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 막기 위해 빌딩 숲 꼭대기를 녹색으로 바꾸는 뉴욕

김기범 기자

①뉴욕의 옥상정원

지난달 29일 고층빌딩이 바로 옆에 보이는 미국 뉴욕 맨해튼 자비츠센터의 옥상농장에서 도시농부들이 농작물을 수확하고 있다. 김기범 기자

지난달 29일 고층빌딩이 바로 옆에 보이는 미국 뉴욕 맨해튼 자비츠센터의 옥상농장에서 도시농부들이 농작물을 수확하고 있다. 김기범 기자

태풍, 극한호우, 폭염 등 빈발하는 기후재난 앞에서 기후위기 적응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다.
일부 국가가 탄소 배출량 감축에 들어갔지만 그 효과만 기다리기엔 기후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대부분의 인류는 지금 이 순간도 탄소를 펑펑 뿜어내면서 기후변화를 앞당기고 있다.
세계 각국은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기후위기 적응책을 추진하고 있다. 불투수면적이 도시 전체의 3분의 2에 달해 도시침수의 위험성이 높지만 더 이상 녹지를 조성하긴 어려운 미국 뉴욕시는 옥상녹화 장려책을 도입했다. 뉴욕의 옥상농장에서 진행 중인 도시농업은 빈 곳으로만 여겨온 옥상이 어떻게 기후위기 적응의 최전선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또 2012년 허리케인 ‘샌디’의 직격으로 피해를 본 뉴욕시가 맨해튼 동부 해안에서 진행하고 있는 ‘동부 해안가 복원력(ESCR) 프로젝트’는 기후재난을 겪은 정부와 주민이 이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협력한 대표 사례다.
허리케인처럼 눈에 보이는 위험뿐 아니라 기후위기로 사람들이 잃게 될 무형의 재난에 대비하는 대책도 필수적이다. 특히 문화재 분야의 기후적응대책은 한국 사회가 사실상 아무런 준비도 돼 있지 않은 분야라는 점에서 해외 사례가 더욱 중요하다.
이미 많은 이들이 닥쳐오는 기후위기에 어찌할 바 모른 채 ‘기후 우울’에 빠지고 있다. 영국을 기반으로 10여년 이상 활동해 온 기후심리동맹(CPA)이 기후위기로 불안해하는 개인, 특히 청년에게 ‘급진적 돌봄 공간’을 제공하는 이유다. 문화재 분야의 기후위기 적응책을 세우고 있는 스코틀랜드 문화재청과 달리 한국의 문화재 기후적응 정책은 걸음마 단계다.
어린이까지 참여해 기후적응 계획을 짜는 독일 만하임시의 사례처럼 지자체가 주체가 되는 독일의 상향식 기후위기 적응 정책은 한국의 하향식 기후위기 적응 정책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를 보여준다.
경향신문은 미국 뉴욕과 독일, 영국 등의 기후위기 적응 사례를 살펴본 뒤 한국 사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려 한다. “한국 사회는 기후위기에 충분히 잘 적응하고 있습니까. 기후위기 적응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눈앞의 농장에서 지난해 2000파운드(약 907.2㎏)의 채소를 수확했어요. 이 채소들은 자비츠센터 내 식당에서 식재료로 사용되기도 하고,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도 합니다.”

지난달 29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대규모 전시장 자비츠센터 옥상에서 센터 기획전문담당자 로레타 루리는 옥상농장의 수확물이 어디로 가는지 설명했다. 그는 “농장에서 필요한 물의 대부분은 빗물을 저장해 사용하고 있고, 전체적으로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옥상농장 한쪽에서는 이 농장을 위탁운영하고 있는 브루클린그레인지 농장 직원들이 채소를 수확하는 중이었다. 구석에는 채소 세척과 손질을 위한 작업장이 있고 벌집도 9개가 설치돼 있었다.

지난달 29일 고층빌딩이 바로 옆에 보이는 미국 뉴욕 맨해튼 자비츠센터의 옥상농장의 모습. 김기범 기자

지난달 29일 고층빌딩이 바로 옆에 보이는 미국 뉴욕 맨해튼 자비츠센터의 옥상농장의 모습. 김기범 기자

뉴욕 34번가에서 40번가 사이 허드슨강 인근 6개 블록을 차지하고 있는 자비츠센터는 2014년 리모델링을 통해 옥상에 잔디밭과 태양열발전, 정원과 농장 등을 조성했다. 농장을 포함한 옥상 녹지의 넓이는 7에이커(2만8328.0㎡)에 달한다. 매년 175건 안팎의 행사를 진행하는 대규모 컨벤션센터인 자비츠센터는 ‘지속가능한 건물’로 거듭나기 위해 ‘옥상 녹화’를 결정했다. 센터의 전력 소비를 줄임과 동시에 넓은 면적에 쏟아져 내린 뒤 그대로 우수관으로 흘러가는 빗물을 재활용하기 위한 방안이 옥상농장이었다.

