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전망보다 경제 더 나빠져…가장 힘든 지금이 구조 개혁 적기”

대담 박병률 경제부장·정리 이창준 기자

⑦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서울 경제교육단체협의회 회의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서울 경제교육단체협의회 회의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예측보다 저출생·고령화 추세 가팔라졌는데 혁신 노력은 부족해…산업 경쟁력 자체에 ‘적신호’
‘정권 바뀌면 저건 뒤집는다’는 분위기 너무 팽배, 충분한 숙의·검증 없이 재탕삼탕 정책 남발
세수 부족은 의무지출 일부 정리가 우선…‘노동자 사기가 높아져야 기업도 잘된다’는 인식 가져야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겸 경제교육단체협의회장(69)은 보수 정권의 경제 관료다. 이명박(MB)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과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을 거쳐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냈으며, 이후 MB 정부 마지막 기획재정부 장관직을 맡았다. 기재부 장관 재임 시절 부자 감세와 선별 복지를 일관되게 주장하는 등 전형적인 보수 경제 철학을 고수했다.

박 전 장관은 지금 한국 경제가 단순히 글로벌 불경기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 자체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10년 전 전망보다 상황이 더 나빠졌다”며 “힘들 때 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가 지난해 1.4% 성장에 이어 올해도 2%대 초반 성장이 예고되면서 장기 저성장 터널 초입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향신문은 당면한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 정파와 무관하게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다는 취지로 지난달 24일 서울 성동구 경교협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 기획재정부 장관 재임 이후 10년여 만에 만났다. 그때도 한국 경제 잠재성장률 하락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10년 전 전망과 지금을 경제 상황을 비교해보면.

“당시 예측보다 더 나빠졌다. 전반적으로 성장 활력이 위축됐고 저출생·고령화 추세가 당시 예측보다 훨씬 가팔라졌다. 반면 혁신이나 구조 개혁 노력은 전혀 없진 않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비춰보면 미흡했다.”

- 지난 10년간 보수와 진보 정부가 번갈아 집권했다. 그간 노동 개혁이나 금융 개혁 등 논의가 없지 않았지만, 정권 성향과 무관하게 구조 개혁이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위정자는 비전과 혜안이 부족했고, 지식인도 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는 총론은 있었지만 각론은 빈약했다. 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부족했다. 개혁은 상당한 저항과 고통이 수반되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이를 추동하려면 창조와 숙의, 헌신하는 리더십 등의 요소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그 어느 하나를 제대로 갖추기 어려운 상황이 아닌가 한다.”

- 정부가 바뀌어도 일정부분 이전 정부의 정책을 이어받는 연속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심지어 보수에서 보수로 정권이 바뀌어도 이전 정권을 지우는 형태가 많았다.

“그렇다. 윤석열 정부도 여러 구조 개혁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미 ‘정권이 바뀌면 저건 뒤집으면 된다’는 식의 분위기가 너무 팽배하다. 국책연구원이나 관료들도 그간 수많은 학습 비용을 치렀기 때문에 바뀐 정부의 철학을 합리화해주는 정책을 내게 된다. 충분한 숙의나 검증 과정이 생략된 채로 자꾸 포장만 달리한 ‘재탕삼탕’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선거철이 임박하면 선심 정책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 올해 한국 경제에 대한 평가는.

“전망이 좋지 않다. 우리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 경제가 작년보다 올해 더 안 좋을 것 같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살아날 기미가 보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V자 반등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에너지 가격은 안정돼 있지만 상방 리스크가 크다. 원화 가치가 이렇게 떨어져 있는데도 수출 반등이 크게 안 되는 상황이다. 우리 수출 경쟁력, 산업의 경쟁력 자체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봐야 한다. 여기에 고금리 여파가 본격화해 가계부채에 반영되면 구매력이 크게 약해질 것이다. 이미 건설경기도 부진흐름이 이어지고 있는데, 내수도 낙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 지금 경제 상황과 정책 방향이 10년 전 MB 정부 당시와 비슷한 것 같다. 집값이 한창 올랐다가 떨어지고, 세계 경제 상황도 안 좋다.

