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의 침묵은 ‘폭력’이다

김은성 기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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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넘도록 사회를 들쑤셔 놓았던 ‘집게손가락 사건’에 대해 넥슨이 자체 조사를 마무리했다. 지난달 28일 메이플스토리 김창섭 디렉터는 게임 커뮤니티를 통해 “외주사에서 제작한 영상 조사를 마무리했고, 100여개 이미지에 대한 수정을 완료했다”며 “메이플은 모든 외주업체 선정을 원점부터 재검토해 작업물의 품질관리 검수 시스템을 정비해 불편함을 드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게임사들도 같은 공지문을 발표하며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에는 사건 경위에 대한 최소한의 ‘팩트’가 빠졌다. 경향신문은 넥슨이 처음 밝힌 대로 ‘하청사인 뿌리가 일부러 손가락 그림을 넣은 것이 조사에서 확인됐는지’ 물어보니, “공지 외에는 확인해 드릴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게임 커뮤니티 공지 외에 시민과 기자들을 상대로 한 조사 발표 여부에 대해서는 “공지로 갈음한다”고만 답했다.

지난 한 달간 하청사인 뿌리는 인터뷰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넥슨과의 소통 내용과 작업 과정을 공개하며 “애니메이터가 몰래 손가락을 넣을 수 있는(작업)구조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페미니즘 사상을 지지하는 여성 애니메이터가 캐릭터 엔젤릭버스터(엔버) 뮤직비디오(MV)에 집게손가락을 몰래 넣었다는 주장으로 시작됐으나, 40대 남성이 작업한 것으로 밝혀져 새 국면을 맞았다.

또 뿌리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넥슨이 발주단계에서부터 집게손가락이 담긴 참고용 일러스트를 뿌리에 전달했다. 이에 넥슨은 “여러 사안에 대해 팩트 여부를 확인하는 단계”라고 했을 뿐 팩트에 대한 확인은 거부하고 있다.

넥슨이 침묵하는 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게임업계에서는 입에 담기 힘든 온갖 음모설이 떠돌았다. 해당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여성 애니메이터에 대한 신상 공격 등의 2차 가해부터, 뿌리를 둘러싼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넥슨 앞에서 집회를 연 여성단체들은 “죽이겠다”는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넥슨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서비스 업체로서 게임을 이용하는 소비자와 소통하기 위해 ‘일(대응)’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쪽에만 방점을 찍고 소통하는 기시감을 지울 수 없다. 2016년에도 넥슨은 게임 ‘클로저스’의 캐릭터 ‘티나’를 맡은 성우 김자연씨가 트위터에 ‘소녀들은 왕자가 필요 없다’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렸다가 유저에게 공격을 받자 김씨를 교체했다. 그때도 넥슨은 “티셔츠 문제라기보다는 김씨가 트위터로 논쟁을 하면서 ‘게임 이용자를 자극하는 발언을 해’ 콘텐츠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넥슨은 공지문 등을 통해 “모든 혐오 표현에 반대한다”는 원론적 입장은 수차례 강조해 왔다. 하지만 정작 팩트에 대한 넥슨의 침묵으로 SNS에서는 여성과 뿌리를 둘러싼 혐오와 사이버 폭력이 확산하고 있다. 이번 사건 경위에 대해 ‘팩트의 키를 쥐고 있는’ 넥슨이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폭력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넥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밥줄이 끊긴 뿌리가 어떤 오류를 범했는지 팩트를 공개해야 한다. 작업 및 넥슨의 발주 내용을 공개한 뿌리와 달리 넥슨은 아무것도 공개하지 않았다.

또 서비스 업체로서 유저들의 불쾌함을 해소해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시민과의 소통이다. 사건이 터지고 하루도 안 돼 긴급 생방으로 “사안이 심각한 만큼 조사를 통해 재발을 막겠다”고 했던 사람들이 한 달이 넘도록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사건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정확한 팩트를 공개하는 것, 재계 서열 39위인 넥슨이 지녀야 할 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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