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제일 비쌌던 사진···"거스키의 시선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김창길 기자
얼음 위를 걷는 사람 Eislaufer, 2021,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얼음 위를 걷는 사람 Eislaufer, 2021,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무함마드 빈살만의 요트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다. 2017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4억5300만달러에 거래된 ‘살바토르 문디(구세주)’다. 역대 미술품 경매 중 최고가로 낙찰된 그림이다. 문제가 된 것은 아랍의 왕자가 예수의 초상화를 거액으로 사들여 개인 요트에 걸어놨다는 점이 아니다. 1500년 전에 그리스도의 얼굴을 붓질한 사람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논란이었다.

미술품 경매가를 결정짓는 요인은 복합적이다. 예술가에 대한 평가, 작품의 가치, 공급자 독점의 경매 시스템, 그리고 수집가의 개성 등등. 고가의 경매에 참여하지 못하는 구경꾼들이 따져볼 만한 대목은 예술가와 작품의 가치에 대한 평가다. 사진 작품의 최고 경매가는 얼마일까? 가장 비싸게 거래된 사진은 그만큼의 가치를 갖고 있을까?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 Chicago Board of Trade III, 2009,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복사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 Chicago Board of Trade III, 2009,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복사

본론으로 들어가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화두로 삼았던 가장 비싼 사진의 목록이 글을 쓰고 있는 도중에 바뀐 것이다. 초현실주의 작가 만 레이(1890~1976)가 찍은 누드 사진 ‘앵그르의 바이올린(1924)’이 지난 14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1240만달러에 팔렸다. 종전 최고가의 세 배 가까운 가격이다. 궁여지책으로 나는 말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현존’ 사진작가의 사진 중 제일 비싼 작품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거스키풍’을 세계에 일으킨 작가라고 비평가 제프 다이어는 <인간과 사진>에서 소개했다. 독일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거스키’이다. 그의 사진 ‘라인강Ⅱ(1999)’는 201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430만달러에 낙찰돼 당시 최고 비싼 사진으로 기록됐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11년 동안 가장 비쌌던 사진을 찍은 현존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거스키. 마침 한국에서도 그의 사진전이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거스키의 사진을 말할 때 우선 짚고 넘어야 할 큰 산이 하나 있다. 그의 작품이 ‘현대’ 사진이라는 점이다. ‘현대’라는 단어가 붙은 그림, 음악, 무용 등 예술은 이해가 쉽지 않다. ‘현대’라는 개념을 짚어봐야겠지만 이 또한 난해하다. 범위를 좁혀 현대 이전의 독일 ‘근대’ 사진을 살펴보는 우회로가 지름길일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근대’ 사진이란 20세기 초 회화로부터 사진의 독립을 선언한 미국 사진작가 앨프리드 스티글리츠가 주장했던 스트레이트 사진이다.

F1 피트 스톱 I F1 Boxenstopp I, 2007,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복사

F1 피트 스톱 I F1 Boxenstopp I, 2007,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복사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뒤셀도르프 예술아카데미에서 처음으로 사진 강좌를 개설한 베른트·힐라 베허 부부 교수를 사사했다. 많은 사진가가 그렇듯이 베허 부부는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들을 사진 찍었다. 피사체는 공장, 발전소, 급수탑, 송전탑 등 낡은 산업 건축물이었다. 비슷한 부류의 건축물들을 찍어 늘어놓거나, 건물 하나를 여러 각도에서 찍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 같은 사진가의 감정은 배제됐다. 피사체를 균질하게 사진에 담기 위해 정면에서 전면을 찍었다. 형식적인 엄격함은 사진가의 개성을 사라지게 했다. 부부가 찍은 사진은 어느 사진이 누가 찍은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베허 부부의 엄격한 사진 방법론은 그들이 영향을 받았다고 거듭 강조한 독일 사진의 선구자 아우구스트 잔더의 유산이었다.

