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시험 준비 평균 17개월···책값·학원비 671만원 썼다

윤지원·박상영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경계청년들은 취업을 준비하며 각종 자격증과 입사시험에 약 17개월 동안 평균 670만원 넘게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기 취업해 벌었을 잠재소득을 기회비용으로 더하면 실제 취업준비(취준) 비용은 연 3600만원이 넘는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한국고용정보원의 ‘2019 대졸자 직업이동경로조사 분석자료’를 보면 청년들은 시험준비에 평균 16.8개월이 걸렸고 총 671만3000원(월 40만원)을 썼다. 시험준비는 공무원·공공기업·언론사 입사시험 그리고 회계사와 같은 전문가 자격증 시험을 모두 포함한다. 단순 자격증 취득에는 평균 9.6개월이 소요되고 평균 65만3000원(월 7만원)이 들었다. 그 외 직업교육에는 평균 3.9개월간 15만7000원(월 4만원)이 들었다.

이 조사는 2년제 대학 이상 고등교육과정을 이수한 졸업자들 가운데서 일자리가 있는 1만679명이 분석 대상이다.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대졸자까지 더하면 취준 비용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이처럼 수많은 청년들이 값비싼 비용을 들여 좋은 첫 직장을 구하려 애쓰는 이유는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큰 상황에서 경력 이직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늘구멍 취업문을 통과하지 못한 다수는 유휴노동력이 돼 경계청년으로 노동시장 바깥으로 밀려난다. 코로나19란 특수한 경기침체 상황은 2020~2021년 졸업생 청년들을 더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기업들이 신규채용 방식을 기존 공개채용에서 수시채용으로 바꾼 것도 취준 비용이 높아진 이유로 꼽힌다. 임영태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정책팀장은 “2019년 정기공채를 폐지한 현대차·기아를 시작으로 LG·SK 등 주요 대기업이 모두 수시채용으로 전환 중”이라고 말했다. 공채가 신입 직원을 일괄적으로 뽑아 기업들이 직접 교육을 시켜 인재를 양성하는 구조였다면 수시채용은 특정 직무에 필요한 실력을 이미 취득한 인재를 골라 뽑는다. 학교 교육과 기업 현장에서 필요한 실무에 괴리가 있는 상황에서 취준생 다수는 사비를 털어 교육을 받아야 한다.

서울 소재 대학 졸업을 앞둔 취준생 이정윤씨(가명)는 “많은 기업들이 지나치게 다양한 스펙을 요구한다. 사무직도 워드, 웹디자인 등 원하는 자격증이 많다. 이미 실력이 있더라도 자격증을 따서 이를 증명하는 데에도 최소 100만원이 든다”고 말했다.

취준생으로 산다는 것
소득은 없는데 쓸 데가 너무 많다

시험 한 번에 교통·숙박비 10만원 들어도
‘중기 아닌 대기업 가야 만회’ 생각에 취업 유예

서울 노량진에서 7급 외무영사직 고시를 준비한 이지연씨는 2년 동안 1600여만원을 썼다. 고시원(월 30만원), 식당 이용 정기권(월 12만원), 그 밖에 추가적인 식음료 비용을 합쳐 생활비만 월 60만원 이상은 꾸준히 나갔다. 격달로 새 문제집을 구매하고 각종 어학 자격증 및 시험 인터넷 강의 수업료도 내야 했다. 그는 “합격까지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는 프리패스 수업이 100만원이 넘었는데 지출을 줄이기 위해 다른 사람이 구매한 아이디를 월 20만원 주고 빌려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비수도권에 살면 별도의 돈이 더 든다. 공공기관 및 공기업 입사 준비를 한 제주도 주민 백수지씨는 “도내 공기업에 취업을 원하더라도 필기시험은 대부분 육지로 가서 봐야 한다. 시험 때마다 항공료와 숙박비만 최소 10만원이 나가는데 여러 회사를 지원하면 그만큼 비용이 더 든다”고 말했다.

입사시험 준비 평균 17개월···책값·학원비 671만원 썼다[기획 시리즈 ‘경계 청년’]

■대·중소기업 20년 임금 격차 5억원

고시원비·교재비·식음료비 등
공무원 도전 2년 만에 1600만원 써

취업준비 비용은 지출이 전부가 아니다. 지출에 조기 취업해서 생겼을 장래 임금을 유예한 기회비용을 더한 값이 실제 취업 비용이다. 2019년 졸업자 중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초임 월평균 소득은 259만6000원이다. 이 숫자를 유예된 임금으로 간주해 시험준비 지출과 합하면 실제 취준 비용은 월 299만6000원에 달한다. 연단위로는 3600만원꼴이다. 단순 자격증만 따며 구직활동을 한 경우도 취준 비용은 월 266만원이 들어간다.

