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시적 먹방 과잉의 시대에 반기 드는 유튜브 채널 ‘밥맛 없는 언니들’

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

고독한 소식가, 내 ‘食’대로 살기로 결심하다

[이진송의 아니 근데]과시적 먹방 과잉의 시대에 반기 드는 유튜브 채널 ‘밥맛 없는 언니들’

최근 유튜브 채널 ‘흥마늘 스튜디오’가 <밥맛 없는 언니들>이라는 신개념 ‘먹방’을 시작했다. 연예계에서 대표적인 소식가로 유명한 산다라 박과 박소현이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먹방계를 뒤집을 소식좌들의 먹방 도전기.” 먹방은 ‘먹는 방송’의 줄임말이고, 소식좌란 적게 먹는 사람을 일컫는 인터넷 용어이다. 작년에 김숙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최강 소식좌 박소현&산다라 박과 함께한 비디오 스타 먹방모음(4년 치) 대공개” 영상을 올리면서 소식하는 식습관이 큰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나 혼자 산다>(MBC)에 출연한 코드 쿤스트와 안소희, <전지적 참견시점>(MBC)에 출연한 안영미의 소식이 연달아 온라인에서 인기를 몰며 ‘소식좌 라인’을 형성했다. 지난 7월 시작한 <밥맛 없는 언니들>은 에피소드당 조회 수 100만~200만 이상을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밥맛 없는 언니들>의 소개 영상처럼, 대식이 주류인 먹방 생태계에서 적게 먹는 먹방의 등장과 인기는 무엇을 의미할까?

처음에는 다소 ‘어이없는’ 웃음이 매력 포인트다. 김숙이 올린 영상은, 김숙이 박소현과 산다라 박에게 “다 먹었어?”라고 물은 후 그들의 앞에 남은 음식을 잡는 앵글이 반복된다. 너무 배부르다고 손사래를 치는 이들 앞에 남은 것은 딱 한두 입 정도가 스쳐 지나간 음식. 가운데 있는 잼 부분까지는 진출하지도 못한 채 모서리만 살짝 베어 먹은 과자나, 이제 막 뜯은 듯한 떡볶이를 보면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든다. 순간 그것을 신속히 걷어가는 ‘대식좌’ 김숙의 손이 앵글에 잡히면, 웃음이 난다. 대식·소식 먹방의 웃음 요인은 계속해서 기대를 배반하는 의외성에 있다. ‘1인분은 이 정도’, ‘적정량은 이 정도’. 기존의 대식 먹방은, 이 도식을 파괴하며 엄청나게 많이 먹는 것을 묘기처럼 선보인다. 감상자는 한꺼번에 접시를 12개 돌리는 기인을 보는 듯한 재미와 쾌감을 느낀다. “이게 되네?” 반면 소식 먹방은 ‘1인분은 이 정도’, ‘이 정도는 먹어야 잘 먹은 것’, ‘많이, 복스럽게 먹어야 호감’이라는 암묵적 합의를 반대쪽에서 뒤집는다. 한없이 작은 한 입으로. <밥맛 없는 언니들>에서 고기 한 점을 약 5분간 씹고, 세 점을 먹은 후 식사를 끝내는 박소현, ‘옹졸한 면치기’라고 불릴 만큼 적게 집은 면발을 (열심히) 호록호록 먹는 산다라 박, 고구마를 딱 한 개만 구워서 먹는 코드 쿤스트, 달걀 반쪽을 2분 넘게 씹는 안소희의 모습은 낯설고도 신선하다. “어? 이것도… 되네?”

