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울 정도로 안 바뀌는 이성애 사회, 이젠 ‘격세지감’ 좀 느껴봅시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성소수자 커플의 일상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 ‘메리 퀴어’가 보여주는 일상적 차별들

“당당한 연애와 결혼을 항한 다양성(性) 커플들의 도전기, 국내 최초 리얼 커밍아웃 로맨스”를 표방한 OTT 플랫폼 웨이브(wavve)의 <메리 퀴어>.  공식 예고편 화면 캡처

“당당한 연애와 결혼을 항한 다양성(性) 커플들의 도전기, 국내 최초 리얼 커밍아웃 로맨스”를 표방한 OTT 플랫폼 웨이브(wavve)의 <메리 퀴어>. 공식 예고편 화면 캡처

지난 7월,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로 중단되었던 서울퀴어문화축제가 3년 만에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올해의 슬로건은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차별과 혐오를 당하며 죽음으로 내몰리는 현실에서, ‘살자’라는 말의 무게는 목숨처럼 무겁다. 비슷한 시기, OTT 플랫폼 ‘웨이브’에서는 실제 커플의 일상을 관찰하는 연애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메리 퀴어>의 첫 장면은 출연자의 커밍아웃으로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 <메리 퀴어>에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레즈비언, FTM 트랜스젠더, 게이’ 등 성소수자(퀴어)로 자신을 정체화한 인물 6명, 총 3쌍의 커플이 출연한다. 스튜디오 패널로는 홍석천, 하니, 신동엽이 참여한다. 소위 ‘테레비에 나온다’라는 개념의 (공중파는 아니지만) 자본을 낀 채널에서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은 <메리 퀴어>가 처음이다.

<메리 퀴어>.  공식 예고편 화면 캡처

<메리 퀴어>. 공식 예고편 화면 캡처

<메리 퀴어>는 첫 화부터 ‘쿠션’을 깐다. “성소수자의 삶을 권장하거나 응원하거나 미화하는 게 아니라, 담담하게 지켜보면서 진정성에 대해서 생각해본다”라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다. 얘, 이웃집 토토로…는 아니고, 이웃집 <환승연애>(tvN) 좀 봐라. <솔로지옥>(넷플릭스), 돌싱글즈(MBN), <나는 Solo>(ENA PLAY), 하트 시그널 (채널A), 러브캐쳐(TVING)가 얼마나 이성애를 빵빵 권장하고 미화하니? <동상이몽>이나 <우리 결혼했어요>, <슈퍼맨이 돌아왔다>처럼 결혼을 ‘조장’하는 프로그램은 또 어떻고? 어떤 프로그램도 “저희가 이성애를 조장하거나 권장하는 건 아니고요”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었던 연애 세포가 깨어난다며 ‘이성애 권장’을 프로그램의 장점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그런데 소수자는 언제나 ‘해명’하고 ‘인정을 구’해야 한다. <메리 퀴어>의 출연자들 역시 내가 ‘언제’ 퀴어인 것을 알게 되었는지, 만약 동성애자라면 이성‘도’ 만나봤는지(그러니까 사실은 이성을 안/못 만나봐서 착각하거나 모르고 있는 게 아닌지) 등을 끊임없이 설명한다.

홍석천은 <메리 퀴어> 기획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그리고 적재적소에 개입하여 아직 생소한 개념이나 용어에 관해서 설명하고, 진부한 편견이 왜 잘못됐는지 짚어준다. 패널 참여형 프로그램에서 패널은 방향지시등 같은 역할을 한다. 데이트 프로그램의 경우 패널의 코멘트대로 출연자의 언행이 해석되고, 잘잘못이 가려지는 식이다. 그래서 패널의 역할이 중요하다. 홍석천의 진정성은 어둠 속에서 깜박이는 등대의 불빛처럼, 계속해서 출연자를 보호하고 이성애 중심 사회의 편견을 돌아보도록 한다. 프로그램 초반,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던 장면이 있다.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느냐는 질문에 하니가 한 번도 못 봤다고 대답하자, 홍석천은 말한다. “눈치가 없구나.” 하니는 크게 깨달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지만, 시청자 중 여럿은 꽤 뜨끔했을 것이다.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다. 사회적 차별 때문에 드러낼 수 없을 뿐이다. 정말로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사람을 못 봤다’라면, ‘그런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안전한 사람’이 아니어서라는 사실을 숙지할 때다.

