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 핏물이란 생각에 못 마셔”…수질검사 의뢰도 폭증

최인진·박효재·정희완 기자

양평,안성 지하수 실태

주택 뒤가 바로 매몰지였다. 김모씨(45·여)는 집 뒤를 가리키며 “여기에 돼지를 묻었다. 가축 침출수가 나왔을 텐데 불안해서 어떻게 지하수를 마시냐”고 말했다.

지난 18일 경기 안성시 일죽면. 수도권 최대의 양돈단지는 구제역으로 초토화된 상태였다. 마을 전체에서 사육하는 돼지 11만5000마리 가운데 91%인 10만5000마리가 매몰 처분됐다. ‘돼지 무덤’이 마을 전체를 둘러싼 형국이다.

문제는 지하수였다. 마을 전체의 매몰지만 133곳. 구제역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면서 주택 옆이건, 지하수 관정 옆이건 가릴 것 없이 일단 묻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마을 지하수 관정과 매몰지 간의 거리가 채 100m가 안되는 곳도 생겼다. 사체가 썩으면서 나오는 침출수가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주민들은 지하수 마시기를 꺼리기 시작했다. 대신 안성시가 공급하는 페트병 식수를 마신다.

구제역 매몰지 침출수의 지하수 오염이 우려되자 20일 경기 안성시가 상수도관을 매설하는 안내판을 설치하고 공사를 벌이고 있다. 최인진 기자

구제역 매몰지 침출수의 지하수 오염이 우려되자 20일 경기 안성시가 상수도관을 매설하는 안내판을 설치하고 공사를 벌이고 있다. 최인진 기자

수도권의 대표적인 한우단지인 경기 양평군 개군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9일 오후 개군면 ㄱ마을의 한 농장에서 이모씨(45)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소 물 먹이는 데도 지하수를 쓰지만, 일하다 목마르면 저도 마셔요. 논이랑 밭에 물 뿌릴 때에도 지하수를 이용하는데, 이제 날 풀리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이씨는 불과 20m 떨어진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지난달 20일 키우던 소 5마리와 돼지 10여마리를 살처분해야 했다. 마릿수는 많지 않았지만 당시 방역팀이 농장 바로 앞에 묻었다. 가축을 매몰한 농장 앞 구덩이에는 비닐이 겹겹이 덮여 있었다. 눈 녹은 물이 비닐 위로 흥건하게 고였다. 침출수를 모으거나 가스를 배출하기 위한 파이프는 보이지 않았다.

매몰지가 부실하게 조성되면서 구덩이의 비닐 틈이나 유공관(침출수를 빼내기 위해 설치한 관)을 통해 침출수가 하천이나 지하수로 흘러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침출수에는 질소화합물과 병원성 미생물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수돗물은 멸균·소독 과정에서 병원균 등을 처리할 수 있지만, 지하수는 별도의 처리 과정이 없어 유해 물질이 식수를 통해 인체에 바로 전달될 수 있다. 매몰지 반경 3㎞ 이내에 있으면서 아직까지 상수도가 보급되지 않아 지하수를 이용해야 하는 마을은 전국 1576곳에 이른다.

경기 양평군 개군면의 ㄴ마을 주민들도 물 걱정부터 했다. 지난 19일 오후 찾은 한 농장에는 서둘러 매몰한 흔적이 역력했다. 지난달 7일 젖소만 108마리를 묻었다. 축사 바로 옆에 만들어진 매몰지에 유공관 7~8개가 보였다. 저류조는 보이지 않았다. 한 주민이 “지난번 소를 묻고 난 뒤 일주일 지나서 핏물이 흘렀다. 그 뒤에 흙으로 덮었다”고 말했다.

개군면의 또 다른 마을도 비슷한 풍경이었다. 소 60여마리를 묻었다는 매몰지 옆으로 물웅덩이가 보였다. 봄날 같은 날씨 속에 언 땅이 녹아 바닥이 질척질척했다. 침출수 유출로 인한 지하수 오염 우려는 날씨가 풀리면 더욱 커진다. 특히 비라도 내리게 되면 침출수의 양이 늘어난다. 늘어난 침출수가 헐거워진 흙 틈과 비닐 틈 등을 통해 지하수로 유출될 우려가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침출수로 인한 지하수 오염 우려가 커지면서 수질검사 요구도 폭증하고 있다.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8일까지 1537건의 지하수 수질검사 의뢰가 접수됐다. 하루 평균 100건씩 의뢰가 들어오는 셈이다. 안성시 관계자는 “주민들에게 페트병 식수를 공급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는 마을을 대상으로 상수도 배수관 연결 공사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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