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가리고’···정부, 뒤로 가는 탄소중립

주영재 기자

재생에너지 목표 하향에 소규모 태양광 지원 축소도

[주간경향] 한국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1년 기준 6.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OECD 평균(17.0%)은 물론이고 OECD 비회원국 평균(10.1%)에도 못 미친다. 주요 선진국이 모두 재생에너지 확보에 열을 올리면서 2020년을 전후해 독일(41.2%), 스페인(37.3%), 영국(43.1%)은 물론 일본(23%), 프랑스(24.5%), 미국(21%)도 한국을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튀르키예도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이 2019년 44%를 차지했다. 2023년 목표치였던 38.8%를 몇년 앞서 초과달성했다. 유럽에 가전제품을 많이 수출하는 탓에 수출 시장의 탈탄소 흐름에 빠르게 적응한 결과다.

한국의 지난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0.2TWh로 전년 대비 29.4% 늘었다. 세계적 추세에 비하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나마 1㎿ 이하 소규모 태양광발전 등이 꾸준히 늘었기 때문에 이룬 성과였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재생에너지는 ‘공공의 적’이나 마찬가지인 신세가 됐다. 태양광 보급 사업을 해온 에너지공단 등을 대상으로 전방위 감사를 펼친 데 이어 올해 8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서는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기존 30.2%에서 21.5%로 낮췄다.

현대모비스가 자사 공장의 주차장 부지를 활용해 구축한 태양광발전 설비의 모습. 현대모비스 제공

현대모비스가 자사 공장의 주차장 부지를 활용해 구축한 태양광발전 설비의 모습. 현대모비스 제공

“소규모 태양광에 혐오 딱지 붙여”
세부 정책도 후퇴하고 있다. 산업부는 지난 11월 3일 천영길 에너지산업실장 주재로 신재생에너지정책심의회 1차 회의를 열고 ‘에너지 환경 변화에 따른 재생에너지 정책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산업부는 먼저 급격한 보급확대 위주의 정책 추진으로 낮은 비용 효율성, 계통부담의 가중, 주민수용성 악화, 국내 산업 생태계 약화 등의 문제들이 발생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수준, 비용효율적, 계통 기반, 주민 수용성 기반, 국내 산업 발전과 함께하는 재생에너지라는 5대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내년부터 발전사업자가 일정 비율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도록 의무화한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비율(RPS)’을 하향 조정하고, 태양광과 풍력의 발전량 비율을 2021년 87:13에서 2030년 60:40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중치도 줄이기로 했다. 소규모 태양광발전 사업자는 그동안 탄소 감축 의무를 부여받은 기업에 REC를 판매하면서 이익을 거뒀기 때문에 소규모 태양광발전의 위축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정부는 발전사업 허가 시 계통상황에 대한 심사요건을 강화해, 1㎿ 이하 태양광 무제한 접속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산업부는 “전력계통을 고려하지 않은 보급으로 송·변전 설비 증설 등 계통 부담이 확대됐으며, 간헐성이 큰 태양광 위주의 보급으로 전력수급 불안정성이 확대되고, 계통보강 및 유연성자원 설치를 위한 추가적인 비용 부담이 초래됐다”고 배경을 밝혔다. 현재 태양광발전 중 소규모 태양광발전이 차지하는 비율은 90% 이상이다. 1㎿ 이하 태양광발전에는 송전선로를 보장해준다는 정책에 힘입어 소규모 태양광발전이 보급됐는데 이제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정부는 소규모 태양광 사업자에게 입찰경쟁 없이 20년간 고정가로 공급 계약을 제공하는 한국형 FIT(발전차익지원) 제도도 연장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비용효율적인 재생에너지 보급을 추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전문가 사이에선 결국 소규모 태양광은 물론 전체 재생에너지 보급 위축으로 이어지리란 우려가 나온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정부가 전력계통 대비를 게을리한 측면을 오히려 비판하고, 투자를 늘려야지 소규모 태양광을 줄이는 방향이 돼선 안 된다”면서 “현 정부가 지난 정부의 정책 실패를 태양광 탓으로 돌리면서 간접적인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별받는 재생에너지
송배전망에서 원전과 석탄 등 국가가 주도해 구축하는 발전원과 재생에너지가 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석광훈 전문위원은 “신한울 1·2호기를 계통연결하기 위해 국가가 주민 민원을 해결해주며 대형송전선로를 설치하는데 호남 등에선 태양광이 많이 늘어 송배전망이 한계에 도달했음에도 투자가 부족해 태양광 사업자들이 수천명씩 송배전망 연계를 기다리며 대기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근본 원인은 송배전망의 제3자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전이 발전·송배전·판매까지 수직독점하면서 (한국수력원자력 같은) 발전자회사 위주로 망 투자를 해 100% 공공목적으로 사용해야 할 송배전망에서 차별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석 전문위원은 “송배전을 한전에서 분리해 망 중립성을 확보하고, 재생에너지이든, 원전이든, 소형이든 대형이든 어떤 발전원도 차별없이 접근성을 보장하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성호 에너지전환포럼 이사는 “그간 풍력은 아예 안 됐고, 그나마 태양광으로 명맥을 유지했는데 그 명맥마저 끊는 것”이라면서 “전 세계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고공행진하는 에너지 가격을 낮추기 위해 재생에너지 보급을 늘리는 상황에서 우린 오히려 목표치를 줄이고, 재생에너지에 대폭 불리한 여건을 조성한다고 하니 재생에너지 ‘사망선고’라는 느낌까지 받는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국내 발전시장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표현했다. “석탄과 원전은 정부가 사업부지도, 인허가도, 민원도 다 해결해주지만 태양광과 풍력은 민간이 그 모든 걸 다해야 하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된다. 태양광·풍력이 비쌀 수밖에 없게 만든 규제를 해결하고, 가짜뉴스를 단속해야 할 때 정부가 오히려 이를 부추기고 있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더뎌 가격이 비싼데, 비싸다면서 보급에 소극적인 상황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지금처럼 재생에너지 목표치를 줄이는 상황에서는 한국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탄소감축목표(NDC)도 달성하기 어렵다고 본다. “원전은 인허가 기간을 포함해 새로 짓는 데 15년 정도가 걸린다. 태양광·풍력은 1~2년이면 세울 수 있다. 2030년까지 8년 남았는데 2018년 대비 40%를 줄인다면 매년 4.5%씩 줄여야 한다.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화석연료 목표치는 거의 그대로 두면서 재생에너지 목표치만 줄였는데 무슨 수로 온실가스를 줄이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NDC 목표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건 해외용일 뿐 실행은 안 하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산업부가 정책 개선방안을 내놓기 하루 전인 11월 2일 열린 산업부 주최 ‘탄소중립 콘퍼런스’에서는 삼성·SK하이닉스·애플과 RE100을 운영하는 더 클라이밋 그룹이 참석해 정부의 정책에 우려를 표했다. 산업부가 기업 의견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가희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지금도 재생에너지 물량이 없는 상황에서 목표치를 기존보다 낮추는 건 기업 입장에서 너무 걱정된다는 우려였다. 물량이 없다는 건 기업이 비싸게 조달할 수밖에 없고,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불확실성도 그만큼 커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인색한 나라에서 기업이 과연 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까’의 질문을 던졌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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