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의 내면·감성 실종 ‘기획상품’-

[영화 가로지르기]2007 ‘힛쳐’

영화 ‘힛쳐’(감독 데이브 마이어스)는 짐(잭커리 나이튼)이 여자친구 그레이스(소피아 부시)와 함께 여행을 떠나며 시작된다. 그런데 도중에 존 라이더(숀 빈)를 태우게 된 두 사람은 갑자기 이상한 언동을 보이는 그에게 점점 두려움을 갖게 된다. 낯선 자와의 동행은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을 두 사람에게 안겨줄 뿐이다. 존 라이더가 살인마로 돌변하여 짐과 그레이스를 공격하는 것이다. ‘힛쳐’는 1986년에 발표됐던 원작을 리메이크한 영화다. 로버트 하몬이 연출한 원작은 현대 사회의 불확실성이 일상의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근원적인 요인임을 간파한 영리한 작품이었다.

관객은 존 라이더가 표출하는 기괴한 공격성의 방향과 목적을 알지 못한다. 낯선 인물의 맹목적 적의가 영화를 이끌어 가는 동력인 것이다. 이해타산에 기초한 ‘허약한 인간관계’가 불특정 다수에 대한 증오를 잉태할 수 있다는 착상은 여전히 신선하다. 일상화된 익명성과 그로 인한 불확실성은 낯선 존재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존 라이더가 두려운 존재인 것은 그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관객에게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두 사람을 위협하는 존 라이더의 공격적인 행동은 귀속감이 사라진 공동체의 현실을 암시하는 사회적인 징후이기도 하다. 낯선 남자에게 베푼 호의로 인해 위험에 빠지는 설정은 생존하기 위해 항상 경계하고, 의심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에 대한 풍자다.

맹목적인 적의를 지닌 악당은 젊은 대학생들이 대적하기에는 분명 벅찬 상대일 수밖에 없다. 원작이 기념비적 컬트 영화로 기억되는 것은 예측불가능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의 무력한 처지에 주목한 덕분이었다. 경쟁과 효율을 신성시하는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이면에는 증오와 위험으로 들끓는 음험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낯선 사람에게 베푼 호의로 인해 도리어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을 겪게 되는 경우는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존재하지 않는가. 사실 원작의 탄탄한 긴장감은 낯선 인물이 발산하는 섬뜩한 광기와 온순한 주인공이 표출하는 무력감이 묘한 대조를 이룬 덕분이었다.

원작의 경우 룻거 하우어가 연기한 존 라이더는 쉽게 해명되지 않는 현대 사회의 거악을 은유하는 존재다. 수긍할 수 없는 폭력을 태연히 자행하는 존 라이더는 이해할 수 없는 공격성으로 인해 더욱 두렵게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리메이크된 ‘힛쳐’에서는 원작의 존 라이더에 깃들어 있던 비주류적 감성을 더 이상 발견할 수 없다. 룻거 하우어가 연기했던 존 라이더가 가공할 잔인성과 복잡한 내면을 동시에 가진 복합적 인물이었다면, 숀 빈이 재창조한 존 라이더는 그저 평면적인 살인마이기 때문이다. 룻거 하우어가 범접할 수 없는 악마성을 체현했다면, 숀 빈은 설득력 없는 비열함으로 일관할 뿐이다. 영화에 잔인한 장면이 상당수 포진한 것은 시각적 충격요법을 이용하여 구성상의 균열과 이야기 전개상의 허점을 가리려는 전략이 아닐까.

돌아온 리메이크 ‘힛쳐’는 악당의 기괴한 내면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 대신 영화는 상업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묘책을 총동원한다. 젊은 연인들과 낯선 남자 간에 은밀하게 형성되어 있는 성적 긴장감도 그 중의 하나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살인마와 맞서는 이 영화의 결말은 관객의 성적 환상을 자극하려는 속셈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원작이 견고한 짜임새를 갖춘 비주류 스릴러였다면 2007년의 ‘힛쳐’는 대중의 취향을 면밀하게 계산한 기획 상품에 더 가깝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추격, 액션 장면은 시각적으로는 즐겁지만 구성상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특히 마지막에 그레이스가 갑자기 명사수로 변신하는 장면은 ‘레지던트 이블’ 같은 영화를 연상시키며 실소까지 자아낸다.

원작은 현대인의 무의식적인 불안을 겨냥한 설득력 있는 대중 영화였다. 긴장감을 영화의 마지막까지 보존했던 원작은 극적 구심력을 성공적으로 유지한 뛰어난 스릴러 영화이기도 했다. 하지만 리메이크된 ‘힛쳐’는 원작의 매력적인 설정을 성실히 차용했을 뿐, 그 이상의 야심은 내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기획 상품에 불과한 자신의 정체성을 일찌감치 자인한다. 그러나 대중의 반응을 겨냥하여 치밀하게 설계된 상업적인 연출은 원작 고유의 긴장감을 온전히 복원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한다. 기민한 상업적 감각으로 무장한 채 리메이크를 시도했지만 그 와중에 원작의 비주류적 감성은 이미 증발해 버렸기 때문이다. 상업적인 이해타산에 지나치게 민감한 ‘영악함’이 오히려 대중 영화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황승현 영화평론가 hinn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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