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사교육 좇아···지방공무원, 직장있는 소도시 떠난다

김현수 기자    김원진 기자

소도시 공무원 20~50% 해당

“늦게까지 아이 맡길 곳 적어”

어린이집· 유치원 찾아 이사

“중학교 이후엔 사교육 걱정”

학원 많은 주변 도시로 옮겨

“이왕이면 자산가치 높은 집”

대도시 아파트로 내집 마련 경향

지방공무원 관외거주 비율 추정치. 단위 : %, 자료 : 정보공개청구 통해 취합

지방공무원 관외거주 비율 추정치. 단위 : %, 자료 : 정보공개청구 통해 취합

경북 의성군청 소속 50대 공무원 A씨의 통근 수단은 카풀이다. 집이 대구 북구 칠곡지구여서 근처 사는 공무원 5명이 뜻을 모았다. 의성군청와 칠곡지구 사이 거리는 65km. 군청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칠곡 나들목(IC)으로 나가면 차로 1시간 걸린다.

인구 5만명이 사는 의성군은 A씨의 고향이다. A씨는 서울에서 첫 직장을 다니다 20여년 전 공직에 발을 들여 의성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대구에 거주한다. A씨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대구로 갔다”고 했다. “동료들도 비슷한 이유로 대구에 삽니다. 아마 의성군 공무원 10명 중 3~4명은 대구에 거주할 겁니다.”

일자리의 지역 격차는 20~30대가 지역 중소도시를 떠나 수도권으로 이동하게 만든다. 지방공무원의 패턴은 조금 다르다. 일자리는 지역 중소도시에서 얻고, 생활은 인근 대도시에서 한다. 이른바 ‘관외 거주’ 현상이다.

25일 경향신문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전국 주요 기초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의 주소지 통계(2022년 기준)를 받아 분석해보니, 소멸 위기의 지자체 공무원들은 인근 대도시에 주소지를 둔 경향이 짙었다.

전북 완주군은 소속 공무원 중 절반 가량이 전북 전주시에 주소지를 뒀다. 전남 장성군은 전체 공무원 10명 중 7명 꼴로 광주에 주소지를 뒀다. 경남 의령군 소속 공무원의 경우 10명 중 4명이 창원·진주에 주소지를 뒀다.

농촌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농촌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기초 지자체 별로 공개한 주소지 기준이 조금씩 달라 통계의 정확성은 다소 떨어진다. 일부 지자체는 최근 조사한 주소지를 공개했지만, 입직 당시 등록한 주소지와 현 주소지가 섞인 채 공개된 곳도 적지 않았다.

각 지자체의 수치보다 지방공무원 주소지 통계의 경향성에 주목했다. 지방공무원 20명에게 물어봤더니 통계보다 더 많은 동료들이 관외거주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위장전입 사례도 적지 않다”거나 “체감상 더 많은 인원이 인근 대도시에 거주한다”고 했다.

지방공무원은 왜 인근 대도시로 떠났을까. 이들의 이탈은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교육·보육이 우선이다

지방공무원들은 광주·청주·대구·전주·대전처럼 인구 50만명이 넘는 도시를 찾았다. 충북 보은군 공무원 B씨는 “보은은 대전이나 청주의 수도권 개념으로 보면 됩니다”라고 했다. 보은군 소속 공무원 10명 중 3명은 청주·대전에 주소지를 뒀다. 최근엔 도로가 발달해 생활권이 더 넓어졌다.

지방공무원이 찾는 도시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해 보육·교육 인프라가 갖춰진 곳이다. 지난해 일반직 공무원의 월 평균 소득액은 460만5000원. 지방 중소도시에선 공무원이 소득과 정년이 보장된 드문 직종이다. 일자리가 안정적인 부모들은 대개 ‘대물림’을 위해 자녀 교육에 집중한다.

지방공무원들 사이에선 ‘소도시에서 소신껏 아이를 키우겠다’는 쪽, ‘초등학교까진 보낸다’ 혹은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이 부족해 일찌감치 떠난다’는 이들로 나뉜다.

전남 장성군청에서 근무하는 C씨는 배우자의 직장, 아이들 보육과 교육을 고려해 인근 광주에 산다. 장성군청에서 광주는 차로 20~30분이면 간다. 교육은 선택의 문제에 가깝지만 보육은 당면한 현실의 어려움이었다. C씨는 “장성에는 늦게까지 아이를 맡길 보육시설이 많지 않고, 아이를 맡아주실 분(베이비시터)도 찾기 어려워요”라고 했다.

도시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사진 크게보기

도시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지역의 보육 인프라 부족은 숫자로 확인된다. 전남 내 22개 기초 자자체 중 직장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곳은 10곳뿐이다. 장성군청도 직장 어린이집이 없다. 경북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체 23개 시군 중 직장 어린이집이 없는 기초 지자체가 9곳이다.

장성에는 어린이집 자체가 적다. 지난해 기준으로 장성에는 어린이집이 14개 있다. 이중 국·공립 어린이집은 4개 뿐이다. 전남 구례(7개), 곡성(11개) 등은 장성보다 어린이집이 더 적다.