연예계에서 대표적인 소식가로 유명한 산다라 박과 박소현이 출연하는 신개념 ‘먹방’ <밥맛 없는 언니들>이 대식이 주류인 ‘먹방’ 생태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소식좌’는 적게 먹는 사람을 일컫는 인터넷 용어다. 해당 프로그램 화면 캡처

연예계에서 대표적인 소식가로 유명한 산다라 박과 박소현이 출연하는 신개념 ‘먹방’ <밥맛 없는 언니들>이 대식이 주류인 ‘먹방’ 생태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소식좌’는 적게 먹는 사람을 일컫는 인터넷 용어다. 해당 프로그램 화면 캡처

‘1인분’에 대한 사회적 규정 뒤집어…구박받던 소식인들 “공감”
더 많이·더 요란하게 먹는 기존 ‘먹방’에 대한 반감도 인기 요인
중요한 건 각자의 ‘정량’ 찾는 것…기후위기 시대 새 관점 필요

소식 먹방의 인기 요인 중 두 번째는, 소식좌의 발견과 그에 대한 존중이다. <밥맛 없는 언니들>이나 소식좌의 영상을 모아놓은 유튜브 댓글을 보면 그동안 핍박받았던 소식좌의 성토와 공감이 넘쳐난다. <밥맛 없는 언니들>에서 산다라 박과 박소현은 언제든 그만 먹겠다고 선언할 수 있으며, 제작진은 억지로 더 먹이지 않는다고 자주 알린다. 먹을 만큼 덜어 먹을 수 있는 개인 그릇은 본인의 취향에 따라 ‘대·중·소’로 나뉘어 제공된다.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소식좌가 대식좌에게 배우는 형식을 띠지만, 에피소드 5화에서 박소현이 ‘소식 먹방’의 비결을 가르치기도 한다. 언제나 가르침의 대상이었던 소식좌와, 적게 먹는 방법에 놀라는 대식좌의 모습이 전복적인 재미를 준다. 에피소드 2화에 등장한 김숙은 산다라 박과 박소현에 맞춰 다양한 음식을 조금씩 맛볼 수 있도록 코스 요리를 구성했다. 김숙은 소식좌가 남긴 음식을 다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하고, 소식좌는 대식좌에게 “오늘 많이 시켜도 돼요?” 하고 설레한다. 음식에 대한 호기심은 양과 무관하게 진심인 듯하니. <밥맛 없는 언니들>은 아니지만, <비보 TV>에는 종종 서로 다른 식욕의 소유자인 안영미와 신봉선의 영상이 올라온다. 신봉선의 음식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나 이를 관전하는 안영미의 매너리즘(!)은 합이 잘 맞는다.

현실에서, 적게 먹는 사람은 ‘복이 나간다’, ‘뭘 모른다’, ‘그게 다 먹은 거냐’, ‘팍팍 좀 먹어라’, ‘제사 지내냐’ 같은 구박에 일상적으로 시달린다. <나 혼자 산다>에 소식좌가 출연했을 때 패널의 반응이 대표적이다. 고구마를 한 개만 먹거나 면을 끊어 먹으면 답답해하는 식이다. A만 먹으면 A와 B를 함께 먹지 않는다, 먹을 줄 모른다고 또 난리가 난다. 소식좌는 어쩌면, 모두가 비슷한 메뉴를 비슷한 양으로 먹는 것이 미덕으로 통하는 식탁에서 눈칫밥을 먹느라 배가 더 빨리 불렀을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회는 본래 개별성이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모두가 다 같이’, ‘흥겹고 풍족하게’ 먹는 것을 선호했다. 이는 밥상공동체를 통해 ‘정(情)’을 나누는 것이 한국인의 중요한 정체성이었던 배경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식성이나 정량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모두가 다 같이’의 모호한 기준은 결국 강요로 작동한다. 소식좌에 대한 구박 층위 속에는 편식 혹은 알레르기, 채식에 가혹한 기준도 포함된다. 결국 ‘유난 떨지 말라’는 것이다. 적게 먹든, 가려 먹든, 다수 혹은 권력자(가정이라면 가부장의 입맛, 회사라면 상사의 취향)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강력한 신호.

