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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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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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함께한 장애견 ‘달마’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 <세 발로 하는 산책>을 펴낸 영화배우 문소리씨는 지난 12일 경향신문과 만나 “장애는 다름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본업인 배우 외에 영화감독과 제작자로도 나선 그는 “나이듦은 삶에서 중요한 게 뭔지, 놓치고 있는 게 뭔지, 좀 더 투명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며 “여성 이야기 등 다양한 소재들이 기획되고 소비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15년간 함께한 장애견 ‘달마’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 <세 발로 하는 산책>을 펴낸 영화배우 문소리씨는 지난 12일 경향신문과 만나 “장애는 다름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본업인 배우 외에 영화감독과 제작자로도 나선 그는 “나이듦은 삶에서 중요한 게 뭔지, 놓치고 있는 게 뭔지, 좀 더 투명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며 “여성 이야기 등 다양한 소재들이 기획되고 소비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배우 문소리씨(47)는 한국 영화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유한다. 필모그래피에서 확인되듯 작품성과 흥행성을 거머쥔 숱한 작품의 주연을 맡은 ‘연기파 배우’이면서도, ‘여배우’ 하면 떠오르는 화려함이나 신비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평범한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과 달라 보이지 않는 낯익음, 그리고 ‘정치적 올바름’(2004년 민주노동당 공개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할 것 같은 ‘개념 배우’의 이미지가 공존한다. 2015년 남편 장준환 감독(51)과 함께 ‘영화사 연두’를 설립하고 본업인 연기 외에 감독(<여배우는 오늘도>)과 프로듀서(<세 자매>)로도 나섰다.

지난 12일 저녁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문씨를 만난 것은 그가 어른을 위한 동화책을 펴냈다고 해서다. <세 발로 하는 산책>(마음산책)은 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은 장애견 ‘달마’의 이야기다. 달마는 15년 전 문씨가 전남 장성군 백양사의 스님으로부터 보리(달마의 여동생)와 함께 입양한 진돗개다. 문씨는 이 책으로 얻는 인세 전액을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가 구조된 사육곰들을 위한 ‘곰 생크추어리(sanctuary·보호시설) 건립’ 후원금으로 내놓는다.

문소리씨는 ‘여배우’ 하면 떠오르는 화려함이나 신비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평범한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과 달라 보이지 않는 낯익음, 그리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할 것 같은 ‘개념 배우’의 이미지가 공존한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문소리씨가 경향신문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문소리씨는 ‘여배우’ 하면 떠오르는 화려함이나 신비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평범한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과 달라 보이지 않는 낯익음, 그리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할 것 같은 ‘개념 배우’의 이미지가 공존한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문소리씨가 경향신문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장애견 키우며 축소주의자 돼 가…인세는 ‘곰 생크추어리 건립’ 후원

- <세 발로 하는 산책>은 어떻게 출간하게 됐나요.

“오래전 일인데, 4~5세 무렵 말문이 트인 제 딸 연두와 조카 수영이 왜 달마는 다리가 세 개인지를 물었어요. 유치원 특수교사인 올케가 A4 종이 여러 장을 풀로 붙인 다음 거기에 짧은 글과 그림을 넣어 달마의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최근 이 이야기를 확장해 달마의 노년까지 기록해두자는 것은 친정 부모님을 포함한 저희 가족의 프로젝트였어요. 달마와 보리는 16세로, 사람으로 치면 100세 노인이라고 해요. 보리와 달리 달마는 건강이 많이 안 좋아요.”

문씨가 달마와 보리를 입양했을 때는, 그의 가족이 마당이 넓은 경기도 평택의 친정 부모님댁으로 들어가 살기 시작한 시기였다. 가족 누구도 개를 키워본 적이 없어 서툴렀다. 진돗개 특유의 야생성이 남아 있는 달마는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기를 좋아했다. 그런 어느 날 대문 앞에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앞다리 위쪽이 부러졌고, 뼈가 붙지 않아 결국 수술로 다리 하나를 제거해야 했다.

- 달마와 보리를 키우면서 서서히 삶이 달라졌다고요.

“지구의 주인은 사람만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동물도, 나무와 풀도 있었어요. 함께 어우러져 잘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동물권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며 채식을 지향하는 생활을 하게 됐어요.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개고기도 먹었지만 지금은 붉은 고기는 전혀 입에 대지 않아요. 인간과 동물, 자연환경을 위해 플라스틱도 줄이고 여러 소비를 줄여보려는 축소주의자가 돼 가고 있어요.”