초등학교까진 보낸다는 쪽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충북 진천군청 공무원 D씨는 “중학교 이후가 문제”라며 “솔직히 초등학교는 학생수가 적을수록 누릴 수 있는 게 많다”고 했다. 지역 초등학교에선 소수 정예로 진행하는 예체능 수업이나 체험활동, 영어 학습이 장점으로 꼽힌다. 그는 “욕심 있는 이들은 중학교 진학과 함께 대입 준비를 하면서 청주로 이사를 간다”라고 했다.

진천은 지난해 7월까지 96개월 연속 내국인 인구가 증가한 곳이다. 지난달 기준 외국인 포함 9만2243명이 산다. 수도권과 가까운 이점을 살려 대기업 공장 등을 유치했다. 그런 충북 진천에도 초등학교는 15개 밖에 없다. 중·고등학교는 각각 7개뿐이다. 지난해 진천의 중학교 7곳 중 2곳에선 결원이 생겼다.

공교육 인프라의 쇠퇴는 사교육 시장 크기와 맞물린다. 칠곡지구는 대구 외곽에 있지만 자체 문화시설과 학원가가 자리잡아 자녀 교육이 수월한 편이다. 2021년 기준 대구 북구에는 사설 학원 638개가 있다. 경북 의성군에는 학원이 17개 뿐이었다. 교습학원 과목수의 차이도 컸다. 교육청 나이스 학원 민원서비스를 보면, 전남 담양군(79개)과 나주시(1083개)의 과목수는 광주시(2만7257개)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인프라 격차는 ‘시간 격차’와 함께 나타난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지난해 펴낸 <지역 불평등: 현황과 개선 방안>을 보면, 중소도시 읍·면의 사교육 수강 시간은 하루 평균 65.9분이었다. 자치구의 동 단위에서는 82.8분이었다.

대학교를 표현한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대학교를 표현한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학원 따라 올라가는 주택 자산가치

충북 청주에는 86만3146명이 산다. 충북에서 가장 인구가 많다. 경제규모가 대전·광주광역시와 맞먹는다. 충북 내 기초 지자체 공무원은 청주로 몰린다. 충북 괴산·보은·진천 공무원은 20~30% 가량이 청주에 주소지를 뒀다. 각 지자체 공무원들은 “통계로 나온 수치보다 더 많은 공무원이 청주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청주에 지방공무원이 몰리는 이유 또한 교육이다. 충북 전체 학원 10개 중 6개(62.9%)는 청주에 있다. 청주의 사설 학원은 2018년 기준 1413개인데 비해, 충북 음성은 87개에 불과하다.

청주에 주거지를 두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자산가치다. 충북 진천군청 공무원 E씨는 “솔직히 장기적인 자산 증식 (가능성)을 보면 그쪽(청주)에 집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 많은 게 당연하지 않나요”라고 했다.

한국의 도시는 사교육 시장 규모와 자산 가격이 대체로 정비례한다. 현재 같은 평수를 비교했을 때, 청주 아파트는 분양을 앞둔 충북 음성 아파트에 비해 2억원 넘게 더 비싸다. 한국 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청주 아파트 매매 가격은 2021년 1월에서 11월 사이 15.59%가 올랐다. 당시 수도권만큼은 아니지만 상승세가 가팔랐다.

지역 소득이 높아도 교육 여건과 주택 자산가치가 떨어지는 곳에는 지방공무원이 주소지를 두지 않는다. 충북 음성이 그렇다. 음성은 인구 10만1606명의 중소도시지만 경제 규모가 크다. 음성의 2019년 기준 지역내총생산(GRDP)는 8조1689억원이었다. 음성군 공무원 중 23.4%(217명)가 청주에 주소지를 두고 있다. 2013년 한 연구는 음성군 공무원 절반이 음성 밖에 산다는 조사 결과를 밝혔다. 음성군 공무원 F씨는 “교육과 미래의 자산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이들이 주로 청주로 떠난다”고 했다.

빈부 격차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사진 크게보기

빈부 격차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그나마 음성은 최근 주거 환경이 개선되면서 변화가 인다. 혁신도시와 음성 구도심에 신축 주택이 다수 들어서고 있다. F씨는 “저도 그렇고 요새 공무원들은 새 아파트가 들어선 혁신도시에 많이 산다. 특히 아이들 다 키운 50대 공무원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했다.

주거 환경 개선은 주거의 질 향상 너머의 의미가 있다. 신축 주거지가 형성되면 주변에는 보육·교육 시설이 갖춰지곤 한다. 충남 공주시 공무원 G씨는 “세종·대전은 아파트 단지 인근에 초등학교가 있다”고 말했다. 지방 중소도시는 공간 범위가 대도시보다 더 넓다. 도시는 주요 시설이 밀집해 있지만 중소도시는 넓게 흩어져 있다는 의미다. 대중교통마저 불편하니 자가용이 없으면 이동도 어렵다.

