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가족 찾아···” 접경지대 차량 행렬, 위험 무릅쓰고 고향 가는 우크라 난민들

바르샤바·프셰미실(폴란드)|박용하 기자

폴란드 바르샤바·프셰미실 현지 르포

역대 최악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위기

18일(현지시간)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접경지대인 메디카에서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도로 위에 차량들이 길게 행렬을 이루고 있다. 프셰미실 | 박용하 기자

18일(현지시간)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접경지대인 메디카에서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도로 위에 차량들이 길게 행렬을 이루고 있다. 프셰미실 | 박용하 기자

지난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의 접경지대 메디카에선 기나긴 차량들의 행렬을 볼 수 있었다. 전쟁터가 된 우크라이나를 탈출하는 이들은 아니었다. 헤어진 가족들과 그리운 집을 찾아 위험한 귀성길에 오른 우크라이나인들의 행렬이었다.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도로의 통행량은 최근 하루 2만~4만건으로 늘어 탈출로의 통행량을 앞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폴란드에서 만난 한 우크라이나인은 “정부는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말라 하지만 그래도 가고 싶다는 것이 우리 모두가 느끼는 감정”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곧 두 달째를 맞는다. 이번 전쟁은 짧은 기간에 약 500만명에 달하는 실향민들을 양산하며 금세기 최악의 난민 위기로 기록될 전망이다. 경향신문은 지난 16일부터 일주일간 우크라이나의 인접국 폴란드를 찾아 우크라이나 난민 위기의 현재를 살펴봤다. 270만명에 달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유입된 폴란드는 전쟁 초반의 혼란을 벗어나 다소 안정을 찾았지만, 난민들과의 공존을 위한 본격적인 고민은 이제 시작되고 있었다.

■난민 유입 줄어들고 귀성 행렬 증가

지난달초 하루 14만명 이상의 난민들이 밀려오던 메디카 일대는 현재 어느 정도 차분함을 되찾았다. 난민들의 유입이 하루 1만7000명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비정부기구(NGO) 자원봉사자 여럿이 소수의 난민들을 환대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탈출하는 난민들보다 우크라이나에 들어가는 차량들이 이제는 더 눈에 띄었다. 각종 가재도구를 차 안에 쌓아둔채 고향에 향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의 표정에서는 고단함이 묻어났다.

메디카에는 140여개에 달하는 NGO들의 캠프가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유입되는 난민들의 수는 줄었어도 요즘 나오는 이들은 전쟁 참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이라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이 자원봉사자들의 설명이다. 심리치료사로 자원봉사를 나온 줄리아(42)는 “우크라이나에서 자녀와 함께 나온 어머니들에게 말을 건네면 바로 울음이 터지곤 한다”라며 “아이들도 심리적으로 크게 긴장돼 있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줄어든 난민들의 유입은 주요 도시의 임시 거주시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바르샤바 내의 주민체육시설 ‘아레나 우루시노프’에는 비어있는 자리들이 눈에 띄었다. 이 곳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시설 전체를 난민들의 단기 숙소로 제공해왔다. 2주 전까지만 해도 300명이 넘는 난민이 있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이들은 100명 미만이다.

국경과 단기시설에서 자리를 비운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이 장기화되자 새로 정착할 행선지를 찾아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안드레아스 키르히호프 유엔난민기구 공보관은 “전쟁 초반에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곧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국경에서 멀리 떠나지 않으려 했다”며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며 이들은 바르샤바나 크라쿠프 등의 대도시로 향했고 독일과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바르샤바 중앙역 등 폴란드 주요 도시의 교통 거점에는 여전히 난민들이 많았다. 이들은 역사 바깥에 마련된 대규모 간이식당에서 배고픔을 달래고, 셔틀버스를 이용해 인근 생활시설로 이동했다. 역안에서 만난 한 자원봉사자는 “그전에는 키이우 등에서 오는 난민들이 많았는데 이젠 여러 지역에서 들어오고 있다”라며 “여기 온 이들은 주로 북쪽의 대규모 시설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270만명에 달하는 우크라이나인들과의 동거에도 폴란드의 민심은 따뜻했다. 바르샤바 중앙역에는 이날 10여명의 폴란드 시민들이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노란색과 푸른색으로 염색한 꽃다발을 들고 난민들을 격려했다. 인근의 자코드니아 터미널 2층에 마련된 여성과 유아들의 임시 거주시설에도 인형 옷을 입은 폴란드 아이들이 방문해 우크라이나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폴란드 정부도 난민들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이들 난민에게 최대 18개월 동안의 체류를 허가했으며 사회보장번호인 PESEL번호를 부여해 노동시장과 의료, 교육 등의 제도적 혜택을 받게 했다. 국영방송 앵커들은 우크라이나 깃발을 형상화한 리본을 가슴에 단채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폴란드·우크라이나의 접경 지대 메디카에서 세워져 있던 한 비정부기구 캠프 내부의 모습. 프셰미실 | 박용하 기자

