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꿈’으로 가는 길

김봉선 논설위원

18대 대선에서 호남은 패한 야당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은 48%, 즉 1469만2632표의 근간을 이뤘다. 호남은 정부 수립 이후 두 차례 자신들이 원하는 정권을 창출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다. 그 10년의 세월, 호사한 건 없지만 변방에만 머물러온 시절의 한을 풀었다. 다시 뭉쳤다. 뒷걸음질한 이명박 정권의 5년을 끝내고, 못다 핀 김대중·노무현 두 ‘거인’의 꿈을 되지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들이 살아온 세월이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그들을 그리로 이끌었다. 잠시 ‘멘붕’에 빠졌다. 그뿐이었다. 아무려면 과거 ‘선생님’의 3차례 낙선에 비하겠는가. 홀대가 두려운 것도 아니다. 익숙해진 지 오래다. 홀대를 홀대라고 호소할 여지마저 막혀 팍팍해질 것 같은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박 당선인의 화두 ‘대탕평’이라는 이름으로 타오르던 호남 총리론이 수그러들었다. 진보·개혁 진영의 집권 시절을 제외하곤 줄기차게 되풀이돼온, 낯설지 않은 단어다. 들춰보면 호남 대접이 아니라 홀대를 가리려는 권력자들의 ‘코스프레’였고, 보호색이었다. 그 뒤편에서 숫자로서만 의미를 갖는 자리들이 호남 몫으로 돌아갔다. 권력자들이 측근들을 힘 있는 자리에 배치해 친정체제를 구축하려는 방편으로 악용돼 온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갖는 총리의 미미한 역할 따위는 그 다음의 문제다. 지역색이 짙은 이명박 정권의 현 총리가 전남 출신이라는 사실은 뭘 의미하는가. 내정 당시 ‘전남 출신 첫 총리’라며 상징조작에 매달린 데에 그 답이 녹아 있다. 그런 호남 총리론의 소멸이라면 부박한 정치게임의 종언이라는 점에서 반길 만한 일이다.

[경향의 눈]‘아버지의 꿈’으로 가는 길

왜 지역균형발전이고, 대탕평인가. 박 당선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100% 대한민국’을 위해서다. 그는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에서 “모든 지역과 성별, 세대의 사람들을 골고루 등용하여 대한민국의 숨은 능력을 최대한 올려서 국민 한 분 한 분의 행복과 100%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저의 꿈이자 소망”이라고 말했다. 소중하나 존재조차 잊고 지내는 공기처럼 당연해서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일들이 있다. 대탕평, 균형발전이 그렇다. 두 주제어 없이는 그의 또 다른 약속인 복지국가의 건설도 불가능하다. 복지국가야말로 모든 지역과 성별, 세대의 사람들이 골고루 잘사는 나라다. 균형발전과 대탕평이 복지국가라는 수레를 이끄는 두 바퀴로서 기능을 다할 때 그 효과는 배가된다. 박 당선인은 “복지국가 건설은 아버지의 꿈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균형발전과 대탕평은 바로 ‘아버지의 꿈’인 복지국가로 가는 노정인 셈이다.

대탕평과 지역균형발전은 시대의 흐름이다. 이를 거론하지 않은 권력자는 단 한 명도 없었지만, 실천한 권력자 또한 없었다. 박 당선인의 약속에 각별한 관심을 쏟는 건 그의 행적에서 연유한 바 크다. 2010년 6월 세종시 수정안의 본회의 표결 때 박 당선인은 반대 토론자로 본회의장 단상에 서서 수정안을 부결시켰다. 그 일로 세종시 태동의 법적 뒷받침을 마무리했고, 충청은 대선에서 그에게 지지를 보내 보답했다. 박 당선인이 지금 정부의 새 틀을 짜고 있다. 대탕평 의지가 확고하고, 발현된다면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도, 대학도 모두 그 뜻을 따를 수밖에 없다. 파급 효과는 크고 빠르며, 종국에는 전 사회적인 현상으로 확산될 터이다. 박 당선인은 그러한 시대 흐름을 끌어안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를 맞고 있다.

대탕평과 지역균형발전이 아직도 시대적 과제로 대두되는 배경에는 아버지의 원죄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기에 특정 지역의 권력 독식이 시작되고, 지역불균형도 심화된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이 추진되면서 포항·울산·거제 같은 동남임해공업벨트의 영남지역은 번영한 반면, 호남은 쇠락해갔다. 지역 격차는 대구·경북(TK)의 지역패권주의와 결합하면서 깊어졌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중앙집권제와 수도권 집중은 발전이 더딘 지역의 소외를 심화시켰다. 그런 맥락에서 균형발전과 대통합은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의 화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다 싶다.

대탕평은 명실상부한 권력기관장을 호남과 나누는 일로부터 진화해야 한다. ‘박근혜 표’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물색 과정에서 호남으로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능력이나 자질을 따지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 자세와 정신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본격화한 공기업의 지역 이전도 챙겨볼 일이다. 예정대로 진행되는지, 옮겨간 사람들은 살 만한지 살피고 자신들의 구상을 덧붙여 이벤트가 아닌 지역균형발전의 성공모델로 만들어야 한다. 대탕평과 국가균형발전을 시혜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복지국가는 파이를 키워 공정히 나누는 일이다. 특정 지역, 세대, 성의 희생을 발판 삼아 나머지 지역, 세대, 성이 행복을 누리는 시대는 막을 내렸다. 48%에게도 기회가 돌아갈 때 52%도 행복해진다. 그게 박 당선인이 말하는 진짜 ‘국민행복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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