지역에는 학교나 보육시설과 떨어져 있는 노후주택이 많다.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지어진 지 30년이 넘은 주택 비율은 전남(36.7%), 경북(30.7%), 전북(29.3%), 강원(26.6%) 순이었다. 전남 나주·담양 공무원은 30~40% 가량이 광주에 주소지를 뒀다. 경북 칠곡 공무원은 절반이 대구·경북 구미에 주소지를 뒀다.

관외거주, 문제는 없나

인구감소세가 가파른 일부 지자체는 ‘주소지 단속’에 나서기도 한다. H군청은 타 지자체에 사는 공무원에게 승진 1회 누락 등 페널티를 준다. I군청은 자체 조사에서 주택 한 채에 10명이 위장전입을 한 사례를 확인했다.

지방공무원의 관외거주를 바라보는 시각은 비관론과 현실론으로 엇갈린다.

비록 한 지자체당 관외거주자가 수백명에 불과하더라도 이들이 내는 세금이 소속 지자체에 귀속되지 않게 된다. 한 푼이 아쉬운 지자체 재정에 관외거주는 보탬이 되지 않는다. 지역에서 소득 중상위계층에 속하는 공무원의 거주지 이탈로 지자체 활력이 더 떨어지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반면 지역 중소도시의 교육·보육·주거 등 인프라 부족은 현실이다. 공무원이라도 주거지 이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고, 배우자의 일자리가 지역 대도시에 있어서 주거지로 대도시를 택하는 공무원도 많았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사진 크게보기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관외거주 공무원들의 동기 부여에는 문제가 없을까. 지방공무원들은 “전출도 아니고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다른 지자체에 살면 오히려 그쪽의 정책을 배우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지방공무원 J씨는 “소속 지자체에 살지 않는다고 일을 대충하진 않는다. 다만 내가 사는 곳에서 일한다면 조금 더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라고도 했다.

지방공무원들은 대부분 “답이 없는 문제”라며 자조했지만 전문가들은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소속 지자체에 머무는 게 훨씬 기대이익이 크도록 승진시 우대 등 인센티브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현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교육·문화·의료 ·복지를 한 곳에서 해결하도록 지역별 거점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 화천은 소속 공무원 10명 중 4명이 춘천에 주소지를 두고 있다. 춘천은 강원도청 소재지다. 강원도청-화천군청은 차로 35분이면 오간다. 춘천(29만명)은 강원도 내에서 원주(36만명)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도시다.

화천군 공무원들은 춘천 거주 이유 중 하나로 시험 응시 요건을 꼽았다. 화천군청 지방공무원 시험 응시 요건이 ‘강원도내 거주’만 하면 된다. 시험 응시 전 3년 이상 강원도 내에 거주했거나 시험을 치는 해 1월1일 이전에 강원도에 주소지를 두면 화천군청 시험을 볼 수 있다.

일부 응시자들은 ‘위장전입’으로 고향에 머물려 한다. 대구에 거주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윤모씨(30)씨는 3년째 대구시 일반 행정직을 지원했다. 매번 합격점수를 넘지 못했다. 윤씨는 올해 지인이 사는 경북의 한 기초 지자체로 주소지를 옮겼다. 대구와 가까우면서 합격 점수는 대구보다 낮은 경북의 시·군 일반행정직에 지원하기 위해서다.

윤씨는 “해마다 시험응시 지역을 두고 대구와 가까운 경산시, 칠곡군, 청도군을 둘러싼 눈치싸움이 벌어진다”고 했다. 경북 경산·칠곡·청도는 ‘경북에만 주소지를 두면’ 지원할 수 있는 지자체다. 경북에 잠시 주소지를 옮겨두고 시험에 합격하면, 대구에 살면서도 경산시청과 칠곡·청도군청에 다닐 수 있다. 차로 30~40분이면 출퇴근이 가능하다.

지방공무원 시험 응시자들이 지역 대도시를 원하는 흐름은 ‘합격 커트라인’에서도 나타난다. 2020년 지방공무원 일방행정직 9급 합격 커트라인을 보면, 전주에 있는 전북도청은 391점이었다. 전북 완주군청과 임실군청은 이보다 못 미친 384점과 377점이었다. 지방공무원 시험은 지역에 상관 없이 동일한 문제를 풀기 때문에, 커트라인이 높을수록 지원자들의 경쟁이 치열했다고 본다.

세 도시의 합격 커트라인 차이는 전주 접근성과 관련 있다. 전주는 전북에서 인구(65만2458명)가 가장 많아 ‘전북의 맹주’로 불린다. 지리적으로 전주를 에워싼 완주군은 전주시청까지 차로 20~30분이면 닿는다. 임실군은 완주군보다 전주와 거리가 2배 가량 더 멀다.

응시자들의 위장전입이나 ‘눈치 싸움’을 마냥 탓할 순 없다. 고향을 떠나길 원치 않는 지역 청년들에게 공직은 몇 안 되는 괜찮은 일자리다. 2021년 지방직 9급 일반행정직 경쟁률을 보면, 대전(16.36대1), 대구(17.65대1) 등 수도권 밖 모든 광역 지자체는 서울(14.3대1), 경기(13.4대1)보다 경쟁률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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