- 다른 가족에게도 변화가 생겼습니까.

“남편은 어딜 가든 동네 개들한테 관심이 무척 많아요. 동생 부부는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구조한 ‘꼬마’가 낳은 강아지 중 한 마리를 입양했고요. 모든 음식을 잘 먹는 연두가 어느 날 보신탕 간판을 보고 저게 뭐냐고 물었어요. 설명해줬더니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면서 기겁하더라고요. 그런 감수성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어떤 음식이 좋고 나쁜지에 대한 대화를 딸과 자주 나누려 노력해요.”

- 문소리씨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2002)에서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한공주’를 연기했잖아요. 장애견 달마를 보는 마음이 남달랐겠어요.

“장애인 역을 맡으면서 당시 비슷한 소외감을 자주 느꼈어요. 예를 들면 휠체어에 탔을 때, 다른 사람들과 아이레벨이 안 맞을 때의 느낌들이 생생해요. 저를 얼마나 특별하게, 이상하게 쳐다보던지…. 달마와 산책할 때면 손가락질과 함께 그런 시선들을 많이 느꼈어요. 장애를 그냥 다름으로 받아들여주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죠. 나무는 휘건 곧건, 크건 작건, 저리도 다양하게 생겨도 이쁘기만 한데…, 하고요.”

- 임순례 감독과 김태리 배우가 추천사를 썼더군요. 인세는 모두 기부한다고요.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가 주도하는 ‘곰 생크추어리’ 후원에 사용할 거예요. 두 단체는 좁은 철창 속에 갇힌 채 인간에게 담즙을 빨리며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사육곰 15마리를 최근 구조했어요. 그런 곰들이 우리나라에 아직도 400마리 가깝게 있다고 해요. 구조한 곰들에게 안식처가 될 곰 생크추어리 건립은 이 생명들이 고유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프로젝트예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1999)으로 데뷔한 문소리씨는 이어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2002·왼쪽 사진)에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한공주’로 분해 열연했고, 베니스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사고로 다리가 세 개뿐인 달마를 키우면서 그는 “과거 <오아시스>에서 장애인 역을 맡으면서 생생하게 느꼈던 시선들을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오른쪽 사진은 문씨가 달마의 이야기를 담아 최근 출간한 <세 발로 하는 산책>.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1999)으로 데뷔한 문소리씨는 이어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2002·왼쪽 사진)에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한공주’로 분해 열연했고, 베니스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사고로 다리가 세 개뿐인 달마를 키우면서 그는 “과거 <오아시스>에서 장애인 역을 맡으면서 생생하게 느꼈던 시선들을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오른쪽 사진은 문씨가 달마의 이야기를 담아 최근 출간한 <세 발로 하는 산책>.

‘외모 아닌데’ 기자들 반응에 의문…다양한 아름다움 나누는 배우여야

그의 연기인생은 2000년대와 2010년대가 명확히 갈린다. 1999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에서 ‘윤순임’ 역을 맡아 데뷔한 그는 2002년 역시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로 베니스영화제 신인여우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이후 <바람난 가족>(임상수 감독·2003), <효자동 이발사>(임찬상 감독·2004), <사랑해, 말순씨>(박흥식 감독·2005), <가족의 탄생>(김태용 감독·2006),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임순례 감독·2007), <하하하>(홍상수 감독·2009) 등 작품성과 화제성을 인정받은 영화들에서 잇따라 주역을 맡았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면서 주춤한다. 그가 주연을 맡아 대중에게 크게 각인된 작품이 드물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2010)에선 조연,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와 남편 장준환 감독의 <1987>(2017)에는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그 경계는 그가 결혼(2006) 후 출산(2011)을 한 시기와 겹친다.

- 2011년 출산을 전후한 각 10년이 필모그래피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여요. 여배우에게 결혼과 출산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 고민했을 것 같아요.

“어느 배우든 오르내림이 있어요. 저한테만 특별한 일은 아니에요. 저는 데뷔 초반에 굉장히 많은 좋은 작품을 누렸으니까 내리막도 있죠. 인생이란 게, 배우의 삶이란 게 그런 건가 보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저는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출산 후 이전보다 작품이 뜸하긴 했지만, 그래서 갈등도 겪었지만, 어쨌든 작업을 이어갔으니까요. 장르도 드라마(MBC <미치지 않고서야>)와 연극(<빛의 제국>)으로 넓혔고요. 감사하게 생각해요.”

