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수 뿌린 상추서 악취 진동… “하우스 농사 다 망쳐”

경태영·박준철 기자

이천·강화… 논·밭 매몰지 농작물 2차 피해 확산

구제역 매몰지에서 발생한 악취와 침출수 피해가 지하수를 타고 확산되면서 농작물 재배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 이천시의 한 상추 재배단지는 이달 초부터 발생한 지하수 악취 때문에 농작물 재배를 포기했다. 지하수를 뿌린 상추에서도 악취가 났기 때문이다. 인천 강화군에선 매몰지 대부분이 논과 밭 등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에 다음달 농사철이 시작되면 벼는 물론 각종 야채 재배에까지 매몰지 침출수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 상추에서도 악취 풍겨 = “지하수에서 악취가 나 상추에 물을 줄 수 없어요. 20일째 농사를 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20일 오전 경기 이천시 백사면 모전리 상추 재배단지에 위치한 ㅁ농장. 660㎡ 규모의 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 악취가 진동했다. 고랑을 따라 나란히 심어져 있는 상추는 말라비틀어진 채 쓰레기로 변해버렸다.

이 농장에선 겨울철에는 한 달에 두 번씩 상추를 출하해왔다. 그러나 이달 들어 한 번도 상추를 시장에 내다 팔지 못하고 있다. 상추에 물을 주는 데 사용되던 지하수에서 이달 초부터 심한 악취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농장주 이모씨(60)는 “이곳에서 20년 동안 채소농사를 짓고 있는데 지하수에서 악취가 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망연자실했다.

이씨 농장 바로 옆에는 인근 ㅁ축산법인 농장에서 살처분한 돼지 9016마리를 묻은 4000㎡의 매몰지가 위치해 있다. 이씨는 매몰지 침출수가 지하로 스며들어가 지하수가 오염된 것으로 추정하고 시에 수질검사를 의뢰했다.

이씨는 “축산농장에서 구제역 때문에 한 달여 전에 돼지를 매몰했는데 매몰한 지 10여일이 지나면서부터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며 “야간에 보온을 위해 상추에 물을 뿌렸는데 비닐하우스 전체에서 악취가 나 물 뿌리기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5300여㎡의 밭에 비닐하우스 7개동을 설치하고 상추 농사를 짓고 있다. 이씨는 상추 농사용 급수를 위해 지하 7m에서 판 관정 8개가 있는데 모든 관정에서 악취가 난다고 밝혔다. 지난 11일에는 이천시의회 의원들이 농장을 찾아 상추잎을 시식한 결과 상추잎에서도 악취가 나는 것을 확인했다. 이씨는 “이곳 지하수는 옆에 하천이 있어 물이 깨끗해 식수로도 사용하던 물”이라며 “당장 농사를 지을 수 없어 10여명의 종업원들이 일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은 이씨뿐 아니라 20여 농가가 대규모로 비닐하우스에 상추를 재배하는 시설채소 재배단지다. 농장에서 만난 김모씨(50)는 “당장은 매몰지 옆에 있는 이씨 농장 지하수가 오염됐지만 우리 농장 단지 지하수도 오염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걱정했다.

◇ 규정에도 없는 논·밭 매몰지 수두룩 = 정부는 구제역에 따른 가축 매몰 장소 선정기준에 대해 ‘집단가옥·수원지·하천·도로와 인접하지 않고, 매몰대상 가축이 발생한 농장이나 국가, 지자체 소유 공유지 등’으로 국한하고 있다. 그러나 소·돼지 등 1만1389마리가 살처분된 인천 강화군의 경우 51곳의 매몰지 중 76%인 39곳이 논과 밭 등 농지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취재진이 찾아간 강화군 화도면 상방리와 내리의 경우 4곳의 매몰지 중 1곳만 축사 바로 옆에 위치해 있을 뿐 나머지는 논바닥을 약간 파고 난 뒤 소·돼지를 묻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논바닥 매몰지의 경우 농사를 지을 논보다 20∼30㎝ 높게 둔덕을 만들어 경계만 이루고 있었다. 매몰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취만이 이 일대가 가축을 뭍은 곳임을 짐작하게 해줄 뿐이었다.

구제역 매몰지임과 일반인의 접근 금지를 알려야 할 푯말이 설치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외지인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조차 이곳이 구제역 매몰지임을 알 수 없을 정도다. 침출수 배출용으로 설치된 유공관 중 일부는 입구가 하늘로 향해 있어 비가 내리면 매몰지에 빗물이 스며들 수 있는 구조였다.

매몰지들은 또 대부분 농수로와 바로 붙어 있어 큰비가 올 경우 침출수가 농수로용 하천으로 흘러들어갈 위험이 큰 상태다. 그럼에도 차단막 등 추가 오염방지 시설은 전혀 없었다. 한 농민은 “구제역이 급격히 확산하면서 소·돼지를 매몰하기에만 급했지, 오염문제 등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며 “현재로선 매몰지 위에서 벼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화군 관계자는 “푯말은 땅이 얼어 제대로 설치하지 못했을 뿐”이라며 “농경지에 묻은 매몰지 주변에는 농사지을 곳과 이격 거리를 둘 것이며, 관측정 장비를 설치해 수시 모니터링을 통해 농작물의 피해가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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