 아이언돔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군사 대국 러시아와 갈등을 빚고 있었던 우크라이나는 아이언돔을 수입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접촉했다. 이스라엘은 우크라이나의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러시아와 날을 세우기 싫었을 것이다.

지난 2월 24일 새벽 4시30분 러시아 침공이 시작됐다. 다음 날 발행된 2월 25일자 파이낸셜타임즈에 실린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 사진(키이우, 왼쪽 위), 같은 날 뉴욕타임즈에 실린 AFP 아리스 메시니스 기자의 사진(하르키우, 왼쪽 가운데), 25일자 뉴욕타임즈와 파이낸셜타임즈에 실린 AP 에밀리오 모레나티의 사진(키이우, 아래), 지난 3월 4일자 파이낸셜타임즈에 실린일 이브게니 말로레타의 사진(마리우폴, 가운데 위), 5일자 뉴욕타임즈에 실린 린다 아다리오의 사진(키이우, 가운데), 11일자 뉴욕타임즈와 파이낸셜타임즈에 실린 이브게니 말로레타의 사진(마리우폴, 오른쪽).

지난 2월 24일 새벽 4시30분 러시아 침공이 시작됐다. 다음 날 발행된 2월 25일자 파이낸셜타임즈에 실린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 사진(키이우, 왼쪽 위), 같은 날 뉴욕타임즈에 실린 AFP 아리스 메시니스 기자의 사진(하르키우, 왼쪽 가운데), 25일자 뉴욕타임즈와 파이낸셜타임즈에 실린 AP 에밀리오 모레나티의 사진(키이우, 아래), 지난 3월 4일자 파이낸셜타임즈에 실린일 이브게니 말로레타의 사진(마리우폴, 가운데 위), 5일자 뉴욕타임즈에 실린 린다 아다리오의 사진(키이우, 가운데), 11일자 뉴욕타임즈와 파이낸셜타임즈에 실린 이브게니 말로레타의 사진(마리우폴, 오른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다음으로 러시아의 침공을 알린 것은 AFP 사진기자 아리스 메시니스(Aris Messinis)였다. 그는 폭격당한 하르키우 군용 비행장에서 피어 오르는 검은 연기를 포착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 이미지로 지면을 제작했던 경향신문은 신뢰할 만한 설명이 첨부된 아리스 메시니스의 사진으로 1면 사진을 교체했다.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하자 분쟁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사진기자들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었다. 퓰리처상과 세계언론사진상(월드프레스포토) 수상 경력의 스페인 출신 에밀리오 모레나티(Emilio Morenatti) AP 사진기자는 개전 다음날인 지난 2월25일 수도 키이우의 폭격당한 아파트 앞에서 울고 있는 여성 나탈리(Natali Sevriukova)를 찍은 사진을 통신망에 올렸다. 2009년 ‘탈레바니스탄’ 연작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여성 프리랜서 사진기자 린지 아다리오(Lynsey Addario)도 뉴욕타임스 보도를 위해 우크라이나에 들어갔다. 그녀의 인스타그램에는 러시아 군인 칼리니시코프가 만든 돌격 소총을 들고 있는 네 명의 여성을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러시아의 침공 나흘 만이다. 전선으로 떠나는 트럭에 승차한 한 여성은 두려움을 감추지 못해 흐느끼고 있다(나는 우크라이나의 참상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계속 주목하기를 바라면서 사진기자들의 영문 이름을 적는다).

모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우크라이나 사진기자 두 명이 있다. AP 사진기자 므스티슬라프 체르노프(Mstyslav Chernov)와 예브게니 말로레카는 개전 하루 전 우크라이나의 남부 항구 도시 마리우폴을 향해 출발했다. 외신기자 대부분은 수도 키이우로 들어갔지만, 현지인 사진기자들은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마리우폴이 맹폭을 당할 것을 예상했다. 그들은 러시아의 침공 1시간 전인 새벽 3시30분에 마리우폴에 도착했다.

2월 27일 폭탄 파편에 맞은 6살 소녀가 마리우폴 병원으로 응급 이송되고 있다. / AP Evgeniy Maloletka

2월 27일 폭탄 파편에 맞은 6살 소녀가 마리우폴 병원으로 응급 이송되고 있다. / AP Evgeniy Maloletka

“어서 옮겨! 우린 할 수 있어!” 구급차에 실려 온 여섯 살 소녀를 의료진이 황급히 수술실로 옮겼다. 간호사는 주사를 놓고 의사는 산소호흡기를 달았다. 심폐소생술이 시작됐다. 그러나 박동이 없다. 흐느끼는 간호사. 파란 수술복을 입은 의사가 므스티슬라프 체르노프의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푸틴에게 이 장면을 보여줘!”