- 좋은 연기란, 예술이란 뭘까요.

“아마 제가 죽는 날까지 계속 갖는 질문 중 하나일 거예요. 제가 왜 연기를 하는지까지 포함해서요. 지금 답을 내린다고 해도 변할 거고, 정답이 아닐 가능성도 높아요. 섣부르게 답을 내리지 않을 생각이에요. 죽을 때까지 탐구해가야 할 물음이니까요.”

- 남편 장준환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 적이 있어요. 가장 가까운 사람인데도 안 통하나요.

“장 감독님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배우가 어디 저뿐이겠어요? 어쨌든 그분이 영화를 자주 안 만들고 아직까지는 여성 캐릭터가 많지 않았어요. 언젠가 필요하면 부르겠죠. (장 감독은) 로비가 통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만약 쓴다면 제대로 저를 괴롭힐 거예요(웃음).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작업이 끝난 후에는 장 감독님을 엄청 좋아하지만, 감독님이 너무 집요하다보니 작업 중에는 힘들어 하거든요.”

- 장 감독은 영미권 배우가 출연할 <지구를 지켜라>(2003)의 미국 리메이크 영화를 직접 연출하지요. 지금 어떤 단계인가요.

“남편이 작업실이 있는 제주도에서 시나리오를 각색하는 중이에요.”

-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군요.

“가족과 같이 있으면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게 쉽지 않을 거예요. 무엇보다 남편은 집에 있으면 가족에게 충실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연두를 낳고 한동안 같이 지냈을 때 외에는 주말부부를 많이 했어요. 저는 우리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는 (떨어져 지내는 게) 괜찮은 것 같아요. 저도 매일 출퇴근하는 사람이 아니고, 작품 할 때는 수개월 지방에 머물기도 하니까요. 남들은 이상한 가족 형태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희 가족 모두 사이가 좋아요.”

2000년대에 문소리씨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바람난 가족>, <효자동 이발사>, <사랑해, 말순씨>, <가족의 탄생>,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하하하> 등 작품성과 화제성을 인정받은 영화들에서 잇따라 주역을 맡았다. 사진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바람난 가족>, <효자동 이발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2000년대에 문소리씨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바람난 가족>, <효자동 이발사>, <사랑해, 말순씨>, <가족의 탄생>,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하하하> 등 작품성과 화제성을 인정받은 영화들에서 잇따라 주역을 맡았다. 사진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바람난 가족>, <효자동 이발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자신이 만든 영화로 아카데미상 받은 맥도먼드처럼 제작·연출가로 욕심

장 감독과 그는 2015년 4월 딸 이름을 따 ‘영화사 연두’를 설립했다. 대표는 장 감독이고 그는 이사로 등재돼 있다. 장 감독이 연출해 800만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1987>(2017), 문씨가 연출한 <여배우는 오늘도>(2017)와 프로듀서로 참여한 <세 자매>(2020) 모두 연두가 제작했다.

- 연출과 제작에도 나선 이유가 뭔가요.

“영화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연기도, 연출도, 제작도 결국 영화를 만드는 일이잖아요. 2013년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제가 영화나 연기 전공이 아니어서(성균관대 교육학과 졸업) 늘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연두가 아기였을 때, 제 안의 에너지가 다 고갈된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영화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2년간 연출 공부를 했죠. <여배우는 오늘도>는 대학원에 다니며 과제로 제가 만든 세 편의 단편을 옴니버스로 엮은 거예요.”

- 영화사 연두의 차기 제작 계획은 잡혀 있습니까.

“하하하…. 그런 것 없어요. 재미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연출을 할 수도 있고 영화하는 친구들과 작당모의를 하다가 이런 거 한번 해볼까 하면 제작할 수도 있어요. 최고의 배우인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자신이 제작한 <노매드랜드>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어요. 저도 그녀처럼 좋은 배우이자 제작자, 혹은 연출가로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 <여배우는 오늘도>는 픽션이라고는 하지만 ‘배우 문소리’의 삶도 섞여 있어요. 극중 자신의 외모를 유머로 승화시켰는데, 실제로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적이 있나요.

“아니요. <박하사탕>으로 데뷔한 직후 만난 몇몇 기자분들의 첫 반응이 ‘여배우 할 외모는 아닌데…’였어요. ‘그래요?’ 하면서 속으로 ‘동네에선 늘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는데…’ 하고 생각했죠. 그리고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배우에게 기대하는 예쁘다는 게, 아름답다는 게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었죠. 결론적으로 책임감을 갖게 됐어요.”

