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출제 오류’ 논란 확산… ‘세계지리 8번 문항 오류’ 평가원 해명과 문제점

곽희양·강진구·김지원 기자

(1) “2012년 표기, 회원국 한정 위해”
수험생 ‘기준 연도’로 오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올해 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 오답 논란에 대해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 등에 자문을 구했다고 밝혔다.

이 학회는 “지도에 표시된 연도는 표시된 회원국을 특정시점에서 알려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문항 앞부분에 ‘지도는 지역경제협력체 A, B의 회원국을 나타낸 것이다’라는 표현이 이를 알려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012)’ 표시는 2013년 크로아티아가 유럽연합(EU)에 편입돼 EU가 28개국이 되기 전인 27개국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

이에 대해 일선 학교에서 지리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기본적인 상식에 견줘 말이 안되는 이야기”라고 반박하고 있다.

서울의 한 고교에서 지리 과목을 가르치는 ㄱ교사는 “2012년도의 표시가 ‘지도는 회원국을 나타낸 것이다’라는 문항 설명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며 “크로아티아를 배제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라기보단 확연히 2012년판 지도로 이해된다”고 밝혔다.

서울의 다른 고교 지리과목 교사 ㄴ씨는 “세계지리 과목은 매년 상황이 급변하기 때문에 일선 교사들은 연도별 기준에 신경을 많이 쓴다”며 “(2012)라고 표시되어 있으니 당연히 2012년 상황을 묻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험생들은 2012년 통계가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기에 해당 문항은 애매한 것이 아니라 틀린 문항”이라고 덧붙였다.

부산의 지리과목 교사 ㄷ씨는 “(2012)라고 연도만 표시되어 있지, 통계를 산출한 기관에 대한 출처가 없다. 통계를 묻는 질문에서 그 출처를 기재하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도가 표시되어 있기에, 수험생들에게 각 연도별 통계를 암기하라는 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출제 오류다”라고 말했다.

인천 지역의 지리과목 교사 ㄹ씨도 “통계자료와 관련된 문제는 출처를 명확히 해야 하는데, 왜 현실과 다른지 점검하지 않고 문제를 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수능 ‘출제 오류’ 논란 확산… ‘세계지리 8번 문항 오류’ 평가원 해명과 문제점

(2) “2007~2011년 평균 EU가 많아”
‘3년째 역전’ 현실 무시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보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의 총생산액이 크다고 판단한 통계적 근거는 자의적이다.

2007~2011년 사이 5년간 세계은행이나 유엔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통계를 합산해 연평균치를 내보니 EU가 더 크다는 것이다. 평가원의 설명은 한국경제지리학회의 자문 결과를 토대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학회의 자문 결과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우선 유럽의 재정위기가 시작된 2010년 부터 3년간 NAFTA가 EU의 총생산액을 추월하고 격차도 커졌던 추세적 사실이 무시됐다. 또 가장 최근 자료인 2012년까지 포함해 과거 6년간의 연평균치를 경향신문이 확인한 결과에서도 학회 측 주장과 달리 NAFTA(17조1666억달러)가 EU(16조9874억달러)보다 더 컸다.

수능 문제 지도에 연도가 2012년으로 표시돼 있음에도 2012년을 비교 대상에서 제외한 이유도 석연치 않다. 학회 측은 ‘2012년 자료는 통계의 수집방법과 산출기준이 그 이전 시기와 달라져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통계청 정보서비스팀 이지영 주무관은 “세계은행에서 보낸 CD를 다 조사해봤지만 어디에도 통계 수집방법이 달라졌다는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 설령 학회 측 설명대로 2012년을 비교대상에서 제외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학회는 과거 5년간 평균치를 계산하면서 물가상승분이 제거되지 않은 명목 GDP(당해연도 가격기준)를 비교자료로 사용했다. 통계청 정보서비스팀 오정현 주무관은 “과거 5년치의 평균액을 갖고 비교하려면 물가상승분을 제외한 실질 GDP(기준연도 가격기준)로 비교하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이 실질 GDP(유엔 통계)를 기초로 2007~2011년 연평균치를 계산한 결과 NAFTA(15조1490억달러)가 EU(14조5054억달러)보다 총생산액이 큰 것으로 나왔다.

결과적으로 학회가 평가원 측의 ‘출제 오류’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미리 설정한 답에 통계를 끼워 맞췄다는 의혹을 벗어나기 어려운 셈이다. 김경훈 대학수학능력시험본부장은 “학회 자문 결과를 반영해 출제에 이의 없다고 판정했으나 자문 내용을 재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3) “오답 지우다 보면 답 고르게 돼”
‘정답 없는 문제’ 출제 강행

평가원은 현행 2종의 세계지리 교과서 내용을 따랐기 때문에 8번 문항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평가원 관계자는 “수년간의 추이를 바탕으로 한 학술적 논의 결과가 세계지리 교육과정에 반영되는 것”이라며 “교과서를 기준으로 해야 일선의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 한 고교의 지리과목 교사 ㅁ씨는 “2009년 통계를 쓴 교과서 내용은 EBS ‘수능완성’ 125쪽 3번 문항에도 그대로 나와 있다”며 “이걸 그대로 수능 문제로 가져다 쓰면서 왜곡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재수생 이수환군(19)은 “교학사 교과서는 이 내용을 설명하며 ‘국제 통계연감, 2009’로 표시해 특정연도를 기준으로 했다”며 “평가원 측의 해명은 그 근거부터 틀린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평가원은 문항의 보기 ㄱ항은 맞는 내용이고 ㄴ·ㄹ항이 명백히 틀린 내용이므로, ㄴ·ㄹ항을 포함하는 답항은 정답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오답을 체크하다 보면, 정답인 ②번 답항(ㄱ, ㄷ)을 충분히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지리과목 교사 ㅂ씨는 “ ‘이것이 틀리기 때문에, 저것이 답이다’라고 하는 것은 출제 오류”라고 했다. 다른 고교의 지리과목 교사 ㅅ씨도 “만약 ㄷ항이 확실히 틀렸다고 생각한 수험생들은 ㄷ항을 먼저 지우고 다른 것들 중에서 골랐을 것”이라며 “일선학교에서 이런 잘못이 나타나면 학교장 경고 등의 징계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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