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물가대란

“직원 줄이고 영업 단축“팔수록 손해, 쉴 수밖에”

임아영·김정훈·이서화 기자

순댓국 못 파는 순댓국집내장 구입 어려워 보쌈만

식재료값 급등, 손님은 줄어40년 가게 접고 내놓기도

20일 오후 서울 구로시장의 한 순댓국밥집. 주인 염모씨(61)는 40년 동안 운영해온 이 가게를 설 전에 내놓았다. 구제역으로 물가가 급등하면서 경영난을 견딜 수 없어서다. 돼지머리 고기는 구제역 발생 전 두당 1만원 하던 것이 요즘엔 1만7000원까지 올랐다. 거래처에서는 아예 물량이 없다고 알려온 터다. 염씨는 “다른 데는 몇 천원씩 올려 판다고 하지만 가격을 올리면 사람이 오겠느냐”면서 “전기·수도·가스 등 뭐든지 너무 비싸서 못 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 19일 경기 광명시의 한 고깃집. 이 식당은 5명이던 종업원을 지난달 3명으로 줄였다. 구제역 발생 이후 손님이 3분의 1이나 감소했기 때문이다. 비싸서 그런가 싶어 돼지등심 200g을 1만원에서 9000원으로 내리고 삼겹살도 1000원 내려봤지만 오히려 손님은 줄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종업원 2명을 내보내야만 했다.

구제역 파문이 영세 상인들을 울리고 있다. 각종 식재료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반면 손님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중곡동의 한 곱창집은 자정 넘게까지 하던 장사를 요즘은 오후 9시쯤에 마친다. 구제역 파동이 있기 전에는 1주일 내내 영업했는데, 지금은 1주일에 하루 이틀은 쉰다. 장사를 많이 하면 할수록 손해가 난다. 곱창은 ㎏당 1만4000원에서 2만원으로 올랐고 오돌뼈도 종전에 비해 2배 이상 오른 가격에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판매 가격은 1000원씩밖에 못 올렸다. 사장 황모씨(50)는 “이제 곱창도 고급 음식이 됐다”며 “단골손님들이 가격을 올려놓고 장사를 쉰다고 뭐라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순댓국집에서 순댓국을 못 파는 경우도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순댓국집은 내장을 구하기 힘들어 순댓국 대신 보쌈만 판다. 직장인 김모씨(30)는 “순댓국집에서 순댓국을 안 판다니 어이가 없지만, 구제역 때문에 어쩔 수 있겠나 싶은 생각도 든다”고 했다.

도소매업자들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정육 도소매업자인 조경래씨(44)는 “체감 매출이 3분의 2 정도 줄었다”며 “소비자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어 명절 때 준비해둔 물량이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건비는 인건비대로, 관리비는 관리비대로 나가는데 매출이 없으니까 죽을 지경”이라면서 “장사가 남질 않으니 마장동에서는 문 닫은 곳도 많다”고 전했다.

우윳값과 분유 가격 인상 조짐에 빵집도 긴장하고 있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탈지분유 재고량은 지난해 12월 938t으로 2009년 12월의 4137t보다 77.3% 줄었다. 사상 최저 수준이다. 생크림과 탈지분유 생산량도 40~50% 감소했다. 그 결과 분유값은 구제역 발생 전인 10월보다 900~1700원 올랐다.

제빵업계 관계자는 “아직 뚜렷한 가격 인상 움직임은 없지만 물량 확보가 문제”라며 “예전에는 80% 이상을 국내산으로 충당했지만 3월쯤 되면 100% 외국산을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파리바게뜨·뚜레쥬르 등 큰 회사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겠지만 소규모 개인 베이커리들은 문 닫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CJ푸드빌 홍보팀의 이경철 과장은 “우윳값을 3월1일자로 올린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되면 큰일 난다”고 염려했다.

소비자들도 지갑을 열기가 쉽지 않다.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는 “돈가스류 1000원씩 인상”이라는 공지가 붙었다. 보쌈·족발집에서도 점심 메뉴 가격은 올리지 않되 정식 메뉴는 5000원씩 올리기로 했다. 김용준 사장(35)은 “5000원이면 작은 액수가 아니지만 어쩔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마포구의 중국집들은 이달 초부터 자장면, 볶음밥 등 주요 메뉴를 1500원씩 올려 받고 있다.

지방의 도축장이 폐쇄되자 축산업자들은 서울 가락동 도축장으로 밀려들고 있다. 소가 밀려들면서 축산업자들은 도축장 주변에서 3~4일씩 선잠을 자면서 대기해야 한다. 19일 가락동에서 만난 김종태씨(54)는 아침 일찍 소 10마리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선착순으로 도축하는 탓에 가급적 빨리 와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구제역이 터지기 전에는 1~2박이면 충분했지만 지금은 길게는 나흘 동안 트럭에서 숙식을 해결할 때도 있다.

김해 부경축산공판장에 따르면 지난해 하루 평균 1500마리를 도축했으나 정부가 수매에 나선 12일 이후에는 하루 평균 650마리에 그쳤다. 공판장 관계자는 “구제역 전 돼지(110㎏ 기준) 1마리가 35만원이던 것이 최근 48만원으로 올라가자 농민들이 출하시기를 늦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