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위아 ‘불법 파견’ 인정…기업들 정규직 전환 물꼬 틀까

이혜리·고희진 기자
자동차 부품업체 현대위아가 사내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한 노동자가 기자회견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석우 기자

자동차 부품업체 현대위아가 사내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한 노동자가 기자회견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석우 기자

8일 자동차 부품업체인 현대위아가 사내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민간영역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물꼬를 틀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같은 현대 계열사인 현대제철은 자회사를 설립해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 채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꼼수’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위아로부터 직접 지휘·명령을 받은 파견 관계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제조업의 직접생산과 관련된 업무이거나, 2년 이상은 파견노동자로 사용할 수 없다는 파견법에 어긋나므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현대위아 측은 소송과정에서 특정 공정은 100% 사내하청업체가 담당해 정규직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각각 담당하는 공정이 직접 연동돼있지 않아 불법 파견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현대위아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대위아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부품이나 조립방법 등에 관해 구속력 있는 지시를 했고, 공정 투입 인원이나 휴일근로 등 전반적인 노무관리 결정권도 실질적으로 현대위아에 있었다는 점을 기준으로 불법 파견이라 판단했다.

노동자들을 대리한 김유정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자동차 부품업체에는 사내하청이 만연해있고, 100% 사내하청으로 채워지는 공장들도 많은 상황에서 원청에 업무상 지휘·명령권이 있으면 불법 파견이 인정될 수 있다고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현대제철과 현대차, 한국GM·포스코 등 기업들을 상대로 한 소송이 줄줄이 법원에 계류 중인 상황에서 이번 판결로 인해 제조업 현장의 정규직 전환 등 고용 형태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현대제철의 경우 순천공장 노동자들이 낸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에서 1·2심 모두 노동자들이 승소한 상태다.

문제는 방식이다. 현대제철은 지난 6일 자회사를 설립해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 7000여명을 정규직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노동계에선 반발하고 있다.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이 실질적인 고용 안정과 노동조건 개선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등 사실상 간접고용이나 다름없다는 분석 때문이다.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은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의 한 방식으로 발표하면서 확산됐지만 ‘덩치만 커진 하청업체’라는 비판을 받았다.

자동차 부품업체 현대위아가 사내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노동자들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모두 모여 만세를 외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자동차 부품업체 현대위아가 사내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노동자들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모두 모여 만세를 외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앞서 현대위아도 2심 판결이 나온 뒤 별도의 법인을 설립하고 이 법인을 통한 채용으로 일부 정규직 전환을 했다. 김영일 현대위아 비정규직 평택지회장은 “현대위아의 경우 (일부 노동자들이) 독립법인으로 넘어갔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며 “오히려 사내하청업체에 있을 때보다 월급이 더 줄어들고 노동강도가 세졌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별도 법인을 통한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현대위아가 노동자들에게 소송 포기를 유도하고, 소송 참여자들을 다른 사업장으로 전보 발령해 논란도 일었다. 공공부문에서는 한국도로공사가 하청업체 소속 톨게이트 수납원들이 근로자지위 확인소송 2심까지 승소한 상황에서 자회사 전환을 강행해 노동자들이 노숙 농성을 한 사례가 있다.

기업들이 직접 고용을 외면하고 소송 제기 때부터 이번 판결이 나오기까지 약 6년8개월이 걸린 점을 감안하면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는 수 년에 걸친 소송전을 감수하든지, 실효성이 없는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을 수용하든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이번 판결이 제조업 현장에 여러 영향을 미치겠지만 소송이 길게는 10년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제도적으로 명확히 해결해줘야 한다”고 했다. 전국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전날 대책회의를 갖고 “현대제철이 불법파견을 사죄하고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직접 고용과 정규직 전환 쟁취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결의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판결은 (원청이) 실질적인 지배·관리를 하고 있으면 형식적으로 도급 계약을 맺었다고 하더라도 유효하지 않다는 의미가 있다”며 “제조업 전반의 하도급 고용 관행을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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