“정책이 닮은 점이 있지만 그건 보수 우파 정부의 성향상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다른 점도 있다. 지금은 자유무역협정(FTA)이 상당히 많이 체결돼 있다. MB 정부 때는 FTA 체결을 통한 경제영토 확장,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외환 방어막 구축, ‘거시 건전성 3종 세트’ 등 정책이 있었다. 외환 부문의 경우 지금은 적어도 대외건전성에 큰 문제는 없다. 지금은 미·중 패권경쟁 등 국제 상황 탓에 경제, 안보, 외교 등이 맞물려 돌아가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현 정부는 ‘경제 안보’에 더 역점을 두고 정책을 펼치고 있다.”

- 올해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재선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돌아온다면 FTA를 두고도 문제 삼을 우려는 없나. 트럼프 재선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트럼프 후보가 천명한 공약을 보면 충분히 걱정할 만한 요소가 있다. 그렇다고 이미 체결된 한·미 FTA를 더 후퇴시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 미국은 의회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트럼프가 당선돼도 공약대로 모두 밀어붙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다만 그의 재선이 한국에 도움될지를 예측하는 것은 내 역량을 넘는 일이다.”

- 윤석열 정부도 MB 정부처럼 감세 기조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현 정부가 감세 기조를 천명하고는 있지만 실제 세율을 크게 낮추진 않았다. 공식적으로 이걸 감세 정책이라고 부르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한다. 상속세를 손봐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얼마나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서 이행하느냐에 따라 감세 여부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했던 것은 그동안 물가 상승에 비춰서 12년간 묶여있던 과세 구간을 약간 조정한 것에 불과하다.”

- 하지만 최근 보수 언론들도 감세에 따른 세수 부족을 우려하고 있다.

“최근에 세수가 많이 줄어든 것은 경기 영향이 크다. 특히 법인세 결손이 예상보다 커진 것은 수출을 비롯해 경기가 살아나면 나아지지 않을까 한다. 세수가 부족하다는 것은 쓸 돈에 비해서 들어오는 돈이 적다는 것인데, 경기가 썩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세금을 더 올려서 맞추기보다는 아픔이 있더라도 지출 중에 자동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것, 즉 의무지출 일부를 정리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닐까 한다.”

- 지난 정권 때는 소득주도성장이나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경제 정책의 방향이 명확했다. 반대로 윤석열 정부는 경제정책의 ‘비전’이 안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이름이 부각될 정도로 큰 정책은 없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창조경제’ 등 대표 ‘브랜드’가 있었는데 지금 정권은 그런 것이 없기는 하다. 그러나 정부의 간섭을 줄이고 민간 부문의 활력을 북돋는다는 큰 방향은 정책에 다 묻어 있다. 문제는 구조 개혁이다. 큰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이걸 장기간에 걸쳐 이행하겠다는 구체적인 논의와 계획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아직까진 부족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 장관 재임 시절에 정책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경제위기를 극복할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런 요술 방망이는 갖고 있지 않다. 다만 힘들 때 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다. 전 세계 사례를 보면 경기가 안 좋을 때 대부분 구조 개혁을 한다. 한국도 외환위기 때 개혁을 많이 했다. 지금 경기가 안 좋으니까 이를 통해 오히려 국민들 공감대를 얻어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 정부 지지율이 낮아 개혁을 추진할 동력이 없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가 구조 개혁에 대한 본격적인 청사진을 내걸고 추진하면 오히려 지지율을 회복할 수도 있다. 물론 청사진을 내놓으면 거기에 대한 반론도 제기될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다듬어가면서 단기, 중기, 장기 과제를 구체화할 수도 있다.”

- 규제완화는 진보 정부가, 규제강화는 보수 정부가 한다면 국민적 동의를 좀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현 정부의 구조 개혁이 한편으론 기업에 유리하고 노동자에게는 고통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좋은 지적이다. 그러나 간과해선 안 될 점은 기업 안에 노동자도 들어있다는 점이다. 기업이 잘돼야 노동자도 잘되고, 노동자의 사기가 높아져야 기업도 더 잘된다. 노사와 대립관계가 있다지만 ESG 관점에서 기업의 가장 큰 이해관계자는 노동자다. 그래서 꼭 기업한테 유리해서라기보단, 노동자가 포함된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 노동 개혁을 하자는 것이다. 당연히 필요하면 지배구조 개혁이나 주주 개혁도 해야 한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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