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밤 박측 “측근끼리 구두 약속” 곽측 “격려로 한 말을 오해”

정유진·김향미·박은하 기자

지난해 5월 단일화 협상 과정 재구성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는 지난해 5월12일쯤부터 협상을 시작, 19일 서울시교육감 후보 단일화를 발표했다. 일주일 사이 양쪽에서는 돈과 관련해 어떤 얘기가 오갔을까. 과연 돈을 준다는 약속은 있었을까. 협상 과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발언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봤다.

참여연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40여개 교육·시민단체 대표들이 30일 서울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참여연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40여개 교육·시민단체 대표들이 30일 서울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 지난해 5월12일쯤

곽 교육감과 박 교수 측이 처음으로 단일화를 놓고 일대일 협상을 했다. 한 달 전 있었던 ‘2010 서울시 민주 진보 교육감 범시민추대위원회’의 내부 경선에 박 교수와 함께 불참했던 이삼열 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이 사퇴하면서 당시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둘만 남은 상황이었다. 같은 달 13일 시작된 공식후보 등록 직전이었다.

당시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 중재에 나섰던 시민사회 원로 이해학 목사는 “두 차례가량 인사동에서 만나 협상을 했다”며 “박 교수 측에서 돈 요구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 5월17일

곽 교육감과 박 교수가 단일화를 발표하기 이틀 전인 17일 양측은 서울 사당동의 한 찻집에서 다시 만났다. 시민사회단체 인사들도 동석했다. 양측이 공식후보 등록을 마친 뒤였다. 박 교수 측 캠프 실무자인 ㄱ씨는 “곽 교육감 쪽에 선거자금 7억원을 보상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각서를 써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각서 같은 것을 남기면 양쪽 모두 위험해지기 때문에 진짜로 받을 생각은 아니었다. 단지 곽 교육감의 신의를 떠보기 위해서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곽 교육감이 이를 단호히 거절했고, 협상은 결렬됐다고 한다.

이날 협상에도 동석했던 이해학 목사의 설명도 비슷했다. 이 목사는 “박 교수 측이 (찻집에) 먼저 도착했는데 오자마자 한 실무자가 느닷없이 ‘선거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사채를 써서 급한 것을 꺼야 하니 보상을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뒤늦게 온 곽 교육감이 이 요구를 듣고는 얼굴을 붉히며 난색을 표했다. 그리고 먼저 떠났다”고 설명했다. 즉 금전보상을 조건으로 건 단일화 협상은 결렬됐다는 것이다.

■ 5월18일

문제는 단일화 발표 하루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다. 18일 양측은 실무자가 한 명씩 참석한 가운데 단일화 조건을 놓고 다시 협상을 벌였다. 곽 교육감 측에서는 캠프의 자금 및 물자를 총괄했던 ㄴ씨, 박 교수 쪽에서는 박 교수와 ㄷ씨가 참석했다. 협상 과정을 자세히 알고 있는 곽 교육감 쪽 조승현 방통대 교수는 “곽 교육감은 당시 한창 선거유세로 바쁠 때라 이날 협상 장소에 잠시 들를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들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회의는 밤 11시 넘어서야 끝났다. 그러나 회의 결과에 대한 양측 주장은 달랐다. 박 교수 측 ㄱ씨는 “이날 각서는 안 썼지만, 곽 교육감 쪽에서 믿을 만한 구두약속을 해줘 단일화에 응하게 된 것으로 안다”면서 “상식적으로 막판까지 버티던 사람이 갑자기 아무런 대가 없이 단일화에 응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했다. 하지만 조 교수는 “밤늦게까지 협상 결과를 기다렸으나 협상이 결렬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면서 “단언하지만, 금전보상 약속은 없었다”고 말했다.

18일 밤   박측 “측근끼리 구두 약속” 곽측 “격려로 한 말을 오해”

■ 5월19일

곽 교육감 측 주장대로 18일 협상이 결렬됐다면 어떻게 19일 단일화 발표를 하는 게 가능했던 것일까. 곽 교육감 쪽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이렇다. 19일 새벽 협상에 참여했던 박 교수 측 실무진인 ㄷ씨는 곽 교육감 쪽 회계 담당자와 술을 마시면서 “우리 캠프가 진짜 어렵다. 곽 후보는 안 들어 줄 테니 대신 형님이라도 도움을 좀 주겠다고 약속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 둘은 동서지간이기도 했다. 이때 곽 교육감 쪽 회계 담당자가 “기운내라.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보도록 하자”는 식으로 말을 한 것을 ㄷ씨가 구두약속으로 받아들여, 이를 근거로 곽 교육감 당선 이후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교육감은 이 같은 정황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당선 몇 개월 후에서야 전해 듣게 됐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곽 교육감 쪽의 이 같은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박 교수 쪽 ㄷ씨와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 2억원이 거래된 올 2~4월

곽 교육감은 지난 2~4월 여섯 차례에 걸쳐 박 교수의 동생 부인 최모씨 등 친·인척 명의의 계좌로 총 2억원을 줬다. 곽 교육감은 지난 28일 “선의로 2억원을 준 것이지 결코 단일화의 대가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박 교수 측 관계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곽 교육감이 후보 단일화 당시 약속한 7억원 중 일부를 준 것임을 입증할 수 있는 정황과 물증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곽 교육감이 당선 이후 약속한 돈을 주지 않자 박 교수가 항의를 했고, 이 과정에서 박 교수 측이 곽 교육감과 나눈 대화를 녹취해 A4용지 7장에 정리한 내용을 들이대자 당황한 곽 교육감이 돈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곽 교육감 측은 박 교수가 곽 교육감을 여러 차례 찾아와 돈을 요구한 것은 맞지만, 단일화의 대가로 돈을 주기로 약속한 바가 없기 때문에 2억원은 어디까지나 곽 교육감이 선의에 의해 자발적으로 준 것이라고 반박했다.

7억원과 함께 자리를 약속했다는 박 교수 쪽 주장에 대해서도 권혜진 흥사단 교육운동본부 사무처장은 “교육발전자문위원장 자리는 교육감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줄 수 있는 자린데 결국 안 주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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