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

(1) 인적자본 차이 없는 신입 ‘채용’은 공정할까

“권한 많은 상위직에 남성 많아

여성 구직자에 기울어진 운동장”

임금 높고 규모 크고 근속연수 긴 곳일수록

여성보다 남성 채용 선호 뚜렷

여성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며 차별이 적은 일자리로 꼽히는 공공기관에서도 상대적으로 적게 채용되고, 채용된다 하더라도 남성에 비해 임금이 적고 규모가 작은 기관에 갈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윤석열 대통령) “옛날에는 차별이 있었기 때문에 여성부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했지만 지금은 세대를 막론하고 여성이 차별받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등의 주장은 공공기관 채용에서조차 들어맞지 않았다.

[‘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 남성 관리자 심은 곳에 남성 신입 난다

남성 채용, 임금 높고 규모 큰 공기업에 많았다

전체 350개 공공기관은 크게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으로 나뉜다. 공기업은 다시 시장형과 준시장형으로 준정부기관은 기금관리형과 위탁집행형으로 분류된다. 남성은 시장·준시장 공기업과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에서 더 많이 채용됐고 여성은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과 기타 공공기관에 많이 채용됐다. 지난 4년 동안(2019~2022) 남성은 시장형 공기업에서 2000여명, 준시장형 공기업에서 8000여명 여성보다 많이 선발됐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남성이 많이 뽑히는 공기업은 대체로 자산 규모가 크고 직원 평균 보수가 높았으며 직원 수도 많은 편이다. 남성이 많이 채용되는 시장형 공기업은 2021년 기준 연평균 8569만원, 준시장형 공기업은 7756만원을 받고, 여성이 많이 채용되는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은 연평균 8045만원,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은 6507만원, 기타 공공기관은 6914만원을 받는 것으로 집계된다.

남성이 많이 뽑히는 공기업은 대체로 자산 규모가 크고 직원 평균 보수가 높았으며 직원 수도 많은 편이다.

남성이 많이 뽑히는 공기업은 대체로 자산 규모가 크고 직원 평균 보수가 높았으며 직원 수도 많은 편이다.

여성이 1000여명 많이 뽑힌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은 보수는 높은 편이지만 전체 314개 분석 대상 기관 공공기관 인원 중 적은 비중(8.2%)을 차지하고 있다.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A·Affirmative Action) 자료에 따르면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은 2021년 3월 기준 남녀 임금 격차도 연 3000만원에 달할 정도로 5가지 공공기관 유형 중에 가장 높은 편이다. 기타 공공기관은 5가지 유형 중 규모가 가장 작고 보수도 제일 낮으며 근속기간도 가장 짧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기업 중 중소영세업체에 여성 비율이 높은 것과 비슷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준시장형 공기업은 규모가 크고 시장형보다 정부 지원을 상대적으로 더 받는다”라며 “이런 기관들의 남성 합격률이 높아서 이것이 여성 고용 비율과 임금 차이에 영향을 끼친다면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성 직원 많을수록 남성 채용도 많았다

기업이 가진 특성과 성별 면접·채용 결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공공기관의 면접·채용 성비 데이터와 2021년 3월 기준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A) 자료에 나타난 기업의 특성을 비교했다. AA 자료는 고용노동부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일정 기준 이상 2500여 개 공공·민간 기업의 남녀 직종별·직급별 고용 및 임금 현황을 제출받은 것이다. 이 자료에는 남녀 직원 수, 관리직 성비, 남녀 임금 차, 남녀 근속연수 등이 포함돼 있다.

상관관계 분석 결과 최종합격자 중 남성 비율과 해당 기관의 남성 직원 비율의 상관계수가 0.75로 높은 양의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상관관계는 인과관계는 아니지만, 1에 가까울수록 두 지표가 함께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종합격자 중 남성 비율과 남성 관리직 비율은 0.55, 평균 임금은 0.32, 근속연수는 0.24의 상관계수가 산출됐다. 이에 비해 남성합격률 대비 여성합격률 비율과 남성 직원 비율은 –0.19의 음의 상관계수가 산출됐다. 남성 직원 비율이 높을수록 남성합격률보다 여성합격률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약하게 드러났다는 뜻이다.

최종합격자 중 남성 비율과 해당 기관의 남성 직원 비율의 상관계수가 0.75로 높은 양의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최종합격자 중 남성 비율과 해당 기관의 남성 직원 비율의 상관계수가 0.75로 높은 양의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상관관계를 보면 기관의 남성 비율이 높을수록, 관리자 중 남성이 많을수록, 평균 임금이 높을수록, 직원의 근속연수가 긴 기관일수록 채용에서 여성보다는 남성을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남성이 많은 기관은 관련 전공자가 남성이 많고 지원자가 많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 위원은 “남성 상사는 유사한 특성과 가치관을 지닌 남성 직원을 선호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현재 권한이 있는 상위직급에 남성이 많아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보니 남성이 더 많이 뽑히게 되는 구조도 있다”며 “어느 집단이나 다양성이 확보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응답 없는 기관은 문제 없을까

정부가 공공기관의 면접 성비, 최종 합격자 성비와 같은 채용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차별없는 채용을 위해 한 발짝 나아갔다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숙제는 많다.

기획재정재부는 공공기관 면접 성비, 최종합격 성비 이행 기록을 관리하고 있지만 ‘데이터 관리’가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전체 350개 공공기관 중 75개(21.4%)가 면접 성비 데이터를 기록·관리하라는 정부 지침을 따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군다나 실제 데이터를 받아보니 데이터를 관리했다는 곳에서는 데이터가 없다고 하고 데이터를 관리하지 않았다 보고한 곳에서는 성비 데이터를 제공하기도 했다. 정부 관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뜻이다.