<메리 퀴어>.  공식 예고편 화면 캡처

<메리 퀴어>. 공식 예고편 화면 캡처

<메리 퀴어>는 출연자의 일상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이들은 평범하게 행복하고 특별하게 불편하다. 일상적 차별과 장벽 때문이다. <메리 퀴어>에 등장하는 게이 커플과 레즈비언 커플은 각각 결혼을 준비한다. 게이 커플은 구청에 혼인신고를 하러 가고, 레즈비언 커플은 웨딩 업체에 전화를 건다. 그리고 ‘거절’을 경험한다. 혼인신고서는 얼마 전부터 형식상 접수‘는’ 되지만, 승인은 나지 않는다. 레즈비언 커플도 여러 업체에서 거절당한다. 다행히 상담을 받아주는 업체가 있었으나 거절의 경험은 사람을 위축시키고 선택지를 제한한다. 트랜스젠더 커플은 수영장 데이트를 하고 싶지만, 성별 이분법에 따라 만들어진 공간으로부터 거절당한다. 우리 사회의 공고한 성별 이분법은 많은 공공장소를 ‘남/여’로만 나눈다. 이 중 한 군데에 명확하게 속할 수 없는 사람들은 지워지고 배제된다. 성별 정정을 준비하는 FTM(Female To Male, 법적 성별은 여자로 태어났으나 남자로 정체화) 트랜스젠더 지해는 1인 탈의실이 있는 수영장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성별 이분법에서 좀 더 자유로운 공간은 어떻게 가능할까? 5화에서 트랜스젠더 커플이 방문한 병원에는 ‘모두의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다. 이 화장실은 성별과 무관하게 누구나 쓸 수 있다. 모두의 화장실은 트랜스젠더, 화장실에서도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장애인이나 노인, 아동 등에게도 필요한 공간이다. 성별 이외의 요소를 기준으로 삼으면 더 다양한 공간 구획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연자들이 결혼하려고 시도하고, 성별 정정을 해서 주민등록번호를 바꾸려 하자 홍석천은 놀란다. “나 때는 다 포기하고 살았어.” 홍석천의 말은 사회가 성소수자에게 얼마나 많은 선택과 가능성을 박탈했는지, 그렇게 구축된 좁은 세계를 ‘성소수자라서’ 겪는 불행인 양 인과관계를 뒤집었는지 드러낸다. 성소수자라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이성애 중심의 제도와 문화가 성소수자를 전략적으로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홍석천이 커밍아웃한 지 22년이 지났으니 격세지감 정도는 당연히 느껴야 한다. 사회 여러 면에서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른 한국은 3~5년만 지나도 교과 과정이나 경험이 달라져서, “할머니! 요즘 학교에는 선도부가 없어요!” 같은 농담이 SNS에서 유행한다. 그런데 유독 소수자 차별에 관한 문제, 예를 들면 성소수자의 혼인 평등이나 장애인 이동권 같은 문제는 놀라울 정도로 변화가 더디다. 22년이 아니라, 1년, 2년 사이에도 ‘라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급진적 변화가 필요하다.

동성 커플의 혼인신고, 트랜스젠더의 탈의실·화장실 등
그간 성소수자가 부당하게 빼앗긴 선택지와 가능성 조명
이성애와의 유사성 찾기·가족의 고통에 실린 무게중심
신동엽의 무례한 언행과 제작진의 필터링 실패는 아쉬워

아쉬운 점은 <메리 퀴어>의 무게중심이 여전히 퀴어 당사자가 아닌, 사회의 다수이자 편견의 주체인 이성애자에게 실려 있다는 것이다. 퀴어 커플에게서 끊임없이 이성애 커플과의 ‘유사성’을 찾아 동질감을 느끼려 한다거나, 커밍아웃하는 당사자보다는 커밍아웃을 받는 가족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아직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대중이 많을 테니 최대한 온건(?)적으로 접근하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그렇기에 더욱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커밍아웃을 받은 가족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잘못 조명하면 성소수자가 이해를 강요하는 감정적 가해자처럼 보일 위험이 있다. 한편 시청자 사이에서는 패널인 신동엽의 언행이 꾸준히 지적받고 있다. 홍석천의 일상적인 접촉에도 진저리를 치며 ‘남자를 좋아하기에 위협적인’ 존재로 프레이밍한다. “(수영장에서 남자들의 몸을) 네가 게이라 유난히 봐” “수영할 때도 배영만 봐, 남자 배영” 같은 말로 홍석천을 과도하게 성애화하기도 한다. 홍석천이 성소수자로서 살아가며 겪은 내밀한 경험을 고백할 때 갑자기 지겨우니까 짧게 하라거나 “너랑 스캔들 났으면 아구창 10대, 100대 때렸다”라고 말한다. 이런 행동은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이 실재하는 현실에서 매우 무례하다. 그런데 신동엽이 이런 행동을 할 때 제작진의 웃음소리가 그대로 송출된다. 때로는 자막으로 넣어 강조까지 한다. 하나도 재미있지 않다. 제작진이 해야 할 편집은 신동엽의 무례한 행동을 재미로 구성해주는 게 아니라 ‘걸러내는’ 일이다.

홍석천과의 친분, 커밍아웃 후 단절되었던 홍석천에게 신동엽이 힘이 되어주었던 배경은 지금의 혐오 발언과 무관하다. ‘성소수자와 친하니까 호모포빅한 게 아니다’가 아니라, ‘성소수자와 친하고 호모포빅한 발언을 한다’. 신동엽은 기계적으로 ‘틀린 건 없고, 다를 뿐이다’라는 말을 주워섬기지만, 자신의 언행은 다른 게 아니라 틀렸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홍석천이 신동엽의 호모포빅한 발언을 웃음 코드로 받아들이는 것은, 방송에서 홍석천에게 ‘그런 자리’ 정도만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홍석천은 <마녀사냥>처럼 성적인 농담을 자주 하는 프로그램에서, ‘탑게이’ 캐릭터를 내세워 방송인의 입지를 회복했다. 자신을 스스로 웃음거리로 만들고, 조롱과 비하를 유도하는 것은 과체중 코미디언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소수자의 서글픈 생존전략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회조차 얻지 못하니까. 그러나 더는 이런 식의 농담은 웃기지 않다. 홍석천은 신동엽에게 “동엽이랑 이제 헤어질 때가 됐다”고 발언한다. 홍석천이 신동엽과 친구로서 헤어지는 것보다 필요한 것은 신동엽의 ‘헤어질 결심’이다. 자신의 호모포빅한 농담과, 뜨겁게 안녕 좀 하시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메리 퀴어>가 유일무이한 선구자가 아니라, 다양한 연애를 다루는 무수한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메리 퀴어>에 등장한 연인들이 제약과 배제 없이 사랑하며 환대받았으면 좋겠다. ‘메리’하고 ‘해피’한 삶은 특정 정체성에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라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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