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불명확한 가이드라인…개별 사업장에 결정 떠맡기며 갈등 키워

정대연·이효상·심윤지·김희진 기자

공공부문 정규직화 문제는

2017년 11월24일 열린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안 공청회’는 인천공항 ‘직접고용’을 둘러싸고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갈등이 처음 표면화하는 자리였다.

당시 사측이 직접고용 규모와 채용방식을 놓고 두 곳에 의뢰한 연구용역의 중간결과가 발표됐는데 결과는 극명하게 갈렸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은 전체 정규직화 대상의 9%(854명)만 직접고용 대상이라고 한 반면, 한국노동사회연구소·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는 최소 3000명 이상을 직접고용하는 안을 제시했다. 능률협회는 ‘공개채용’ 방식을, 연구소는 ‘고용승계’ 원칙을 내놨다. 공청회장을 가득 채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발표 내용에 따라 환호와 야유를 쏟아냈다.

‘생명·안전 업무’ 적시했지만 해석 천차만별…곳곳서 잡음
사용자 쪽 기운 노·사·전협의체, ‘자회사 방식 전환’ 남용

사실 인천공항은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선언한 1호 사업장이라서 더욱 크게 주목받았을 뿐이다. 갈등은 그해 7월20일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때부터 예견됐다. 정부는 ‘가이드라인’에서 ‘국민의 생명·안전과 밀접한 상시·지속업무는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원칙이며, ‘전문직 등 청년 선호 일자리’는 ‘제한경쟁, 공개경쟁(가점부여) 등 적합한 방식을 채택’하라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생명·안전 업무’ 등에 대한 해석이 천차만별이라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현장 곳곳에서 갈등이 터져나왔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최소한 항공·철도·발전 분야만이라도 어디까지를 ‘생명·안전 업무’로 볼 것인지 명확히 정했어야 하는데, 모두 기업별 ‘노·사·전문가협의체’에 맡기면서 갈등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사·전협의체 전문가위원들은 중립적 역할보다 사용자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이 적합하지 않은 곳도 회사 바람대로 자회사로 전환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남용된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전문가들은 용역업체 때의 갑을관계 유지와 지속 가능성 등을 문제로 지적한다. 지난해 공공부문 자회사를 전수조사한 정 위원에 따르면 자회사 중 모회사에서 매출 전액이 발생하는 종속적 관계인 곳이 대부분이었고, 30% 이상은 설립근거가 법령이나 모회사 정관에 명시돼 있지 않았다. 모회사의 경영·인사권 침해나 부당한 업무지시를 가능케 하는 불공정한 계약 조항이 있는 곳도 다수였다.

이로 인해 자회사 노동자들은 ‘정부 정책이 바뀌면 용역회사 시절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자회사는 모든 수익을 원청의 도급금액에 의존하고 있어 독립적으로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없다”며 “사실상 용역업체 때와 같은 구조”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가이드라인 발표 후부터 지난해 12월 말까지 정규직으로 전환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17만4000명 가운데 23.6%(4만1000명)가 자회사 소속이다. 파견·용역 노동자만 놓고보면 약 40%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의 목표는 전체 한국사회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그런데 민간으로 정규직화 흐름이 확산되지 않을 경우 자칫 공공·민간 부문 노동시장의 격차만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인천공항 정규직화가 더 논란이 된 이유는 좋은 일자리기 때문”이라며 “공공부문 정규직화가 낙수효과를 가지려면 정부가 공약한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제도 도입, 간접고용에 대한 원청의 공동사용자 책임 부여,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늦었지만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노동부는 특고·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올해 안에 마련하기로 하고 지난달 노사 의견을 수렴했다.

2016년 만든 ‘기간제 근로자 고용안정 가이드라인’과 ‘사내하도급 근로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도 정책 변화를 반영해 개정할 방침이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