2022년에 면접 성비를 기록했다고 기재부에 보고한 275개 기관 중 이번 분석을 위한 국회 질의에 데이터가 없다고 하거나 제출하지 않은 기관이 32개나 됐다.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수력원자력, 주식회사 강원랜드,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전력거래소, 중소기업은행 등이다. 이들을 포함해 모두 34개 기관이 국회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데이터를 제출하지 않은 공공기관

한국가스공사, 한국남부발전㈜, 한국수력원자력㈜, 주식회사 강원랜드, 한국수자원공사,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전력거래소, 국립공원공단,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한국특허전략개발원, 강릉원주대학교치과병원, 강원대학교병원, 경북대학교병원, 경상국립대학교병원, 부산대학교병원, 부산대학교치과병원, 서울대학교치과병원, 전북대학교병원, 전쟁기념사업회,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한전원자력연료㈜, 한국상하수도협회, 한국여성인권진흥원, ㈜공영홈쇼핑, 신용보증재단중앙회, 중소기업유통센터, 중소벤처기업연구원, 한국벤처투자, 중소기업은행, 한국발명진흥회, 한국지식재산보호원


4년 치를 대상으로 분석했지만 절반 이상(54.7%)의 기관이 2년 치 이하의 자료만을 제출했다. 공공기관이 본격적으로 면접 성비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 2021년부터이기 때문이다.

‘고용 성차별 시정제도’는 작동 안한다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통계 증거를 활용한 구조적 고용 성차별의 판단과 시정’ 보고서에서 “한국에서는 노동시장의 전체적인 성별 격차가 주로 언론에 보도될 뿐, 개별 기업 단위에서 차별의 존재, 양태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논의가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고용 성차별 시정제도가 오랫동안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2015~2016년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이 성별 합격자 비율을 정해놓고 면접 접수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됐고 두 은행의 채용 데이터 분석 결과 통계적으로 차별 가능성이 유의하게 나타났지만 형사소송은 직접 증거 여부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결과 법인은 벌금형을 받고 두 금융지주의 회장들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고용 성차별에 대한 직권조사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통계적 분석을 바탕으로 구조적, 집단적 차별을 분석해본 적은 없다. 인권위 직권조사는 중대한 인권침해가 나타나거나 다수의 진정이 있어야 가능한데 이러한 차별은 구조적이고 비가시적이라 조사 시작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직권 조사를 할 때 기업에 자료 요구를 해도 기업이 제출하지 않고 과태료를 내겠다고 버티면 강제성이 없어 데이터조차 구하기 어렵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5월부터 고용상 성차별 시정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민형사 소송보다 신속하게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어 기대를 모았지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윤건영 의원실에 따르면 한달 평균 신청 접수가 2~3건에 그쳐 미미한 상황이다. 개인이 신청해야 구제절차가 작동하는 한계가 있고 피해 입증 책임 역시 피해자들에게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아래 링크에서 공공기관 면접 성비·채용 성비 통계를 직접 검색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khan.co.kr/kh_storytelling/2023/gendergap/

“KEC 사례, 채용 차별·임금 격차가 ‘국가 시스템’이란 걸 보여준다”

노동자들이 채용·임금 관련 데이터를 스스로 정리·분석해 차별의 양태를 밝혀내도 국가가 ‘관행’이라고 결론짓는 경우가 있다.

경북 구미의 반도체 회사 KEC는 2017년 노동조합에 여성 지도부가 들어선 이후 임금 및 승격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했다. 노조는 20년치 데이터를 분석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고 인권위는 2019년 여성이라는 이유로 낮은 등급으로 채용하고 승진에도 배제한 회사에 성차별을 해소하는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이 업체는 여성 노동자 100%가 사원직인 반면 남성은 90%가 관리자급이었다.

노조는 고용노동부에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라 고소했지만 노동부는 ‘혐의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를 이어받은 대구지검 김천지청은 ‘무혐의’라고 판단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차별은 공소시효가 지났고 2015년부터 2019년까지는 ‘관행’이어서 사업주가 한 게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채용부터 업무 배치, 인사고과의 모든 권한이 회사에 있지만 처벌할 대상이 없다고 결론낸 것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권수정 부위원장은 “KEC 사례는 인권위 진정까지는 ‘회사 내 차별’이었지만 노동부-검찰까지 가면서 ‘국가의 차별’이 됐다”며 “성별에 따른 채용 차별, 임금 격차가 ‘국가 시스템’이라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고용평등기회위원회(EEOC)는 피해자의 진정이 없어도 사업장의 고용 및 임금 격차 데이터를 검토해 차별적 관행이나 패턴이 나타나는지를 탐지한다. 구 위원은 “차별의 의도가 입증되지 않더라도 차별이 없다면 통계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집단 간 격차가 발생했을 때 미국 법원은 차별이 있다고 인정하는 사례가 상당히 있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고용과 임금에서의 성별격차를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 인력이 늘어나고 있으니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것이다’라는 말은 무책임하다”며 “채용, 보직 배치, 승진까지 동등한 기회를 주고 업무 평가에 객관적인 기준을 더 많이 도입하는 등 노력을 한다면 격차가 줄어들 수 있다.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시간들이 보여준다”고 말했다.

※ 채용 자료 제공
강민정 권인숙 박용진 신정훈 유정주 윤건영 이동주 이원욱 이형석 장경태 정춘숙(이상 더불어민주당) 배진교 장혜영(정의당) 의원

■특별취재팀
임아영(소통·젠더데스크) 황경상·배문규·이수민·박채움(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
조형국(사회부) 이아름·유선희(플랫)

[‘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 남성 관리자 심은 곳에 남성 신입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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