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물가대란

“‘1+1’제품만 사고 외식 끊고… 물가가 서민 삶 바꿔놔

조미덥·정희완·주영재 기자

밥상에서 일상까지 갈수록 팍팍

수영대신 돈 안드는 등산, 야근 자청 회사식당 이용, 물가苦 생활 유형도 변화

등록금·하숙비에 식비까지, 대학생들 ‘물가 3중고’, “김밥체인점서 끼니 해결”

“순댓국 값 올립니다” 구제역 파동으로 육류 가격이 폭등하자 음식점들이 줄줄이 음식 값을 올리고 있다. 2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 입구에 족발과 순댓국의 가격을 인상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영민 기자

“순댓국 값 올립니다” 구제역 파동으로 육류 가격이 폭등하자 음식점들이 줄줄이 음식 값을 올리고 있다. 2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 입구에 족발과 순댓국의 가격을 인상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영민 기자

“무심코 신용카드로 결제하다 보니 지난달 가계부가 적자 났어요. 이달부턴 오랫동안 다니던 수영장을 끊고 등산을 다니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하던 외식도 이달엔 안하기로 했고요.”(백덕희씨·58·서울 돈암동)

“요즘 밥상 차리기가 겁나요. 장 보러 가도 살 수 있는 게 별로 없거든요. 예전에는 1만원 가지고 장에 가면 한 끼 반찬거리는 충분히 샀는데, 요즘엔 갈치 한 마리에 1만원입니다. 밥상에는 묵은 김치로 만든 찌개나 볶음밥을 주로 올리지요. 식구들이 질리지 않게 가끔 된장찌개와 고등어, 어묵볶음을 섞어줍니다.”(조봉금씨·53·서울 개봉동)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졌다. 소비자물가의 고공행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등 악성 가축전염병으로 육류 공급량이 줄어든 데다 이번 겨울 이상한파가 지속되면서 채소 수확량까지 줄어 식료품 물가가 전반적으로 급등했다. 이달 신선식품 물가지수는 지난달에 비해 2.6%, 지난해 2월보다 33.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지난달 수입 물가지수가 전년 같은 달 대비 14.1%나 뛰면서 2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 급등으로 인한 생활고는 서민들의 밥상을 넘어 생활 유형까지 바꿔놓고 있다.

맞벌이를 하는 주부 정모씨(32·서울 영등포동)는 요즘 야근을 자청하는 경우가 잦다. 회사 구내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함이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정씨는 “1주일에 집에서 먹는 데 10만원 쓰는 것이 목표인데, 요즘 물가로는 어림도 없다. 주변 직장인 중에도 회사에서 저녁을 해결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8살과 5살 난 아들을 둔 전영숙씨(35·서울 하계동)는 이달 들어 소비계획을 다시 짰다. 아무래도 과소비를 하기 쉬운 대형 할인매장 대신 동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기로 했다. 아이들 식품은 하나 사면 하나를 덤으로 얹어주는 ‘1+1’ 제품만 산다. 우유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멸균우유로 바꿨고, 아이들 입을 봄옷도 이웃에 부탁해 물려 입히기로 했다. 전씨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애들 키우면서 돈을 모으기가 힘들다”고 했다.

노숙인과 독거노인 등에게 무료급식을 하는 복지단체들은 타격이 더 크다. 서울 용산역 근처에서 16년 동안 무료급식을 해온 ‘하나님의 집’ 유연옥 원장은 “지난해 일주일에 한두 번은 식탁에 올리던 제육볶음을 올해 들어 한 번도 못 올렸다. 두부, 어묵, 콩나물만 돌아가며 올리다 보니 오시는 분들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높은 등록금과 주거비로 고통받는 대학생들도 높은 물가에 힘들긴 마찬가지다. 최근 학교 주변 음식점들이 500~1000원씩 밥값을 올리자 결국 대학 구내식당도 버티지 못하고 가격 인상에 나섰다. 국민대와 성균관대가 오는 3월부터 식비를 인상키로 했고, 성신여대도 2500원에서 2800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가격이 저렴하기로 유명한 고시촌에서도 식권값이 올랐다. 서울대 앞의 한 고시뷔페는 이달 식권 100장 가격을 28만원에서 30만원으로 인상했다.

동국대생 연길용씨(27)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는 어려운데 그렇다고 부모님께 손 벌리기도 죄송하다. 군것질거리 줄이고 가격이 싼 식당을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세대생 오정열씨(28)는 “가격 부담이 적은 김밥 체인점에서 주로 식사를 해결한다”면서 “비타민 보충을 위해 비교적 싼 바나나나 귤을 사 먹었는데, 바나나도 한 송이에 5000원이나 하니 과일을 사 먹기도 힘든 처지”라며 우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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