아이들의 희생은 끝나지 않았다(나는 사진기자들의 이름과 더불어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 이름들도 적고 있다). 지난 3월2일 학교 근처에서 축구를 하던 16세 소년 일리야가 병원에 옮겨졌으나 숨을 거뒀다. 예브게니 말로레카는 피가 묻은 소년의 운동화와 오열하는 아빠 세르히(Serhii)를 사진에 담았다. 이틀 뒤, 마리나(Marina)의 18개월 된 아들 크릴도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3월 4일. 18개월 아기 크릴을 살리지 못한 한 의료진의 모습. / AP Evgeniy Maloletka

3월 4일. 18개월 아기 크릴을 살리지 못한 한 의료진의 모습. / AP Evgeniy Maloletka

러시아의 맹폭으로 마리우폴의 기반시설들은 일찌감치 파괴됐다. 수도, 가스, 전기, 통신 등 생존에 필요한 물품들의 수명도 줄어들고 있었다. 사진기자들이 사용하던 슈퍼마켓 전화선이 끊어지자 경찰이 비상 통신선을 제공했다. 마리우폴 병원의 의료진은 응급의료장비 가동을 위한 발전기를 사진기자들에게 내놓았다. 카메라를 충전해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계속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3월9일 러시아는 산부인과 병원을 폭격했다. 예브게니 말로레카는 얼굴에 상처가 난 만삭의 임신부 마리아나 비셰기르스키야(Mariana Vishegirskaya)가 아수라장이 된 병원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을 찍었다. 허벅지에 상처를 입고 이송되는 임신부도 있었다. 들것에 실린 임신부는 만삭의 배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3월 9일 부상당한 만삭의 임산부가 들것에 실려 이송되고 있다. / AP Evgeniy Maloletka)

3월 9일 부상당한 만삭의 임산부가 들것에 실려 이송되고 있다. / AP Evgeniy Maloletka)

“놀라운 사진입니다.” “당신의 사진, 고맙습니다.”

키이우의 상황을 취재 중이던 린지 아다리오와 파비오 부치아렐리(Fabio Bucciarelli)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예브게니 말로레카를 응원했다. 대피하는 임신부의 사진을 알아본 것은 현장의 사진기자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의 주요 일간지들은 부상당한 임신부가 들것에 실려 대피하는 예브게니 말로레카의 사진을 1면에 실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언론들은 러시아의 무차별 폭격을 비난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병원을 폭격한 사실이 없다며 부인했다. 영국 주재 러시아대사관은 다음날인 10일 트위터를 통해 임신부 마리아나 비셰기르스키야의 사진이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대사관은 “정말 사실처럼 분장했다. 이 여성은 뷰티 블로그도 잘 운영하고 있다”며 화장품을 들고 있는 비셰기르스키야의 사진을 트위터에 첨부했다.

3월 9일 만삭의 임산부 마리아나가 피신하고 있다. / AP Evgeniy Maloletka

3월 9일 만삭의 임산부 마리아나가 피신하고 있다. / AP Evgeniy Maloletka

AP 에디터의 짧은 메시지가 두 명의 사진기자에게 전달됐다. ‘산부인과 병원의 생존자들을 찾아볼 것.’ 둘은 이틀 전 폭격당한 병원으로 되돌아갔다. 들것에 실려 이송됐던 이름 모를 임신부는 숨을 거두었고, 러시아가 연출된 사진이라고 지목한 비셰기르스키야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 옆에는 이불 대신 스웨터를 덮은 갓난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아기의 이름은 베로니카(Veronika)다. 기독교에서 전설의 성녀로 등장하는 이의 이름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대표적 SNS인 페이스북, 트위터에 이어 인스타그램도 차단하고 있다. 예브게니 말로레카를 비롯한 사진기자들이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담은 사진들을 전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의 모회사인 메타는 폭력적인 내용의 게시물 유포를 금지하지만, 러시아의 만행에 대한 게시물은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러시아에서 SNS가 차단되자 폴란드 프로그래머들은 ‘스쿼드303’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차단된 소식망을 뚫고 있다. 스쿼드303는 2000만개의 러시아 국민 휴대전화 번호와 1억4000만개의 e메일 주소를 제공한다. 우크라이나의 참상을 러시아 국민들에게 알리자는 것이다.

