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사주 없다”던 윤석열, ‘손준성 승진’시킨 한동훈

이혜리 기자

손준성, 1심서 징역 1년 선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창밖을 보며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창밖을 보며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서울중앙지법이 31일 사실관계를 대체로 인정한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2020년 검찰총장의 ‘눈과 귀’로 불리는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 손준성 검사가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인사 등에 대한 고발장과 판결문 등 자료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측에 전달해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했다는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손 검사가 윤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장모 최은순씨 등에 대한 여권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손 검사가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게 전달한 고발장에는 윤 대통령과 김 여사,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당시 부산고검 차장검사)이 명예훼손의 피해자로 적시돼있다.

인터넷매체 뉴스버스가 2021년 9월2일 고발 사주 의혹을 처음 보도했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였던 윤 대통령은 보도 당일 입장문을 내고 “검찰총장 재직 중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고발 사주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윤석열 캠프 관계자는 “윤석열 예비후보를 흠집 내려는 음모이자 정치공작의 소산”이라며 “뉴스버스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공수처는 의혹이 제기된 지 일주일 가량이 지난 그해 9월10일 손 검사와 김 의원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윤 대통령 측은 의혹 제보자인 조성은씨가 박지원 당시 국가정보원장과 만나 대선 개입 공작을 한 것이라며 맞공세를 폈다. 김 의원이 조씨에게 “(검찰에) 이야기를 해놓겠다” 등의 말을 한 통화 녹음파일까지 공개돼 파장이 커졌다.

수사·재판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공수처는 손 검사에 대해 체포영장,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기각했다. 법원은 김 의원 압수수색이 위법한 절차로 진행됐다며 압수수색을 취소하기도 했다. 공수처는 2022년 5월4일 손 검사를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윤 대통령 등 손 검사의 상관들이 관여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손준성 검사(현 대구고검 차장검사)가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고발 사주 의혹 사건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손준성 검사(현 대구고검 차장검사)가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고발 사주 의혹 사건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검사는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 증거를 수집하고 범죄자를 재판에 회부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고발 사주 의혹 사건으로 법정에 나온 전·현직 검사들은 이 사건의 진실 규명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피의자를 상대로는 강하게 추궁하고 따져묻는 검사들이 이 사건 법정에서는 자신에게 유리한 법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손 검사부터가 법률 전문가인 검사 피고인인 만큼 사실관계부터 법리 쟁점까지 강하게 다투며 공수처와 각을 세웠다. 검사 출신인 김웅 의원은 지난해 7월 증인으로 나와 “기억이 없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은 안 나는데 추정하기도 어렵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오히려 김 의원은 “이런 걸 가지고 공수처는 지금 증거라고 하는 건가요?”라며 공수처 검사를 몰아세우고, “기사 쓴 기자를 증인으로 데려다 물어보라”며 언성을 높였다.

손 검사와 함께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근무한 임홍석 검사는 지난해 10월 증인으로 나와 모든 신문에 증언을 거부했다. 이에 재판부가 “증인은 검사로서 수사를 하고 사건 실체를 밝혀 내용에 따라 적절한 법 적용을 받아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죄를 묻는 역할을 한다. 이런 검사 신분에 비춰봐도 가급적 증언을 거부하지 않고 사실을 밝혀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법무부는 2022년 6월엔 손 검사를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서 서울고검 송무부장으로, 지난해 9월엔 검사장급으로 승진시켰다. 모두 한 위원장이 법무부 장관 때 한 인사다. 범죄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을 법무부는 도리어 좋은 자리로 영전시키고 고위직으로 승진시킨 것이다. 1심 법원은 손 검사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이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손 검사에 대해 국회가 검사직 파면을 요구하는 탄핵심판을 청구해 헌법재판소가 현재 심리 중이다. 1심 재판기록은 이 탄핵심판 심리에 활용될 수 있다. 1심 재판부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지만, 고발 사주라는 사실관계를 대체로 인정했기 때문에 국회 측은 탄핵심판 사건에서 이 재판기록을 근거로 손 검사의 파면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형사재판은 형법상 범죄가 성립하는지(유·무죄 판단)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탄핵심판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경우 권한을 박탈해 헌법질서를 지키는 헌법재판이다. 반드시 유죄여야 탄핵소추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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