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의 기업본색
※대한민국보다 대한민국 기업이 더 유명한 세상입니다. 어느새 수 십조원을 굴리고 수 만명을 고용하는 거대 기업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밖에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박상영의 ‘기업본색’은 기업의 딱딱한 보도자료 속에 숨겨진 행간의 의미를, 공시자료의 수많은 숫자 안에 가려진 진실을 추적하는 경향신문 칸업(KHANUP) 콘텐츠입니다. 더 많은 내용을 읽고 싶으시면 로그인 해주세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성동훈 기자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성동훈 기자

올해 기업들이 검찰 출신 공직자를 적극적으로 영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벌 총수 관련 이슈나 지배구조 개편 등에서 불거질 수 있는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 검찰 출신이 공직사회 전면에 나서면서 대기업들의 검찰 출신 인사 선호현상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6일 경향신문이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퇴직공직자 취업 심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올해 1~10월 자산 5조원 규모 이상 대기업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 검사는 10명으로 전 부처 통틀어 가장 많았다. 경찰청(2명), 공정거래위원회(1명) 등 다른 사정기관 출신을 규모에서 압도했다.

회장 임기 연장 여부에 관심이 쏠린 포스코부터 최근 검사 출신을 적극 끌어들였다. 올해 3월 포스코그룹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는 박하영 전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차장검사를 뽑았다. 박 전 검사가 근무하는 법무팀의 팀장도 수원지검 안양지청장을 지낸 김영종 변호사로, 앞서 지난해 포스코홀딩스로 옮겼다. 지난해 포스코홀딩스는 김강욱 전 대전고검장도 법무 및 대외협력 담당 고문(사장급)에 위촉하기도 했다.

검찰 출신 영입 공들인 포스코

이들은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 핵심인사와 인연이 깊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 팀장은 윤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23기)로, 2003년 ‘검사와의 대화’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청탁 전화 하지 않으셨냐”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김 전 고검장은 2007년 11월 삼성 비자금 의혹 특별수사·감찰본부에서 윤 대통령과 함께 손발을 맞췄다.

올해 영입된 박 전 검사는 주진우 대통령실 법률비서관과 사법연수원 동기(31기)로, 성남FC 후원금을 둘러싼 의혹을 수사하던 중 박은정 성남지청장(29기)과의 갈등으로 최근 검찰을 떠났다.

포스코 사옥. 연합뉴스.

포스코 사옥. 연합뉴스.

포스코가 거물급 검찰 출신 변호사들을 잇달아 영입한 배경에는 윤석열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의지가 깔렸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2021년 연임해 성공했던 최 회장은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성공하면 포스코 회장으로선 처음 정권 교체 후 연임 임기를 채운 주인공이 된다.

최 회장은 윤석열 정부 들어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포스코는 국내 5위 규모의 대기업집단(그룹)인데도 최 회장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해외순방은 물론, 대통령실 행사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재계에서는 “대통령실에서 최 회장에게 3연임을 시도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현재 최 회장은 회사 차량을 개인적 목적으로 이용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불구속 송치되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포스코 회장은 민영화 이후에도 정권마다 부침을 겪었다. 문재인 정부 때는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한 번도 해외순방에 동행치 못했다. 결국 권 전 회장은 임기를 2년가량 앞두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권 전 회장을 포함해 최 회장 이전 8명 포스코 회장 모두 권력과의 갈등으로 중도 사퇴한 흑역사가 있다.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법무 담당 임원은 업무 전문성을 고려해 외부에서 영입했다”며 “특히, 박 전 검사는 공정거래법과 중대재해법과 관련해 전문성을 갖춘 부분이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포스코 이외의 기업들도 검찰 출신을 앞다퉈 데려왔다. 올해 문무일 전 검찰총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던 삼성SDS는 권상대 전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장을 부사장으로 뽑았다. 권 부사장은 검찰 재직 당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저지에 앞장선 것으로 유명하다. 한화솔루션, 한화시스템, 쿠팡, 현대그린푸드도 검찰 출신들을 영입했다.

18년만에 검찰 출신 영입한 현대차

대형 로펌에 취업제한 심사기한(3년 이상)을 넘기며 이력을 쌓은 뒤 최근 대기업으로 옮긴 경우까지 확대하면 검찰 출신을 영입한 사례는 더 많다.

현대차는 올해 김형석 전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변호사(사법연수원 31기)를 데려왔다. 현대차 법무1실 전무로 재직하는 김 변호사는 대검찰청 반부패부 검찰연구관, 울산지검 특수부장검사, 서울서부지검 식품의약조사부장검사 등 요직을 지낸 뒤 2021년부터 화우에서 근무했다.

현대차가 검찰 출신 변호사를 임원으로 데려온 데는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에서 정의선 회장으로의 승계 작업이 한창이던 2005년 이후 18년 만이다. 이 때문에 현대차가 향후 지배구조 개편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사법 리스크를 대비해 검사 출신을 영입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미국 조지아주에서 열린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기공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미국 조지아주에서 열린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기공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정의선 체제’가 구축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정 회장은 정작 핵심 계열사 지분율은 낮아 그룹 지배력은 낮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의 정 회장 지분율은 0.32%에 불과하다. 현대차그룹 지배력은 핵심 주력인 현대차의 최대주주인 현대모비스 지분율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렸다.

정 회장은 정 명예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율(7.19%)에 더해 순환출자 구조 때문에 적은 지분으로도 그룹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배구조가 투명하지 못하다는 비판에 따라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 고리를 해소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 정 회장 지분이 많은 현대글로비스(19.99%)를 통한 지배력 강화를 모색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시장은 예상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으로서는 다양한 변수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는 것뿐 아니라 기업에서 가장 민감한 총수 문제나 지배구조 개편을 두고 사전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검찰 출신을 적극적으로 영입한다”고 말했다. 다만, 현대차는 이번 인사에 대해 “통상적인 법률 자문을 담당하기 위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삼성전자 법무실 임원만 28명

올해 3분기 보고서를 보면 삼성전자 법무실에는 28명의 임원이 재직 중이다. 현대차 법무실 소속 임원 규모(4명)에 비하면 7배나 크다. 이들 중 상당수는 검찰 출신이다. 기업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삼성그룹 20개 상장사의 법무팀 소속 임원 42명 중 검찰 출신은 21명으로 절반이나 된다.

핵심 요직은 검찰 출신이 차지했다. 삼성전자 법무실 수장인 김수목 실장은 검찰 출신으로, 삼성그룹의 옛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법무팀 담당 임원을 지냈다. 2000년 삼성전자에 영입된 엄대현 법무실 송무팀장도 역시 검찰 출신으로 미전실에서 근무했다. 이들 모두 미전실이 해체되면서 2017년 퇴사했다가 2020년 모두 복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재계에서 검찰 출신 변호사의 존재감은 총수 리스크가 부각될수록 커진다. 이들은 직접 재판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주로 외부 로펌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편이다.

실제 승계 과정에서 가장 우여곡절을 겪었던 삼성은 검찰 출신 법조인을 적극 영입해왔다. 이 같은 행태는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을 계기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참여연대는 서울중앙지검장과 수사의 핵심 지휘라인 모두, 삼성전자 법무실 핵심인사들과 학연과 근무경력 등으로 서로 얽혀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 출신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그만큼 전관예우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검찰 출신 인사는 하나의 무기”라며 “윤석열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검찰 출신을 영입하는 것을 보면 기업으로서도 검사를 선호하는 현상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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