잔더의 기획은 원대했다. 자기 민족의 얼굴에 대한 목록을 집대성하는 것! 1929년 잔더는 <시대의 얼굴>이라는 사진집을 발간했다. 무역업자, 계층과 직업, 여성, 도시, 최후의 사람들, 농부, 예술가 등 7개 항목으로 분류된 독일인의 초상이다. 정면을 바라보는 시대의 초상들은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주장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비평가 발터 베냐민은 잔더가 “예이젠시테인이나 푸도프킨이 열어 보여준 엄청난 관상학적 전시회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일군의 얼굴들을 모아 보여주었다”고 <사진의 작은 역사>에 썼다.

아우구스트 잔더의 엄격함을 계승한 베허 부부는 사물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빛의 성질을 고민했다. 그림자를 만드는 직사광선을 피하기 위해 구름 낀 흐린 날의 빛을 선택했다. 엄격한 정면성과 더불어 음영이 사라진 균질한 색감을 보여주는 베허 부부의 사진 미학은 제자들에게 전수됐다. 거스키를 비롯한 토마스 루프, 칸디다 회퍼 등 제자들은 무미건조한 일상의 풍경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무표정(deadpan)’의 사진 미학을 완성했다.

라인강 III Rhein III, 2018,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라인강 III Rhein III, 2018,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한국에서 전시 중인 거스키의 ‘라인강Ⅲ(2018)’은 11년 동안 가장 비싼 사진의 지위를 누렸던 거스키의 ‘라인강Ⅱ(1999)’의 후속작이다. 거스키는 19년이 지난 시점에 같은 장소에서 라인강을 사진 찍었다. 베허 부부의 충고대로 흐린 날씨에 촬영했다는 점은 바뀌지 않았다. 변한 것은 라인강의 생태였다. 초록빛으로 물들었던 강변 들판이 누렇게 바랜 라인강의 모습은 환경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사진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숨 막히게 감도는 적막감이었다. 뒤셀도르프의 라인강은 이토록 고요한 풍경일까? 그러나 거스키의 라인강 사진은 실제의 모습이 아니었다. 건물, 사람 등 눈에 거슬리는 피사체들이 디지털 기술로 삭제됐다. 강과 둔치, 그리고 하늘이 만나는 수평의 선들은 어느 지점이 가깝고 먼 곳인지 알 수 없도록 컴퓨터로 선명하게 보정됐다. 사진에서 모든 지점이 선명하다는 것은 카메라 렌즈가 만들어내는 원근감이 제거됐다는 것과 같다. 남아 있는 라인강의 풍경은 색과 면과 선이다. 사진을 본 어떤 이들은 바넷 뉴먼이나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화를 떠올린다.

거스키의 시선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한 평론가는 “신의 시점”이라 표현했다. 거스키는 올림포스의 제우스나 거신족 타이탄처럼 하늘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본다. 신은 보고 싶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멀리서 관조하면서 동시에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다시 말해 거시의 세계와 미시의 세계가 공존한다. 3m가 넘는 거스키의 사진을 멀리서 볼 때는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사물들의 모습이 오롯이 드러난다. TV 모니터의 붉은색 주사선처럼 보이는 ‘무제XIX(2015)’를 구성하는 피사체는 튤립이다..

무제 XIX Ohne Titel XIX, 2015,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무제 XIX Ohne Titel XIX, 2015,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지금껏 살펴본 거스키 사진의 효과는 디지털 작업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의 어떤 분위기이다. 즉, 어느 시간과 특정한 장소에서 포착된 사진의 기운이 아니다. 스트레이트 사진을 고수하는 사진가들에게 거스키의 사진은 가짜 사진일 수도 있겠다. 틀린 말은 아니다. 현대사진을 만드는 작가들은 사진을 개념미술의 ‘도구’로 받아들인다. 디지털 기술도 마찬가지다. 1995년 독일 뮌헨에서 열렸던 사진 학술회는 디지털과 사진에 대한 논의를 전개했다. 주제어는 ‘사진 이후의 사진’이었다. 디지털 사진은 디지털임을 밝힌다면 사진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에서 사진 이후의 사진으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한 장의 사진이 모든 진실을 말해준다고 생각하는 낭만적인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 현대의 감수성이다. 사진은 그때 그 장소의 어떤 장면을 기계적으로 지시한다는 명제는 유지된다. 이는 필름의 화학적인 반응이든 픽셀의 디지털 방식이든 마찬가지다. 이러한 사진의 지표적(index) 속성은 ‘지각된 세계는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라는 20세기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에 들어맞는다. 그의 생각은 시대가 흐른 뒤에도 적절해 보인다. 현실은 복잡하고 애매하고 다양하고 단편적인 것들이 뒤섞여 있다. 메를로퐁티의 책 제목처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사진은 개입한다. 사진 이후의 사진을 만드는 작업은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의 징후들을 포착하려는 노력이다.

