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마에 의한 정복이 필요한 시대

원익선 교무 원광대 평화연구소

학생들과 해를 넘기며 인도 불적지 순례를 하고 있다. 석존의 성도지 보드가야의 마하보디대탑을 생애 처음 방문했다. 수만명의 티베트 승려들이 대탑을 중심으로 자리를 깔고 앉아 독송하거나 절을 올리고 있었다. 이 모든 정경이 육체와 정신이 따로 노는 혼미 속에서 우주의 카오스처럼 느껴진다. 다음날 석존이 깨달음을 얻기 전 수행한 전정각산을 오르는 길에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달리트(불가촉천민)들을 보며 정신이 번쩍 깨었다. 아니 이들은 2500년 전 성자가 나신 나라의 후손들이 아닌가. 손과 발은 부르터 있고, 눈은 휑하니 초점이 없다. 삶의 원초적 의지를 상실한 달리트들, 무려 1억명이나 된다고 한다.

냉혹한 현실 앞에서 순례가 영혼의 정화이며 환골탈태의 순간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존경쟁과 승자독식의 세계에 사는 우리에게 불성을 지닌 형제들이 길가에 앉아 자비를 베풀기를 바라고 있다. 철옹성의 문명과는 무관한 저들이 과연 우리의 가슴을 후벼파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또한 뒤집힌 세계 속에서 돈과 권력과 환락에 대한 구걸로 연명하는 영혼의 달리트들이 아닌가.

고대에 아리안족의 침입 이후, 토착원주민들에 대한 위계질서를 구축한 카스트제도. 이러한 무지막지한 인간계급화에 반기를 든 것이 자이나교와 불교였다. 기원전 6세기 아리안족 베다문화에 저항한 비베다시대에 브라흐마니즘의 제식주의와 희생제 의식, 그리고 카스트의 신분제를 거부했다. 종교의 이념은 정치를 통해 현실화된다. 석존 사후 1~2세기 후에 등장한 아쇼카왕은 불법을 현실에 구현한 전륜성왕이다. 전륜성왕은 정법을 굴려 통치한 왕을 말한다. 통일제국을 달성한 찬드라 굽타의 손자인 그는 남동부 칼링가왕조를 무자비하게 정복했다. 피로 강이 된 것을 보며, 다시는 힘이 아닌 다르마로 정복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불교에 귀의하여 불법의 정치를 펼쳤다. 찬드라 굽타의 스승이자 재상 카우틸랴는 <아르타 샤스트라(실리론)>에서 정복은 탐욕스러운 정복자·흉포한 정복자·다르마에 의한 정복자 세 형태가 있다고 한다. 마지막은 만인이 마음으로부터 귀의할 수 있는 정복이라고 한다. 다르마는 우주 자연의 법칙이자 바른 법인 정법을 의미한다. 정치체제나 통치술에는 관심이 없는 종교인 불법의 정치를 그는 어떻게 도입했을까.

바위나 석주에 새긴 아쇼카왕의 법칙들은 지금까지 40여개가 발견되었다. 주 내용들은 생물도살과 축제 금지, 가축과 인간을 위한 복지센터 건립, 정법의 실천, 교법대관직 파견으로 약자 및 죄수 보호, 보시 실천, 종파 간의 화합과 이웃종교 존중, 인근 국가에 대한 정법의 포교 등이 그 지역 언어로 새겨졌다. 그는 보편적 가치를 우위로 하는 정치를 펼치고자 했다. 아힘사, 즉 불살생은 순장이나 잔인한 희생제에 대한 반기를 드는 것이지만 생명의 존귀함에 대한 자각도 한몫하고 있다. 신분제 타파 또한 인간의 주체성에 대한 자각과 평등성을 반영한다. 당시 상공업과 도시의 성장, 교역의 활성화로 이처럼 보편타당한 절대적 진실이 환영받았다. 시대성에 눈뜬 아쇼카왕은 선한 본성인 도덕성에 의지해야 통치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음을 알았다. 광활한 영역은 언제까지 무력으로 다스릴 수 없다. 보편적 진리와 정의에 입각해 통치하는 왕은 “칼이나 몽둥이를 사용하지 않아도 항복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증일아함경>)라고 석존은 설한다. 이를 위해 통치자 스스로도 수행자 못지않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아쇼카왕은 훗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불교는 12세기경 인도에서 완전히 추방된다. 힌두교의 개혁에 의한 불교 흡수, 인도 북부에 대한 이슬람 침입 등을 이유로 든다. 문명을 쌓는 것도, 붕괴시키는 것도 인간의 마음이다. 인간 정신이 바르지 못하면 어떤 정치도 전복되고 마는 것이 역사다. 아쇼카왕의 정법통치는 동아시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양무제나 신라의 진흥왕이 대표적 인물이다. 다르마의 정치를 구현할 이 시대의 아쇼카가 탄생하길 인도의 길 위에서 기원한다.

원익선 교무 원광대 평화연구소

원익선 교무 원광대 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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