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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쳐가며 읽는 농업·로컬 ①메린 매케나 <빅 치킨>

‘치킨’의 메카는 미국 델마버 지역(Delmarva Peninsula)이다. 미국 동부에 툭 튀어나온 반도인데, 델라웨어주·메릴랜드주·버지니아주 등을 포함한다. ‘델마버’라는 이름이 이들 주의 앞자를 따서 나왔다. 원래 농가들이 닭을 키운 건 닭고기가 아닌, 달걀 때문이었다. 닭고기는 달걀을 더이상 낳지 못하는 노계나, 가끔씩 부화한 수평아리를 조금 키워 고기용으로 파는 정도였다. 닭고기는 달걀 생산의 부산물이었다는 말이다. 그런 닭을 처음부터 ‘고기용 닭(육계)’으로 키우기 시작한 건 델마버 지역의 달걀 생산자인 세실 스틸(Cecile Steele)이란 여성 농부였다. 세실이 1923년 달걀 부화장에 산란용 암평아리 50마리를 주문했는데, 부화장에서 실수로 500마리를 보낸 게 시작이었다. 그는 암평아리를 모두 길러서 고기로 판매하기로 했다. 닭고기를 1파운드당 60센트를 받고 시장에 넘겼는데, 당시 노계 닭고기의 5배에 달하는 가격이었다. 세실이 ‘육계’를 전문으로 키워 성공하자 이웃들도 그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10년도 되지 않아 델마버 반도의 육계 농가는 500여 곳으로 늘었다.

사진 출처 Jason Leung / Unsplash

사진 출처 Jason Leung / Unsplash

지질학계에서는 ‘신생대 제 4기 홀로세’에 속하는 지금의 시대를 ‘인류세(인류의 시대)’로 등재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먼 미래에 ‘인류세 지층’에서는 닭 뼈 화석이 나올 거라는 주장(얀 잘라시에비치 영국 레스터대학 교수)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메린 매케나의 책 <빅 치킨>(에코리브르)은 ‘육계’가 인류세를 대표할 정도로 전지구적으로 성장하게 된 이유들을 하나씩 살핀다. 델마버 지역의 육계 농가부터, 제약사 연구소, 육가공 기업, 병원, 최근 늘기 시작한 동물복지 농장까지 종횡무진한다.

육계의 신성한 땅이 미국에선 델마버라면, 한국에선 전라북도를 꼽을 수 있다. 국내 육계 산업에도 유사한 ‘창업 신화’가 있다. 전북 익산의 한 초등학생 소년이 외할머니로부터 선물받은 병아리 10마리를 키웠고, 고등학생이 됐을 때는 4000마리로 불어났다는 하림그룹 창업자 김홍국 회장 이야기다. 닭고기로 한국 시장을 평정한 하림이 2011년 델마버의 육계업체 ‘앨런패밀리 푸드’를 인수한 건, 김 대표가 나폴레옹의 20개 모자 중 하나를 소유했다는 사실보다 더 상징적인 일이다. <빅 치킨>에서 메린 매케나는 “델마버 지역이 닭고기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인근 뉴욕의 유대인 덕분”이라고 말한다. “육계는 진정한 안식일 요리를 필요로 하던 유대인 공동체에 썩 잘 들어맞았고, 결국 그 도시에 닭고기를 대주는 일은 델마버 반도의 닭고기 생산을 떠받치는 거대한 기둥 노릇을 했다.”(P.65)

미국의 저널리스트 메린 매케나의 <빅 치킨> 표지,

미국의 저널리스트 메린 매케나의 <빅 치킨> 표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정부가 델마버 지역의 닭고기를 전량 미군에 공급하기 시작하자, 시장에서는 미국 남부 지역 육계들이 세를 불리기 시작했다. 특히 남부 조지아주에서 사료 가게를 운영하던 제시 주얼(Jesse Jewell)은 병아리와 사료를 농가에 외상으로 제공하고, 농가가 닭을 다 키우면 그 닭을 가져와 시장에 내다팔았다. 닭을 판 수익 중 일부만 닭을 키운 농가에 전달했다. 이런 식으로 기업이 병아리 선별 및 제공, 사료 공급, 유통 등 육계 사육에 필요한 대부분의 수단을 제공하고, 농가는 땅과 노동력만 투입해 육계를 키워내는 모델을 요즘 시대에는 ‘수직계열화’라고 부른다. 일찌감치 수직계열화에 성공한 조지아주는 델마버를 제치고 현재 미국 육계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새로운 계약이 이뤄진 초기 몇 년 동안은 이윤이 났다. 사람들은 ‘조지아주 북부가 텍사스주보다 캐딜락을 소유한 사람이 더 많다’는 즐거운 농담을 던지곤 했을 정도다.”(P. 71)

