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하고 진료받고, 안심하고 진료하기

원장님, OO 직원이 환자분 주사 놓고 나서 바늘에 찔렸어요. 그 환자분 감염성 질환에 대한 이전 검사 기록은 아무것도 없어요. 환자분께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니 혈액검사에 동의해 주신다고 해요. 어떤 검사를 하면 될까요?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B형 간염, C형 간염, HIV, 매독까지 감염 여부를 검사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주삿바늘 찔림을 통해 옮겨질 수 있는 질환들이다. 물론 검사비는 모두 환자분이 아닌 우리가 부담하는 것이고, 모두 비보험이다. 그 질환이 의심될 만한 증상이 있어서 검사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다행히 환자분께 모든 결과가 음성이라는 검사 결과와 함께 ‘도와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낼 수 있었다.

2주 전에는 우리 협동조합의 치과위생사 직원이 진료를 받으러 왔다. B형 간염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환자분 진료를 마친 후 퇴근해 가서 보니 손가락이 찔려 있더라는 것이다. 환자분이 다른 감염성 질환은 없는 상태라고 하니, 이 직원에게는 B형 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 검사를 했다. 직원이 항체를 가지고 있다면 기구에 찔려도 감염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직원은 B형 간염 항체를 지니고 있는 상태였고, 검사비는 우리가 부담했다.

몇 달 전 우리 협동조합의 치과의사가 HIV 감염인의 치과 수술 도중 날카로운 기구 끝에 손가락을 찔렸다. 입 안에 날카로운 기구를 넣고 수술을 해야만 하는 치과 수술의 특성상, 옆에서 같이 수술 보조를 하는 치과 직원과 호흡이 맞지 않을 경우 찔릴 수 있다. 전신마취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수술받는 환자분과 호흡이 맞지 않아도 찔릴 수 있다.

친구가 기구에 찔리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찔린 사람이 치과 위생사가 아니라 나라서 다행이다”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맥락은 여러 가지였다. HIV 환자에 대한 임플란트 수술까지의 진료를 하겠다고 제안하고 세팅하기 시작한 것이 자신이라서, HIV 주삿바늘 사고는 항바이러스제 투약을 통해 100%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는 의학지식에 힘입어 불안감이 높지 않은 자신이라서, 일반적으로 고용된 노동자가 아닌 치과 관리자인 자신이라서. 정말 여러 가지 맥락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했다.

마음이 다행이라도 몸은 바빴다. 찔린 후 당일 감염내과 진료를 볼 수 있는 곳이 없기에, 상급병원의 응급실 진료를 받아야 했다. 응급실에서 기본 검사를 해 놓고, 3일분의 예방적 항바이러스제를 처방받아 복용하기 시작했다. 3일 후 휴가를 내서 그 상급병원의 감염내과 진료를 받고, 항바이러스제를 더 처방받아 매일 복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 달 동안 치료를 받으며 들어간 병원비와 약값이 100만원이 넘었고, 우리 협동조합 법인에서 모든 비용을 부담하였다. 건강보험 적용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HIV 감염인은 항바이러스제를 무료로 처방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진료하던 의료인이 바늘에 찔릴 경우, 예방적 항바이러스제 치료와 검사에만 100만원이 넘게 들어가는 현실이라니, 너무나 이상하지 않은가. (HIV 찔림사고와 관련해서는 관할 보건소에 진료비 환급 신청을 할 수 있다고 하여, 현재 방법을 찾는 중이다.)

찔리지 않도록 주의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솔직히 이런 사고는 주의를 한다고 해도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나도 주삿바늘에 찔린 일이 있다. 예방접종을 하다가 발버둥치는 아이의 움직임에 주사기를 놓쳐 찔린 일도 있고, 주사실에서 발이 꼬여 넘어지며 하필이면 주삿바늘 통을 짚는 바람에 누구를 찔렀던 것인지도 모를 바늘에 찔린 적도 있다.

주삿바늘 찔림으로 인해 필요한 검사나 처방만이라도 건강보험이 적용된다면 훨씬 안심하고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심하고 진료받을 수 있는 환경도, 안심하고 진료할 수 있는 환경도 우리에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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