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경향포럼

“상위 1% 독점, 지속 불가능…녹색·생태·공유 확대 이뤄야”

심윤지·권정혁 기자

좌담 - 누리엘 루비니·반다나 시바·사이토 고헤이

루비니 “자본주의가 해법”
시바 “좋은 삶, 재정립 필요”
사이토 “코뮤니즘이 대안”
‘성장 패러다임’ 문제엔 공감
방향성·속도엔 입장 갈려

기후위기에 생태적 유기농법
선진국 소비 감축 필요 제시
‘넷제로’ 국제 협력 주장도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왼쪽에서 두번째), 반다나 시바 환경·사회운동가(세번째), 사이토 고헤이 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네번째)가 28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3 경향포럼>에서 기조강연을 마친 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 교수(왼쪽)의 진행으로 좌담회를 하고 있다. 조태경 기자 phototom@kyunghyang.com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왼쪽에서 두번째), 반다나 시바 환경·사회운동가(세번째), 사이토 고헤이 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네번째)가 28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3 경향포럼>에서 기조강연을 마친 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 교수(왼쪽)의 진행으로 좌담회를 하고 있다. 조태경 기자 phototom@kyunghyang.com

28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성장을 넘어-모두의 번영을 위한 새로운 모색’을 주제로 열린 <2023 경향포럼> 기조연설자로 나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 반다나 시바 환경·사회운동가, 사이토 고헤이 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는 “경제성장의 결과물을 상위 1%가 독점하는 구 패러다임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다만 변화의 방향성이나 속도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를 보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하며 ‘닥터 둠’이라는 별명을 얻은 루비니 교수는 “민주정부가 공공서비스 제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본주의가 현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라 본다”며 점진적 개선에 무게를 뒀다.

반면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의 저자인 사이토 교수는 “기후위기와 탈성장이라는 만성화된 비상상황에서는 기존에 상상하지 못했던 급진적 대안이 필요하다”며 ‘생산’ 대신 ‘공유’를 기반으로 한 코뮤니즘(communism)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핵물리학자 출신으로 40년간 토종종자 씨앗운동을 해온 시바 박사는 “국내총생산(GDP)을 비롯한 기존의 경제성장 지표에 생산으로 연결되지 않는 행위는 소외돼 있다”며 ‘좋은 삶’에 대한 기준 재정립과 공동체의 자급자족 역량 복원을 강조했다. 다음은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진행한 세 연사와의 대담 전문.

이우진 = 성장과 탐욕의 구 패러다임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나. 동의한다면 ‘급진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와 ‘완만한 변경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의견 중 어디에 가깝나.

루비니 = 성공적인 경제란 민간 부문이 많은 경제활동을 주도하는 경제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의 남북한이 그 극적인 예다. 그러나 정부도 교육, 의료제도, 실업급여, 복지, 부의 재분배, 사회보장제도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나라마다 정부 역할을 두고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어느 쪽이든 실용주의적 해결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 개인적 견해로는 민주적이고 시장주의적인 자본주의가 더 효과가 있다고 본다. 특히 자본주의는 정부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때 가장 잘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시바 = 지금의 성장 패러다임은 자연이나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매우 비과학적이다. 여성과 자연의 경제가 없었다면 우리는 숨을 쉬고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유엔에서 집계하는 GDP는 이를 포함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생산하고 만들어내야만 경제의 일부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라마다 ‘좋은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을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환경 영향에 대한 과학 연구를 하면서 느끼는 점은, 탄광이나 철광 프로젝트 같은 사업을 벌일 때 지역 공동체가 얼마나 파괴되는지는 누구도 측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게 나의 상처이고 고통”이라는 목소리까지 반영한 지표를 만들어낼 수 없다면, 결국 성장은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사이토 = 탈성장과 코뮤니즘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탈성장은 우리가 점점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더 많이 공유하자’는 아이디어가 기본적인 코뮤니즘의 정의다. 코뮤니즘은 스탈린주의가 아니다. 지금은 상위 1%, 혹은 상위 0.1%가 모든 걸 장악하는 독점사회인데, 공공재를 모두가 다 같이 공유함으로써 이를 막자는 제안이다. 코뮤니즘이 이데올로기적이라는 비판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프레임워크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측정 가능한 경제성장에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소외된 모든 것들을 포함시키고 포용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이우진 = 성장 위주 정책과 과다한 탐욕이 문제가 될 수는 있지만 경제성장이 부족해 기아가 발생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시바 = 성장은 상위 1%의 부만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 글로벌화로 인해 농민들은 위기에 처하고 좌절감을 느끼며, 농업 분야의 성장은 오히려 기아를 야기한다. 또한 농지가 농업 외 용도로 이용되는 일이 늘어나면서 농민들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됐다. 글로벌화의 실질적인 혜택은 농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태적인 유기농법을 도입해 탄소배출을 줄이고 땅을 보존해야 한다. 우리의 사고방식을 생태적으로 바꾸고, 지역 차원에서 자급자족의 역량을 회복한다면, 화학 비료·연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경제와 지역을 살릴 수 있다.