국내에서 제시 주얼의 수직계열화 모델을 도입해 성공한 기업이 바로 하림이다. 농가에게는 농장 운영 비용을 줄이고, 위험 부담도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결정권을 박탈당하고 기업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는 문제도 있다. 실제로 일부 육계 농가와 하림은 수 년간 이 문제로 다퉜고, 하림의 회장이 국회 국정감사장에 불려나오기도 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고기용 닭을 대규모로 키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델마버 지역의 여성농부 세실 스틸(오른쪽) |  Delmarva‘s Chicken Industry: 75 Years of Progress 캡쳐

미국에서 처음으로 고기용 닭을 대규모로 키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델마버 지역의 여성농부 세실 스틸(오른쪽) | Delmarva‘s Chicken Industry: 75 Years of Progress 캡쳐

사진 출처 JBS / Unsplash

사진 출처 JBS / Unsplash

값싼 고기의 보급을 위해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미래의 닭’ 콘테스트를 벌였다. 같은 기간 동안에 어떤 닭이 얼마나 많이 성장했는가를 보는 대회다. 교배종과 순종 닭들이 출품됐다. 1948년 델마버 지역의 델라웨어 대학에서 열린 1회 대회에서는 뉴햄프셔종과 코니시종을 교배한 닭을 출품한 캘리포니아 농부 찰스 반트레스(Charles Vantress)가 우승했다. 그는 3년 뒤에도 또다른 교배종을 출품해 우승했다. 당시 86일 동안 사육한 닭이 평균 2.5파운드(1134g)정도였는데, 찰스 반트레스의 닭은 3.5 파운드(1588g)에 달했다고 한다. 이후 농가에서는 교배종이 순종을 밀어냈다. 요즘 육계들은 47일 만에 6파운드(2722g)에 도달한다. 찰스 반트레스의 유산을 물려받은 업체가 현재 세계적인 육종계 회사 ‘코브-반트레스’이다. 닭의 가슴살을 너무 키워서 닭들이 뒤뚱뒤뚱 다닌다는 일명 ‘스모 닭’들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코브 500’ ‘코브 700’ 같은 교배종 닭들에 대해 이 회사는 이렇게 광고한다. “엄청나게 많은 가슴살을 생산해요(Outstanding breast meat yield)”

<빅 치킨>을 읽다보면 우리가 먹는 닭들은 어떤 종일지 궁금해진다. 하림은 코브-반트레스사에서 ‘원종계(할머니가 될 암탉) 병아리’을 수입한다. 이 수입 병아리가 성장해 평균 40마리의 종계 병아리(엄마가 될 암탉)를 낳고, 종계 병아리가 커서 100~120마리의 육계 병아리를 낳는다. 육계 병아리는 부화해서 30~35일 동안 성장한 뒤 닭고기로 판매된다. 하림 외에도 ‘삼화원종’, ‘한국원종’, ‘사조화인’ 같은 종계업체들 모두 외국의 원종계를 수입해 종계를 만든다. 우리가 수입하는 브라질산 냉동 닭고기 역시 코브-반트레스 같은 육종계 기업이 생산한 ‘스모 닭’에서 나왔다. “젠장, 그들은 세상의 모든 닭을 자기들 것과 똑같이 만들어버렸어.” 메린 매케나가 만난 미국 농부의 말이다.

코브-반트레스사의 코브 700 품종. | 코브-반트레스 홈페이지 캡쳐

코브-반트레스사의 코브 700 품종. | 코브-반트레스 홈페이지 캡쳐

저자는 육계가 이런 식으로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항생제가 있다고 말한다. 항생제는 동물의 질병 감염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성장촉진제’로도 쓰인다. 항생제가 동물의 성장을 촉진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낸 건 ‘오레오마이신(테트라사이클린 종류의 항생제)’을 개발한 제약업체 ‘아메리칸사이안아미드’ 였다. (책 <백래시>에서 고소득 직종에 지원하려는 여성들에게 ‘화학물질 때문에 위험하니, 지원하려면 불임수술을 받으라’고 요구했다는 제약사가 바로 이 아메리칸사이안아미드다.)

아메리칸사이안아미드의 래덜 연구소에서 근무했던 토마스 주크스는 닭의 성장을 돕는 비타민B 합성을 연구하던 학자였다. 항생제 오레오마이신을 만드는 과정 중에 발생한 발효찌꺼기가 연구소에서 키우던 닭의 사료에 들어가면서 닭의 몸집이 커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아메리칸사이안아미드는 쓰레기로 버려지던 발효 잔여물을 말려서 농부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항생제가 동물 사료에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1950년 4월10일 뉴욕타임스 1면에 ‘경이로운 약물 오레오마이신, 성장률 50% 증가(Wonder Drug Aureomycin Found to Spur Growth 50%)’라는 기사가 실렸다.