막대한 비용이 나가는데도 더 나은 직장에 가기 위해 취업을 유예하는 것은 대·중소기업 간 임금 및 고용 양극화 때문이다.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한 김민우씨는 “중소기업에 취업한 뒤 경력 쌓고 이직을 하는 것과 취준해서 대기업에 입사하는 선택지 중 동기들 대부분이 후자를 택한다”며 “중소기업 4년차와 대기업 신입의 임금이 같고, 장기적으로 중소기업에서 대기업 이직도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해 5월 사업체노동력조사를 보면 상용 300인 이상 월 임금총액(501만1000원)과 30~100인 사업체(377만8000원) 임금총액 격차는 123만3000원에 달한다. 연단위로 환산하면 1479만6000원이다. 승진 및 임금 인상 수준 등을 고려한 생애 전 소득을 따지면 임금 격차는 더 커진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9년 연구에 따르면 남성 대졸자가 30세부터 20년간 벌어들일 수 있는 임금총액은 500인 이상 대기업이 30~99인 중소기업일 때보다 총 5억5122만원 많다. 한국개발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첫 입사가 1년 늦을 경우 같은 연령의 근로자에 비해 향후 10년간 임금이 연평균 4∼8% 낮아지는 것으로 추정한 바 있는데, 이를 감안해도 첫 직장이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인 편이 유리한 것이다.

개인으로선 합리적 선택이지만 사회 전체로 봤을 때는 결과적으로 막대한 낭비다. 그만큼 유휴노동력이 커지고, 인적 개발도 늦어지기 때문이다. 통계청 청년층(15~29세) 부가조사를 보면 지난해 5월 기준 취준생은 80만4000명으로 전년 동월에 비해 9만명(12.5%) 늘었다. 이 숫자는 통계청 조사에서 일반기업·언론사·교원임용·고시 및 전문직 등으로의 취업을 위한 시험을 준비했다고 답한 사람만 집계한 것이다. 취준 활동을 하면서 ‘쉬었다’고 답했거나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준비한 경우 혹은 대학원을 다니면서 구직활동을 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취준생 숫자는 훨씬 많아질 수 있다.

취업문 자체가 바늘구멍이라 청년 대다수가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고 노동시장 외부 경계로 밀려나는 점도 문제다.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 ‘공시생’은 지난해 코로나19 등 영향으로 전년보다 줄긴 했지만 여전히 규모가 크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직 7·9급 시험에 원서를 접수한 출원자는 21만9906명이었다. 선발인원(5567)을 감안하면 2.5% 확률에 공시생들이 뛰어들었고, 21만4339명이 시험에 낙방해 다시 경계청년이 됐다는 얘기다.

대기업은 신입사원 응시자 및 취업자 수를 밝히지 않고 있어 정확한 취업 확률은 산출이 어렵다. 다만 채용 전문사이트 관계자는 “4~5년 전부터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다 보니 채용 계획도 밝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한상 고려대 교수는 “재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에선 한번 잘못되면 평생 ‘2부 시민’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다 보니 무조건 공기업, 의사, 정규직이 되는 것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낮은 입사 확률에 매달리는 이유 중에는 채용 방식의 문제도 있다. 장인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실장은 “대기업 입사가 압도적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늘 간발의 차이로 보이기 때문에 작은 확률임에도 청년들은 돈과 시간을 투입해 취준을 선택한다”며 “각종 자격증과 시험을 준비하면서 배운 내용이 취업에 실패해도 다른 곳에서 사용 가능한 인적자본이 되는지가 중요한데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구조적으로 젊은 사람들의 노동력이나 기회비용이 낭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시대 졸업자, 취업해도 안 해도 불리