루비니 = 기후변화를 멈추지 않으면 파멸적인 생태학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글로벌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만 탈성장 코뮤니즘에는 동의하지 않고, 녹색성장을 지지한다. 성장이 끝난 일부 선진국 바깥에는 여전히 극빈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와 같은 기술이 발전하면 탄소배출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친환경적인 성장이 가능해질 것이며, 선진국들이 이를 선도해야 한다. 경제성장은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의 혁명으로 인해 크게 개선될 것이며 급진적인 변화와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혜택이 발생할 것이다. 다만 기술혁신은 불평등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승자에 대한 과세 및 교육 등 정책을 통해 디지털 시대의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이토 = 탈성장은 성장을 멈추라는 것이 아니라 빈곤을 없애기 위해 제3세계에 투자하고 자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동시에 선진국의 사치품 등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야 한다. 전기차나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은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지구를 구할 수 없다. 생산량을 줄이고, 자동차 중심의 도시에서 자전거 전용도로와 대중교통에 투자해야 한다.

이우진 = 루비니 교수는 민간과 정부의 부채가 높은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계속 높이면 이자 부담이 더 커지는 ‘부채 함정’을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세계 경제가 경착륙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루비니 = 민간과 공공부채의 GDP 대비 비율은 1990년대 100%에서 작년에 350%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과 중국의 경우 이 비율이 더 높다. 신흥시장이나 빈곤 국가들은 부채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 대외부채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파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물가안정과 경제성장, 금융과 재정의 안정성을 모두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 붕괴를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지 않는다면 인플레이션은 고착화되고, 실질소득이 줄어들어 빈곤계층에게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다. 현 상태가 지속되면 세계 경제가 경착륙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우진 = 사이토 교수가 대안으로 제시한 ‘탈성장 코뮤니즘’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사이토 = 자본주의를 완전히 없애버리고 하룻밤 사이에 탈성장 코뮤니즘을 도입할 수는 없다. 다만 사회를 급진적으로 바꾸는 상상을 해보고, 체험적으로 실험해볼 수는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에서 두 가지 제안을 했는데, 첫 번째는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더 많은 근무시간은 더 많은 자원 소비를 동반한다. 타인에게 존중받기 위해 좋은 직장에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일본과 같은 나라에서 근무시간 감소는 근본적으로 기존 가치관을 뒤흔든다. 다른 하나는 최대소득 상한제 도입이다. 즉 무한대로 돈을 벌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 수 있는 돈의 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가령 100만달러를 상한선으로 하고 그 이상 벌 경우 정부가 가져간다는 식으로 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면 무한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편견이 없어질 것이다.

이우진 =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만, 과연 작은 대안이나 변화들이 패러다임을 전환할 만큼 충분할까.

루비니 =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가축을 기르는 데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면 모두가 비건이 된다고 하면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하면 국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이산화탄소 포집이나 청정수소를 활용하게 되면 청정에너지 단가도 더 싸지고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없는 에너지도 발명할 수 있을 것이다. 넷제로(net-zero)로 전환하기 위한 국제 협력도 필요하다. 기후변화, 팬데믹, 경제, 금융안정, 자유무역 등은 모두 글로벌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 국가, 국제적인 해법이 모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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