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엔데믹 국가'는 한국?…엔데믹의 ‘조건’ 따져보니

김향미·민서영 기자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2만7190명 발생한 4일 오후 시청 앞 선별진료소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우철훈 선임기자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2만7190명 발생한 4일 오후 시청 앞 선별진료소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우철훈 선임기자

방역당국이 2주 후 유행 감소세가 유지되고 의료체계가 안정적이면 실내 마스크 착용 외 대부분 방역규제를 풀 것이라고 밝히면서 일상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김부겸 총리가 이 같은 조치가 이뤄진다는 전제로 “우리나라가 ‘엔데믹’(endemic·감염병의 풍토병화)으로 전환하는 세계 첫 번째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본다”고 언급, ‘엔데믹’이 곧 ‘일상회복’과 같은 말로 해석되는 모양새다. 여행과 모임을 재개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변이 등장으로 코로나19 유행의 예측이 현재로선 불가능하고, 의료체계 역시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섣부른 낙관론이라고 지적한다.

■엔데믹의 조건

지난 1월 말부터 미국·영국, 유럽 일부 국가들에서 오미크론 대유행 이후 방역조치를 완화하면서 ‘엔데믹’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말 한국이 많은 확진자 발생에도 높은 백신 접종률을 토대로 낮은 입원율·사망률을 유지하고, 방역조치를 완화하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엔데믹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엔데믹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감염병이 특정한 지역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 또는 그런 병’(국립국어원)이다. 국내외 방역·의료 전문가들은 몇 가지 엔데믹의 조건을 제시했다. 우선 유행의 예측 가능성이다. 코로나19가 풍토병이 된다면 ‘언제, 어느 정도 규모로 발생할 것’이란 예측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겨울철 계절독감(인플루엔자)의 경우 매년 유행시기 동안 300만~700만명 정도가 감염된다’와 같은 식이다.

또 엔데믹이라 말하기 위해서는 입원율(중증화율)과 치명률, 즉 위중증 환자·사망자 발생 규모가 의료체계가 감당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감염자·위중증·사망자를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통제하기 위해선 예방접종과 자연감염을 통한 일정 인구 규모의 면역획득이 있어야 한다. 동네 의원·약국 등 일상 의료체계 안에서 코로나19 대응을 하는 게 정착돼야 한다.

다만 엔데믹이 곧 코로나19의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록펠러 재단 펜데믹 예방 연구소의 전염병 학자인 새뮤얼 스카르피노는 지난달 18일 영국 가디언에 “엔데믹은 ‘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당국자들이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아리스 카츠라키스 영국 옥스퍼드대 바이러스 진화·유전체학 교수는 지난 1월 말 네이처 기고에서 “엔데믹이라는 단어가 오용되고 있다”며 “엔데믹이 코로나19의 종식이나 무해함을 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풍토병의 하나인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자가 한 해 62만7000명(2020년 기준)에 달한다. 카츠라키스 교수는 “정책 입안자들이 어떤 조치를 하지 않기 위해 풍토병이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엔데믹 가능성은

전문가들은 ‘변이’ 때문에 여전히 코로나19는 예측이 불확실한 감염병으로 본다. 코로나19 바이러스(SARS-CoV-2)는 알파·델타·오미크론 등 기존의 유행 규모를 더 키우는 방식으로 변이를 일으켰다. 최근 오미크론 세부계통 BA.2보다 전파력이 약 10% 강한 재조합 변이 ‘XE’가 영국·대만·태국 등지에서 발견됐다. 오미크론 원형 BA.1과 BA.2가 결합한 변이다. 현재 국내에선 BA.2가 우세종화했고, XE는 발견되지 않은 상태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엔데믹이 되려면 새로운 변이에 의한 유행이 안 생겨야 한다”며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엔데믹이 성립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방역당국도 이 부분은 염두에 두고 있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4일 브리핑에서 “(새 변이의) 전파력, 치명률, 백신 예방접종 저항력 등 3가지를 평가한 결과에 따라 거리두기와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 방역전략의 재가동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체계를 보면 현재 국내 중환자 병상 가동률은 60% 후반대를 유지하고 있고, 누적 치명률은 0.12%까지 떨어졌다. 치명률은 계절독감(0.05~0.1%)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는 인구 대비 86.7%가 기본접종(2회 접종)을 완료한 상황에서, 최근 오미크론 대유행으로 누적 확진자가 1400만명(인구 4명 중 1명)까지 늘어나며 나타난 효과다.

그러나 요양병원·시설에서의 집단감염에 따른 사망자 발생을 보면 계절독감 대응 수준 이상으로 의료체계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날부터 동네 의원급도 외래진료센터로 당국에 신청해 대면진료가 가능해졌지만 이제 시작 단계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오미크론 대유행에 어쩔 수 없이 검사·진료체계를 바꾼 측면이 있다”며 “병원 내 감염 관리, 대면진료 시 의료진 감염 문제 등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격한 전환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요양병원·시설과 같은 위험시설에서 집단 발병시 예전엔 한 곳당 (환자가) 10~20명이었다면 지금은 100명씩 나온다. 엔데믹이라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엄중식 교수는 “일상회복을 위한 방역조치는 사회적 조치이고, 엔데믹은 바이러스가 어떻게 활동하는가의 진단이라 엄밀히 다른 개념”이라면서 “일상회복(조치)은 가능할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선 하루에 100~200명씩 사망하는 상황을 안고 가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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