만약 소식좌가 여성이라면, 여기에 ‘다이어트 하냐’는 핀잔을 추가로 획득할 수 있다. 한때 예능에 출연했던 걸그룹 멤버가 수박을 먹는데 수박이 줄어들지 않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저런 것도 살찐다고 안 먹는, 여우 같고 얌체 같은, 관리에 목숨 거는 여자.” 여자의 ‘먹는 행위’는 48㎏의 티파니에게 ‘돼지’라는 별명을 붙이지만, 진짜 ‘돼지’가 되면 안 되는데, 눈에 띄게 적게 먹거나 다이어트 하는 티를 내면 즉각적으로 멸시당하고, 같은 돈을 낸 손님에게 성별에 따라 다른 양의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이 있을 만큼 여성은 적게 먹을 거라 여겨지는,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되지만 유난히 적게 먹어서도 안 되는… 촘촘한 억압과 혐오의 경계에 있다. JTBC가 만들었던 기괴한 예능 <잘 먹는 소녀들>은 아이돌 멤버들이 얼마나 잘 먹는지 과시하는 포맷으로, “먹는 것에 유난 떨지 않고 털털하면서도 마를 것”을 원하는 욕망을 전면에 내세웠다.

소식 먹방의 인기 요인 세 번째는, 기존 먹방과 식문화에 느끼는 피로감이다. 먹방의 유행이 현대인의 정서적 허기 때문이라거나, 여성들의 다이어트에 대한 스트레스를 대리 충족하는 체험이라는 분석 등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해석은 다양하다. 그런데 먹방이 중요한 영상 콘텐츠로, 먹는 행위가 시각적 퍼포먼스이자 쾌락의 채널로 전환되면서,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거칠게 요약하면 가혹한 식사 행위의 유행(살아 있는 생물을 그대로 먹는다거나, 커다란 음식을 자르지 않고 꾸역꾸역 먹는 것), 식사 예절의 파괴 및 ‘요란한’ 식사법의 유행(후루룩 소리를 내는 면치기나, 쩝쩝거리면서 먹는 것)이 있다. 얼마 전 <전지적 참견시점>에 출연한 이정재가 국수를 소리 없이 먹어서 화제가 됐는데, 원래 타인과 식사를 할 때는 되도록 소리를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먹는 것이 기본예절이다. 먹방은 ‘푸드 포르노’(로잘린 카워드의 용어로, 포르노적 카메라 기법을 활용해 음식이나 음식 먹는 이를 찍은 이미지를 지칭하는 것. 음식과 먹는 행위가 식욕을 유발하도록 과잉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 문화의 일부인데 이것이 과식과 과소비를 유도한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과시적으로 먹는 행위 혹은 ‘좋은 그림’을 연출하려고 과도하게 많은 음식을 차리는 것은 결국 음식물 쓰레기 생산으로 이어진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매년 전 세계에서 생산하는 식품 중 30% 이상이 낭비되고 있다고 추정하며, 이를 처리하는 데도 엄청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서도 하루 배출되는 식품 관련 쓰레기는 2만t이 넘는다.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 이상으로 잔뜩 먹고 이를 엔터테인먼트로 삼는 것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 소식좌 먹방은 자신에게 딱 필요한 만큼만 먹고, 음식의 양보다 맛에 집중한다. 이러한 콘텐츠는 편향되고 과열된 식문화에 새로운 태도를 환기하며 제동을 걸 수 있다.

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

물론, 소식좌 먹방에도 우려스러운 지점은 있다. 한쪽에서는 목구멍 끝까지 음식을 채우는 것이 미덕이라고 외치지만, 다른 한편에는 마를 것을 요구하는 사회의 강요 때문에 음식 먹기를 거부하는 섭식장애 여성들이 있다. 소식좌 먹방이 ‘따라 해야 할 것’으로, 소식이 대식처럼 ‘숭배해야 하는 것’으로 자리 잡는 방향은 위험하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정량과 체력에 알맞은 양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타인의 섭식에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 무심함, 더불어 기후위기 시대, 음식과 소비에 대한 관점을 새로고침 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잘 먹고 잘사는 것은 중요하지만, 무엇이 ‘잘’ 먹는 것인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먹는 행위에 투영되는 욕망이나 사회적 요구는 무엇인지 좀 더 면밀하게 고찰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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