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한여름같이 더운 4~5월에도 귤이 나온다. 청로다. 만생종인 이 귤은 당도가 15브릭스 정도로 높다. 적절한 산도도 있어 입안에서 느끼는 균형감이 절묘하다. 균형감은 긴 여운으로 이어진다.
나는 청로 같은 감귤류를 초겨울부터 5월까지 즐기려고 한다. 퇴근하고 바로 감귤류를 먹으면 낮 동안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씻겨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딸기와 사과 같은 당과 산이 조화로운 과일을 먹을 때도 비슷한 효능을 느낀다.
그런데 며칠 전 청로를 아내 대신 직접 사서 귀가했는데 가격에 놀랐다. 2㎏에 2만3600원이었다. 작년에 1만5000원 정도 했던 데 견줘 큰 폭으로 오른 것이다. 과일값은 올 초부터 큰 폭으로 올라 사회적 이슈가 돼왔다. 오름 폭도 컸지만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이슈가 된 탓도 있었다. ‘애플레이션’(사과를 뜻하는 애플+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민생 경제의 화두로 떠올랐다.
실제 우리나라 과일 가격 상승률이 선진국 가운데 최악의 수준이다. 최근 글로벌 투자기업인 노무라증권 자료를 보면, 주요 7개국(G7)과 전체 유로 지역, 한국·대만처럼 선진국과 경제구조가 비슷한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의 올해 1~3월 과일 가격 상승률은 월평균 36.9%로 가장 높았다. 상승률은 2위 대만의 2.5배, 3위 이탈리아의 3배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올해 초 과일 가격이 급등하기 전부터 서민들이 체감해왔던 과일의 벽은 높았다. ‘2022년 서울시 먹거리 통계 조사’를 보면, 과일을 매일 1회 이상 섭취하는 사람은 28.8%에 그쳤다. 특히 소득에 따른 격차가 컸다. 하루 1회 이상 과일을 먹는다고 대답한 비율은 월소득 500만~700만원 층에서는 40.3%였지만, 200만~350만원 층에서는 21.7%에 그쳤다. 1인 가구는 상황이 더 안 좋았다. 하루 1번 이상 과일을 먹는 비율이 14.3%에 불과했다. 1인 가구가 많은 20~30대가 과일 섭취율이 낮은 이유기도 하다.
과일 생산량만큼이나 과일에 대한 접근성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미국 농무부는 2012년 슈퍼마켓이나 소매점이 없어 음식 접근이 어려운 계층의 거주 지역을 ‘음식사막’이라고 명명했다. 주로 인구밀도가 낮은 농촌지역이 많다. 하지만 대도시 주변의 신선식품 판매점보다 고칼로리·고나트륨의 정크푸드 판매점이 많은 지역도 ‘음식사막’으로 분류됐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식품점과 가계의 물리적 거리가 촘촘하다고 해도 음식사막은 존재할 수 있다. 과일은 음식사막화 현상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미 1인 가구, 고령 가구, 저소득층은 ‘과일사막’으로 몰리는 모습을 보인다. 과일값 폭등은 이런 사막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미국은 음식사막 주민들을 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과일·채소 등 신선식품을 공급하는 ‘푸드허브 프로젝트’를 실시해왔다. 미국 한 보고서를 보면 음식사막 주민들이 가장 공급을 원하는 음식이 신선한 과일과 채소였다. 우리 사회도 과일 생산량 확대, 유통구조 개선과 함께 과일사막에 몰린 이들에게 신선한 과일(신선 채소 포함)을 공급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망 구축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