3월 11일 마리아나가 베로니키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다. / AP Evgeniy Maloletka

3월 11일 마리아나가 베로니키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다. / AP Evgeniy Maloletka

예브게니 말로레카와 므스티슬라프 체르노프의 사진과 동영상은 15일 이후로 업로드되지 않고 있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3주가 지나는 시점이었다. 두 명의 우크라이나 사진기자도 결국 사망한 것일까? 전쟁을 기록하던 미국 다큐멘터리 감독 브렌트 르노(Brent Renaud)에 이어 폭스뉴스 영상기자 피에르 자크르제우스키(Pierre Zakrzewski)가 취재 도중 사망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러시아가 우리를 사냥하고 있었다!”

지난 21일 AP는 두 사진기자의 생존을 알렸다. 므스티슬라프 체르노프는 그의 동료와 함께 마리우폴을 탈출했다며 그간의 사정을 본사에 전했다. 그들이 머물던 마리우폴의 병원에는 총기를 소지한 괴한이 복도를 배회하고 있었다. 기자들을 색출하기 위해서였다. 두 명의 기자는 의사가 건네준 흰 가운을 입고 의료진으로 위장했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 말았다. 열 명 남짓한 군인들이 15일 새벽 병원에 쳐들어왔다. “기자들 어딨어?” 다행히 그들은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파란색 완장을 차고 있었다. “우리는 당신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왔소.” 정보가 누설된 것일까? 때마침 포격과 총격이 쏟아졌다. 병원 안에 머무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군인들은 두 명의 기자를 병원 밖으로 탈출시켰다.

3월 12일. 파란 완장을 찬 마리우폴의 우크라이나 방위군. / AP Mstyslav Chernov)

3월 12일. 파란 완장을 찬 마리우폴의 우크라이나 방위군. / AP Mstyslav Chernov)

기자 구출 작전의 이유는 하나였다. 우크라이나는 이들 기자가 사망하거나 적군의 포로가 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 그들이 생존해야만 마리우폴의 진실이 유지될 수 있다. 기자 구출 작전에 가담한 경찰이 그들에게 말했다. “러시아군에게 잡히면 당신들은 카메라 앞에 서게 될 거요. 푸틴은 어떻게 해서든 당신들이 찍은 사진과 영상이 가짜라고 말하게 할 게 뻔하오. 그렇게 되면 당신들이 마리우폴에서 한 모든 일과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단 말이오.”

두 명의 사진기자가 목숨을 걸고 남긴 것은 러시아의 만행에 대한 시각적 증거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쟁의 희생자라는 두루뭉술한 진술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고통을 기록했다. 그것은 아마도 AP 에디터의 말처럼 그들이 외국인이 아니라 현지인 사진기자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들의 사진에는 다른 외신기자들이 포착한 타자가 느끼는 연민의 감정보다는 전쟁 피해 당사자의 고통과 분노, 그리고 전쟁에서 이기리라는 희망이 담겨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이름을 다시 적어본다. 축구를 좋아했던 16세의 일리야, 유니콘 바지를 입고 있던 여섯 살 소녀, 하늘색 담요에서 잠든 18개월의 아기 크릴. 살아남은 생명들의 이름도 적어본다. 무차별 폭격에서도 이 세상에 태어난 마리아나 비셰기르스키야의 딸 베로니카, 카테리나 수하로코바(Kateryna Suharokova)의 아들 마카르(Makar).

2월 28일 카테리나 수하로코바가 그녀의 아들 마카르에게 입맞춤하고 있다. / AP Evgeniy Maloletka

2월 28일 카테리나 수하로코바가 그녀의 아들 마카르에게 입맞춤하고 있다. / AP Evgeniy Maloletka

나는 지금 카테리나 수하로코바가 마카르의 이마에 입맞춤하는 사진을 보고 있다. 예브게니 말로레카는 아이들의 죽음을 목격하기 전, 어두운 지하 병실에서 태어난 신생아 마카르를 만났다. 그가 찍은 사진은 수하로코바와 마카르이지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이다. 그녀가 기자에게 말했다. “모든 게 잘되겠죠(I believe that everything will be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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