- 어떤 책임감 말인가요.

“<오아시스>는 한공주를 보여주면서 정면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요. 추해? 왜인 줄 알아? 이들의 사랑은 나쁜 거야? 사랑은 아름다운 거 아니야? 하는…. 저는 생각해봤어요. 여배우는 대중 앞에 아름다움을 뽐내야 하는 사명감을 가진 직업인가? 그렇게 안 하면 안 되는 것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너무 획일적이고 상업적이지 않은가? 제 결론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직업이니 좀 더 다양한 아름다움, 강한 아름다움을 나누는 배우가 돼야겠다는 거였어요.”

- 그래서 성형을 안 하는 거군요.

“하하하…. 그런 고민하다가 시기를 놓쳤어요. 그리고 저는 어떻게 늙는 게 좋을지에 대해 늘 생각해요. 배우로서는 맥도먼드처럼 멋있고 힘있게 늙어가고 싶어요. 맥도먼드의 버석하고 주름진 얼굴이 아니면 <노매드랜드>에서 그런 압도적 연기를 할 수 없으니까요.”

문소리씨가 감독을 맡고 배우로 출연한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포스터, <여배우는 오늘도> 촬영현장의 문소리 감독, 그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영화 <세자매>.

문소리씨가 감독을 맡고 배우로 출연한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포스터, <여배우는 오늘도> 촬영현장의 문소리 감독, 그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영화 <세자매>.

- 그러면 자연인 문소리에게 나이듦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이제는 자연스럽게 죽음까지도 고려하게 되니까 예전보다 세상을 넓게 보게 됐어요. 삶에서 중요한 게 뭔지, 놓치고 있는 게 뭔지, 좀 더 투명하게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니 잘 늙으면 더 현명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키려고, 머무르려고 애쓰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요. 삶에 정답은 없겠지만, 무엇을 해야 좀 더 재미있고, 좀 더 행복한지 아니까 그걸 찾아 나아가는 삶을 살 생각이에요.”

- 정상급 40·50대 남녀 배우를 비교할 때 여배우의 캐스팅 기회가 여전히 적은 현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래서 제가 잘해야죠. 할 일이 많아요. 페미니즘이 사회적 트렌드이고, 한국의 여성운동사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시기잖아요. 이런 시대를 제가 관통하는데, 나 몰라라 할 수 없어요. 저는 여배우이면서 선배니까요. 안 되면 제가 직접 만들기라도 해야죠. 또한 여성의 이야기뿐 아니라 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기획되고 소비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싶어요.”

- 과거 민노당을 공개 지지했는데, 지금도 진보정당 당원인가요.

“아니에요. 민노당 시절 탈당한 후 지지하는 정당이 없어요. 당시엔 진보정당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해 당원이 된 건데, 그 안에서 정파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견디기 힘들었어요.”

문소리씨는 배우이자 제작자인 “프랜시스 맥도먼드처럼 멋있고 힘있게 늙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페미니즘이 트렌드이고 한국여성운동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며 “이런 시대를 관통하는 여배우이자 선배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문소리씨는 배우이자 제작자인 “프랜시스 맥도먼드처럼 멋있고 힘있게 늙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페미니즘이 트렌드이고 한국여성운동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며 “이런 시대를 관통하는 여배우이자 선배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여성 이야기뿐 아니라 더 다양한 소재들 기획되고 소비되는 역할 할 터

3년 전 그의 가족은 호수가 보이는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의 4층짜리 테라스형 아파트로 이사했다. 보증금 3억원에 월세 50만원 정도를 내는 기업형 임대주택이다. 대부분 이 집에서의 시간은 그와 달마, 보리, 셋이 보낸다. 친정 부모님은 같은 동이지만 두 개 층 아랫집이고, 연두도 제주도로 이사한 삼촌 가족을 따라 나서 그곳 국제학교로 전학을 갔다. 올 초 시니어모델로 나서면서 화제가 된 문씨의 어머니 이향란씨(69)의 삶도 돌봄노동에서 해방된 만큼 한층 더 독립적이 됐다. 이씨는 포장마차, 토스트 장사로 생계를 일구고 두 노모에 자식, 손주까지 밥을 해먹이며 평생을 희생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뷰 내내 문씨는 몹시 솔직했고, 유머러스했다. 그는 “<세 발로 하는 산책>을 통해 독자들이 온기를 느꼈으면 좋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뿐 아니라 사람과 동물, 그리고 사람과 자연의 온기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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