하향 취업 땐 ‘20년간 5억’ 손해
사회적으로는 ‘유휴노동력’ 증가

고용 감소로 취업문 좁아지는 것과
코로나 후 청년지원책 부족도 문제

코로나19 특수 상황은 경계청년들을 더 큰 불안정으로 내몰고 있다. 특히 2020·2021년 대학 졸업자들은 취준을 택하든, 조기 취업을 하든 장기적으로 임금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국내외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코로나19 종식과 함께 기업에서 채용을 다시 늘린다고 하더라도 이들 졸업자가 수혜를 입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은 “경기 회복 국면에는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늘리는데, 그때도 구직활동을 오래한 청년보다는 새로 졸업한 학생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과거 경기침체기에도 이러한 패턴은 반복됐다. 유럽연합(EU) 산하 연구기관 유로파운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고용에 끼친 장기적 영향을 분석한 지난해 보고서에서 “2008년 23%였던 청년 실업률은 2016년 30%까지 치솟았다”며 “이는 대다수가 2년 이상 실직 상태였고, 구직 청년들이 장기간 실업에 갇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코로나19는 이전 경기침체기보다 악조건이 더 추가됐다. 영국 런던정경대 경제성과연구센터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거리 두기 등 조치로 인한 교육 기회 박탈과 위축된 대면 서비스업 등을 거론하면서 “(코로나19는) 이전 위기 때보다 훨씬 더 깊은 경제적 상처를 남길 상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 대책도 마땅치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6일 코로나19에 따른 국가별 청년 지원책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가입국의 3분의 1이 청년을 채용한 고용주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지원책을 도입했는데, 청년을 돕는 데 비용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대책”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한국은 멕시코, 네덜란드 등과 더불어 청년 고용 보조금을 도입하지 않은 국가 중 하나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하향취업’을 하는 경우도 장기간 임금 손실을 더 피하기 어렵다. 하향취업이란 취업자의 학력이 일자리가 요구하는 학력보다 높은 경우를 의미한다. 한국은행은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대졸자가 대졸 학력이 필요하지 않은 일자리에 종사하는 하향취업이 코로나19 확산 이후 10% 증가했다고 밝혔다. 한 연구위원은 “하향취업을 해서 안 좋은 직장을 가면 그 자체가 향후 고용시장에서 구직자를 판단하는 하나의 시그널로 작용한다”며 “오히려 이력이 없었으면 뽑았을 사람을 안 뽑는 경우가 생긴다. 또 상대적으로 좋은 직장을 갔을 때 생기는 초반 네트워크나 교육을 하향지원으로 받지 못하면서 생기는 손해가 장기적 임금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하향취업은 취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저소득 가구에서 더 많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가구소득계층별 미취업 청년 특성을 연구한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가구소득이 가장 낮거나 가장 높은 쪽에서 취업이 가장 많다. 가구소득이 낮은 청년들이 하향지원을 하는데,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장기적 임금 손실이 생애 전 주기로 확대될 수 있다. 청년층 내부의 불평등이 장년까지 이어진다는 얘기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 부위원장인 이승윤 중앙대 교수는 “실업이나 취업에 안 잡히는 취준 중간지대의 청년 안에서도 부모님이 월세랑 학원비를 제공하는 가구와 그렇지 않은 가구의 청년들로 격차가 두드러진다”며 “청년세대가 이미 계층화한 상황에서 계층이동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해고’ 20대가 49%로 최다
이유는 “회사 사정”


갓 취업한 청년들은 코로나19 고용한파 속에 손쉽게 해고되기도 한다. 경력이 짧은 이들을 자르는 데 고용주들은 별 부담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펴낸 실태조사를 보면 코로나19로 인해 실직했다고 응답한 비중은 20대가 49.4%로 가장 높았다. 30대는 44.4%로 뒤를 이었고 40대와 50대는 각각 39.1%와 33.3%였다.

특히 20대는 코로나19로 인한 회사사정으로 해고당했다고 답한 비율이 21.7%로 30대(14.8%), 40대(17.4%)보다 높았다.

윤혜진씨(30·가명)도 코로나19로 갓 입사한 직장을 그만뒀다. 외국계 항공사에 합격한 윤씨는 약 4개월 훈련 기간에 참여했다. 그러나 훈련 종료 일주일을 앞두고 회사는 그에게 “코로나19 때문에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자발적으로 퇴사할 것인지, 아니면 무급휴직을 택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다.

한국에 돌아와 훈련 재개 통보만 기다렸지만 회사는 코로나19가 지속되자 해고를 결정하게 됐다고 통보했다. 윤씨는 해고 통보 직후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코로나19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두려움이었는데, 공무원이 되면 적어도 아무 때나 해고되지는 않을 것 같아 선택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나마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구직을 준비 중이면 운이 좋은 경우다. 서울청년유니온이 지난 2월 발표한 ‘코로나19로 실직한 청년 아르바이트 노동자 실태조사’를 보면 실업급여를 받은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9.8%에 그쳤다.


▶기사 바로가기: 현금 급할 때 선택지 없어···카드대출에 불법금융 ‘늪’으로

▶기사 바로가기: ‘삼시세끼’도 사치인 현실, 냉동식품·라면이 주식 ‘하루 한 끼’도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