루리는 “옥상정원 덕분에 자비츠센터 내 온도는 여름철엔 5~6도 정도 시원해지고, 겨울철에도 5~6도 정도 따뜻해지는 것으로 드렉셀대 연구에서 확인됐다”고 소개했다. 센터에 내리는 빗물 75%는 농장·정원 내 토양과 빗물탱크에 저장되는데 그 양이 연간 700만갤런(2649만7882ℓ)에 달한다. 그만큼 많은 양의 물이 하수도로 흘러가면 도시 침수 가능성을 높이고, 하천을 오염시킨다.

지난달 29일 고층빌딩이 바로 옆에 보이는 미국 뉴욕 맨해튼 자비츠센터 옥상농장에서 이 센터 직원이 방문객들에게 농장의 작물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기범 기자

지난달 29일 고층빌딩이 바로 옆에 보이는 미국 뉴욕 맨해튼 자비츠센터 옥상농장에서 이 센터 직원이 방문객들에게 농장의 작물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기범 기자

자비츠센터 옥상은 사람만 이용하지 않는다. 정원, 잔디밭을 찾는 조류는 52종에 달하고, 뉴욕에 사는 박쥐 6종 중 5종이 이곳에 서식하고 있다. 관람객들의 출입을 막아 놓은 잔디밭에는 인근 바다에 사는 재갈매기들이 날아와 쉬기도 한다.

자비츠센터를 비롯해 뉴욕 맨해튼 건물들의 꼭대기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녹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지난달 말과 이달 초에 걸쳐 방문한 뉴욕의 옥상농장과 정원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대도시가 기후위기에 적응하기 위해 빌딩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줬다.

지난달 29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 네이비야드의 옥상농장 브루클린그레인지 너머로 맨해튼의 빌딩 숲이 보인다. 김기범 기자

지난달 29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 네이비야드의 옥상농장 브루클린그레인지 너머로 맨해튼의 빌딩 숲이 보인다. 김기범 기자

같은 날 자비츠센터에 이어 방문한 브루클린 네이비야드의 브루클린그레인지에서는 아예 본격적인 농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농촌의 밭과 다른 점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까지 올라갔다는 것뿐이었다.

브루클린그레인지는 옥상농장의 이름이자 옥상농장을 경영하는 단체 이름이다. 홍보담당자 카렌 브루커는 “모든 농사는 사람 손으로, 유기농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총 35명의 도시 농부들이 농사를 짓고 있다”며 “수확한 작물은 뉴욕의 식당들이나 일반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고 있고, 일부는 기부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브루클린그레인지나 자비츠센터의 옥상농장처럼 도시 내, 또는 건물 내에서 농작물의 생산, 소비가 이뤄지면 농작물을 옮길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줄어든다.

지난달 29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 네이비야드의 옥상농장 브루클린그레인지 내의 벌집 모습. 김기범 기자

지난달 29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 네이비야드의 옥상농장 브루클린그레인지 내의 벌집 모습. 김기범 기자

6.75에이커(2만7316㎡) 면적의 브루클린그레인지는 도시농업과 옥상농장의 대표 격으로 뉴욕 내 다른 건물에 도시농업을 전파, 확산하는 역할을 한다. 자비츠센터처럼 옥상농장을 만들고는 싶으나 노하우가 없는 건물들은 브루클린그레인지에 위탁 관리를 맡긴다. 브루클린그레인지에서도 자비츠센터처럼 빗물 재활용, 에너지 절약, 생물 다양성 증진 등의 효과가 확인됐다.

지난 5일 미국 뉴욕 맨해튼 하이라인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방문객들에게 하이라인 내 식물과 주변 건물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기범 기자

지난 5일 미국 뉴욕 맨해튼 하이라인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방문객들에게 하이라인 내 식물과 주변 건물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기범 기자

자비츠센터와 브루클린그레인지가 옥상이라는 빈 곳을 농장, 정원으로 거듭나게 했다면 맨해튼 서부 하이라인은 과거 뉴욕에서 산업용도로 사용되던 고가철도를 시민들의 쉼터로 조성했다. 지난 5일 방문한 하이라인은 고층건물이 산책로 주변에 보인다는 점만 제외하면 숲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줬다.