미국에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시장에서 팔린 동물 항생제. 테트라사이클린계 항생제의 비중이 매우 높은데, 2015년 이후 줄어드는 추세다. | 미국 FDA의 2019 Summary Report on Antimicrobials Sold or Distributed for Use in Food-Producing Animals (2020.12)

미국에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시장에서 팔린 동물 항생제. 테트라사이클린계 항생제의 비중이 매우 높은데, 2015년 이후 줄어드는 추세다. | 미국 FDA의 2019 Summary Report on Antimicrobials Sold or Distributed for Use in Food-Producing Animals (2020.12)

<빅 치킨>은 테트라사이클린 등 항생제가 동물에게 남용되면서,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바이러스가 결국 인간을 공격한다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테트라사이클린계 항생제는 한국 및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항생제이기도 하다. 한국은 2011년 7월부터 동물 사료에 항생제를 넣는 걸 금지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농가에서는 ‘치료 목적’ 등으로 많은 양의 항생제를 사용하고 있다. 동물용 항생제 관련 국내 데이터는 내용이 빈약한 편이다. 반면 미국이 모으고 있는 항생제 데이터의 질은 놀라울 정도다. 동물용 항생제 판매량은 물론, 어떤 가축에게 얼마만큼의 항생제가 사용됐는지 등을 매년 조사해 공개한다. (현재 최신 통계는 2020년 12월에 나온 2019년 데이터이다. 위 사진 참조.)

<빅 치킨>은 육계산업을 변화시키려는 업체들도 소개한다. 글로벌 육가공업체 퍼듀(Perdue)는 무항생제 육계를 시장에 내놓고, 짧은 생애주기를 가진 닭에게 ‘백신’을 맞힌다. 코브-반트레스의 ‘스모 닭’이 아닌, 토종 닭을 키워 육계로 출하하는 농가들도 있다. 하지만 이 틈새가 과연 육계 산업의 견고한 시스템을 무너뜨릴 균열인지, 아니면 곧 덮혀 없어질 미세한 금에 불과한 건지는 이 책만 봐서는 아리송한 면이 있다. 저자는 기업형 육계 시스템 안에서 성장한 닭에 대한 먹거리 안전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계열화로 성장한 육계 시스템 자체를 허물려고 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얼마든지 건강한 먹거리가 나올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사진출처 William Moreland/ Unsplah

사진출처 William Moreland/ Unsplah

<빅 치킨>의 미덕은 ‘팩트’다. 한글 번역본은 500페이지가 넘지만 그중 100여 페이지가 참고자료와 주석일 정도로 사실 검증이 충실하게 이뤄졌다. 1950년대 이후 벌어진 일들은 직접 작가가 해당 기업이나 농민, 학자들을 만나 취재했다. 다양한 자료와 인터뷰 내용을 이리저리 조합해 풀어내는 과정을 거치다보면 내용이 과장되거나 자극적으로 흐를 여지가 있는데 <빅 치킨>은 그런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충분히 재밌다. 취재한 내용 자체가 워낙 방대하고 상세하기 때문인 듯 싶다.

<빅 치킨>을 읽다보면 10년 전 출판된 폴 로버츠의 역작 <식량의 종말>이 극적인 요소를 넣으려 좀 무리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예컨대 <식량의 종말>의 첫 단락은 토마스 주크스의 발견을 이렇게 전한다. “1940년대 후반, 뉴욕 오렌지타운 근처 허드슨 강가에서 낚시꾼들이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낚은 송어는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해마다 송어 몸집이 점점 커졌기 때문이다. 문제의 물고기가 잡힌 곳이 아메리칸사이안아미드의 레덜 연구소 부근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순전한 자연 현상인지 사람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중략) 연구소 책임자였던 생물학자이자 비타민 영양학 전문가 토마스 주크스는 이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겨 조사해보기로 했다.” <빅 치킨>이 전한 내용보다는 확실히 좀더 극적이다.

한국의 치킨 산업에 대해 좀더 알고 싶은 이들에게는, 조금 오래된 책들이지만 <닭고기가 식탁에 오르기까지>(김재민, 시대의창), <대한민국 치킨전>(정은정, 따비출판사), <고기로 태어나서>(한승태, 시대의창) 등을 추천한다.


글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도시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로컬에서 다른 삶을 살아 보려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을 하거나, 가게를 내거나, 농사를 짓습니다.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버티컬 채널 ‘밭’(facebook.com/baht.local)은 로컬에서 어떤 삶이 가능한지를 탐구합니다. ‘서울 말고 로컬’ 연재로 나만의 밭을 일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facebook.com/baht.lo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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