지난 18일(현지시간) 폴란드·우크라이나의 접경 지대 메디카에서 세워져 있던 한 비정부기구 캠프 내부의 모습. 프셰미실 | 박용하 기자

지난 16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자코드니아 터미널 내 벤치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쉬고 있다. 바르샤바 | 박용하 기자

지난 16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자코드니아 터미널 내 벤치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쉬고 있다. 바르샤바 | 박용하 기자

■전쟁 장기화에 긴장하는 폴란드

다만 폴란드 내에서는 최근 장기화된 난민 사태에 대한 긴장감도 감지된다. 짧은 기간 동안 폴란드 인구의 7%에 달하는 난민들을 감당하게 되면서 기존의 주거와 의료, 교육 지원들이 버텨낼 수 있을지가 사태 대응의 관건이 됐다.

특히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거처를 제공한 숙박시설들은 조만간 있을 정부의 지원금 중단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그간 숙박을 제공한 우크라이나인 한 명당 매달 1200즈워티(약 35만원)의 지원금을 정부로부터 보조받았으나 이는 최대 60일로 한정됐다. 오는 24일 이후부터는 지원금 중단에 따른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바르샤바 외곽 소비에니아의 한 호텔 관계자도 지원금 중단 문제를 걱정했다. 정부 지원금과 민간 후원, 호텔 자구적인 노력으로 130여명의 난민들을 돌봤으나 보조금이 없어지면 운영을 지속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호텔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거주자들을 다른 시설로 보내야 하는데 마땅한 곳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지역당국에서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이곳의 한 우크라이나인은 “만약 여기 있을 수 없게 되면 나는 영국에 가서 일을 찾아볼 것”이라며 “같이 나온 어머니는 여기 남아있겠다는 입장이라 서로 헤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폴란드 사회가 재정 지출을 최소화하려면 취업을 통해 난민들을 자립시켜야 한다. 폴란드는 그간 청년층 노동자들 다수가 국외로 빠져나가 일자리가 적지 않게 비어있다. 하지만 난민이 급증해 구인자와 구직자간의 불일치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우크라이나 난민들 중에는 아이들과 노약자가 많기 때문이다. 일할 수 있는 여성들도 언어적인 장벽이 있다.

현재 일부 난민들은 언어장벽이 덜한 업종을 중심으로 생계전선에 나서고 있다. 16일 바르샤바 자코드니아 터미널의 임시 거주시설에서도 낮에는 엄마들이 일터에 나가 자리를 비웠고, 주로 아이들이 남아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 곳을 지키던 자원봉사자는 “일하는 엄마들은 주로 밤이 돼서야 돌아와 눈을 붙인다”라며 “일단 우크라이나는 탈출했지만 도움받을 곳이 없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폴란드 정부는 난민들의 장기적인 보호를 위해 유럽연합(EU)의 지원을 바라고 있으나 양측의 조율은 순조롭지 않다. EU는 최근 폴란드에 할당된 위기대응기금 중 5억5900만유로(약 7471억원)를 선지급했으나, 폴란드는 필요한 수요에 비해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폴란드 측은 향후 1년간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필요한 금액을 22억 유로(약 2조9423억원)로 추산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EU와 각국의 난민 대응이 중요한 기로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독일 폴란드연구소의 아그니에즈카 라다-코네팔 부국장은 최근 도이체벨레와의 인터뷰에서 “전쟁이 장기간 지속되고, 난민 보호 비용이 많이 든다면 폴란드 사회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확답할 수 없다”라며 “(최악의 경우) 포퓰리스트들이 난민 문제를 혐오와 분노를 퍼뜨리는데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외곽 소비에니아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는 난민 아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르샤바 | 박용하 기자

지난 17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외곽 소비에니아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는 난민 아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르샤바 | 박용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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