21세기 전후로 확산된 ‘타블로 형식(former tableau)’의 사진은 대표적인 사진 이후의 사진이다. 마땅한 한국말로 해석한 사진 비평가를 아직 찾지 못했다. ‘그림 형식’의 사진 정도로 타블로 사진의 의미를 적어본다. 사진으로 된 그림으로 설명하는 이도 있다. 어쨌든 키워드는 사진과 그림이다. 둘은 개념의 간극이 크다. 그림은 기억에 의존한 허구의 이미지다. 사진은 현실의 기계적인 기록이다. 타블로 사진은 이 둘을 포개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여기서 디지털 기술은 필름 사진의 암실 작업을 대체한다.

타블로 사진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시작된다. 현실을 사진 찍은 후 변형시키는 방식과 어떤 장면을 연출해 사진 찍는 것이다. 전자의 방식으로 대표적인 사람이 거스키이고, 후자는 캐나다 작가 제프 월이다. 아프가니스탄에 가본 적이 없는 제프 월은 1992년 포탄이 떨어진 후의 장면을 연출해 사진 찍고 ‘죽은 병사들의 대화-매복 공격을 당한 뒤의 소련군 정찰병들의 습격, 아프가니스탄 모코르 근처, 1986년 겨울’이라는 긴 제목을 달았다. 영화적 상황을 재연한 제프 월의 작품은 2012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360만달러에 낙찰돼 아홉 번째로 비싼 사진이 됐다.

두 가지 성향의 타블로 사진은 사진과 그림의 농도가 다르다. 사진적인 것에 좀 더 가까운 것은 거스키의 방식이며 거스키 자신도 “사진이 대상을 떠나 추상미술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거스키의 방식은 사진에서 출발해 그림에 다가간다. 반면 제프 월은 그림이나 영화, 혹은 연극 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것에서 시작해 결과물을 사진으로 남긴다.

타블로 사진은 역사화처럼 크다. 그림처럼 전시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관람객을 염두에 두고 해석의 공간을 열어둔다. 거스키 방식은 일상의 무미건조한 풍경을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제프 월의 방식은 관람객의 부재를 허구적으로 상정한 배우들이 정지된 자세로 연기하는 회화적이거나 영화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타블로 사진은 기존에 우리가 보던 친숙한 사진의 풍경이 아니다. 수동적인 관객의 눈에 타블로 사진은 지루한 이미지일 수도 있다. 타블로 사진은 관람객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는 미완의 이미지이다.

아마존 Amazon, 2016,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아마존 Amazon, 2016,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거스키의 사진에는 기하학적인 패턴이 지루하게 반복된다. 할인 마트를 사진 찍은 ‘99센트Ⅱ(2001)’와 물류창고를 찍은 ‘아마존(2016)’에서 반복되는 것은 수평으로 설치된 선반 위의 상품들이다. 쓰임새가 다른 공간이지만 마트와 물류창고를 구성하는 공간의 유형은 같아 보인다. 유형을 찾아내는 것이 독일 사진가들의 전통이고 전형일까? 어떤 이는 무한 반복되는 상품의 이미지를 보며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와 비교한다.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사진을 보기 전과 후의 세상은 다르다. 대형 마트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반복되는 수평의 이미지를 본다. 거스키 사진의 잔영이 내 머릿속에 남아 있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미국의 할인 마트와 한국의 대형 마트는 장소는 다르지만 상품을 진열하는 공간의 논리는 동일하다. 거스키가 디지털 기술로 보여주고자 했던 이미지는 외눈박이 렌즈로 포착된 풍경의 단면에 가려진 세계가 아닐까? 보이는 것 너머에 존재하는 플라톤의 이데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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