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에 ‘자유’ ‘남침’ 빠졌다” 보수진영 비판에 호응한 교육부···철지난 교과서 이념논쟁 재연되나

남지원 기자
‘자유민주주의’와 ‘남침’ 등의 표현이 빠졌다는 논란이 일어난 2022 개정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의 근현대사 부분 중 일부.

‘자유민주주의’와 ‘남침’ 등의 표현이 빠졌다는 논란이 일어난 2022 개정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의 근현대사 부분 중 일부.

2022 개정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에서 ‘자유민주주의’ 대신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놓고 또다시 논쟁이 일었다. 교육과정에서 ‘자유’ 표현을 뺐다는 보수진영의 비판에 교육부가 부랴부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기본 상식”이라며 사실상 해당 표현을 추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보수진영의 이념 공세에 정부가 나서서 호응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교육부는 31일 오후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미래세대의 균형있는 역사관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헌법정신에 입각한 역사 교육과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브리핑은 교육부가 전날 공개한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의 고등학교 한국사 공통 교육과정 시안에서 ‘자유민주주의’ 용어가 빠졌다는 보수언론의 지적이 나오자 설명하기 위해 연 것이다. 설명자료를 내는데 그치지 않고 이례적으로 브리핑까지 열어 해명했다.

오승걸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은 브리핑에서 “정부는 학생들이 균형있는 역사관을 갖게 하고 헌법적 정신에 입각해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며 “교육과정 시안은 어디까지나 초안이고 다양한 의견을 보완해 최종 확정 때까지 계속 검토·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문제제기가 들어온 표현들을 수정하겠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라 앞으로 최종안 확정까지 진통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안에서 논란이 된 부분은 근현대사에서 민주주의의 발전을 서술한 부분에 ‘자유’라는 단어 없이 ‘민주주의의 시련과 발전’ 등의 표현을 쓴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표현 사용 여부는 이전에도 꾸준히 논란이 돼 왔다. 2011년 이전 역사교과서에서는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 표현이 혼용됐지만, 이명박 정부가 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뒤 지금까지 사용됐다.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더 보편적이고 학술적 근거도 명확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보수진영은 ‘민주주의’라고만 쓰면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반발해왔다. 2018년 교육부가 교육과정에 ‘민주주의’ 용어를 사용하려고 했으나, 보수진영 반발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도 혼용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이는 교육과정 전체에서 ‘대단원 해설’ 부분이 통째로 빠지고 개괄적 서술만 들어가면서 세부적 표현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라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교육과정에 ‘남침’이라는 표현이 없더라도 교과서에는 당연히 ‘남침’이라고 쓴다는 것이다. 다만 교육부는 혼란을 막기 위해 이후 교육과정에도 이 표현을 추가하는 방향을 검토하기로 했다.

2015 교육과정에서 ‘대한민국 수립’으로 돼있던 표현은 2018년 개정 때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뀌었는데, 이번 교육과정 시안에서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유지됐다.

교육부가 보수진영의 공세에 호응하면서 또다시 역사교과서가 정부발 이념 논쟁에 휘말리게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래훈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교육의 영역을 자꾸 정치의 영역에서 좌지우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며 “역사라는 학문의 특성상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정부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국정교과서 사태 때처럼 특정한 사상과 의도를 현장에 주입하려는 것이라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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