하이라인은 서울시가 서울역 인근 고가도로에 조성한 서울로7017의 모델로도 알려졌는데 빗물만으로 다양한 식물을 기르고 있다. 길이 2.3㎞의 하이라인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은 698종에 달한다. 도로 군데군데 설치한 거대한 화분으로 식물을 기르면서 끊임없이 물을 공급해야 하는 서울로7017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이라인에서는 내리는 빗물의 80%가량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평균 18인치(45.72㎝) 정도의 토양에 저장된다.

지난 5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하이라인 위를 관광객들이 걷고 있다. 김기범 기자

지난 5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하이라인 위를 관광객들이 걷고 있다. 김기범 기자

모든 건물에 옥상농장이나 정원을 조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건물이 튼튼해야만 옥상에 추가될 토양, 식물 등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 작물 종류나 주변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깊이 30~50㎝ 정도의 흙에다 건물에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한 방수층, 물을 머금도록 하기 위한 혼합섬유, 자갈 등 여러 층의 소재를 깔아야 농사를 짓는 것이 가능하다. 브루커 담당자는 “오래된 건물들이 오히려 튼튼하게 지었기 때문에 옥상녹화에 적합한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지난달 31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식물원 방문자센터의 옥상 녹화 모습. 김기범 기자

지난달 31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식물원 방문자센터의 옥상 녹화 모습. 김기범 기자

자비츠센터, 브루클린그레인지, 하이라인은 위치와 운영 주체 등이 모두 다르다. 그러나 센트럴파크, 리버사이드파크 등의 대형공원처럼 대도시 뉴욕의 불투수면적을 줄여 비가 올 때 하수도에 미치는 부하를 덜어준다는 점은 같다. 뉴욕의 불투수면적은 도시 전체의 3분의 2 정도를 차지하는데 이곳에 내리는 비는 그대로 오염물질과 함께 우수관으로 흘러들어 도시침수 위험을 높인다. 최근 국내에서 여름마다 서울 강남, 신림 등에서 벌어지곤 하는 침수사태 역시 하수 처리 능력 부족과 함께 지나치게 많아진 불투수면적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처럼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옥상농장·정원의 순기능에 주목한 뉴욕시는 2019년 제정한 ‘기후동원법’에 새로 짓는 건물과 공립학교 등에 대해서는 옥상녹화를 의무화하는 조항을 포함했다. 또 기존건물의 옥상녹화를 장려하기 위해 옥상농장이나 정원을 조성하는 기존 건물에는 세금을 낮춰 주기로 했다.

미국 뉴욕과 비교하면 한국의 옥상녹화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도시 내에서 본격적인 농업이 가능한 농장 역시 아직 없다. 대형 빌딩이나 백화점 등에 옥상 정원을 조성해 놓은 곳들이 있기는 하지만 뉴욕의 옥상녹화 사례처럼 빗물만으로 식물 생장이 가능하도록 지속가능한 녹지나 농장을 조성해 놓은 사례는 전무하다.
서울시가 2017년 조성한 서울로7017은 명목상으로는 뉴욕 맨해튼 서부의 대표적 명소 하이라인을 모델로 삼은 공간이지만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는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하이라인은 자생하는 식물만 698종에 달하며, 도심 속의 작은 숲길 역할을 하고 별도의 물 공급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식물들을 심어놓은 토양 자체가 다량의 물을 머금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서울로7017에 군데군데 놓인 화분들에는 끊임없이 물을 공급해야 한다. 빗물만으로는 서울로7017의 거대 화분 속 식물들이 살아남기 힘들다.
하이라인의 식물들이 시민, 관광객들에게 곳곳에서 그늘을 제공하는 것과 달리 서울로7017은 햇볕을 피할 곳이 거의 없다는 점도 큰 차이점이다. 이는 폐선된 고가철도에 조성한 하이라인이 도심 속 녹지로 기능하는 것과 달리 서울로7017을 녹지라 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뉴욕시의 사례처럼 불투수면적이 넓고, 집중호우 때 도시 침수의 위협이 상존하는 서울에서도 뉴욕 같은 옥상녹화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진수 한국인공지반녹화협회 부회장은 “뉴욕시가 기후동원법처럼 강력한 정책으로, 옥상 녹화를 추진하는 것은 추가적인 녹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도시에서 방치된 옥상을 녹화하는 것이 온실가스를 저감하고, 시민 안전을 지키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라며 “한국도 뉴욕처럼 필요한 옥상녹화 정책을 빠르게 실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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