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드라마가 장애인을 그려내는 법…우리에겐 더 많은 <라이프> 예선우가 필요하다

이유진 기자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왜 내 삶이 누군가한테 용기를 줘야 하는데? 난 그냥 사는 거야. 이 삶이 난 그렇게 기쁘거나 좋지 않아.”

지난 4일 방영된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 14회에서 예선우(이규형)는 “널 보며 꿈을 키우는 사람들이 있어. 넌 그 사람들한텐 희망이야”라고 말하는 형 예진우(이동욱)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어릴 적 사고로 인해 휠체어 장애인이 된 선우는 정형외과 전문의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심사위원으로 일한다. 이 드라마를 지켜봐온 휠체어 장애인 김정현씨(32)는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가 장애인을 그려온 방식과 <라이프>의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고 했다. 그는 “선우의 대사엔 장애인도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이란 의미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 8회 방송에서 예선우가 상국대병원 김태상 부원장의 불법 의료행위 증거를 발견하는 장면. JTBC 캡쳐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 8회 방송에서 예선우가 상국대병원 김태상 부원장의 불법 의료행위 증거를 발견하는 장면. JTBC 캡쳐

김씨의 말처럼 <라이프>가 예선우를 그리는 방식은 조금 특별하다. 우선 드라마에서의 주조연급 비중과 역할이 그렇다. 특히 7회부터는 상국대병원 현장조사에서 김태상 부원장(문성근)의 무면허 의료행위 묵인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발견하며 극의 전개를 주도했다. “심의위원 예선우입니다. 다른 분들처럼 예우를 갖추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상국대병원에서 총괄사장 구승효(조승우)와 만난 자리에서 첫 인사를 나누며 선우는 말했다. 그가 보인 차이는 단지 다른 사람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인사를 나누지 못한다는 점 뿐이었다.

<라이프>는 ‘장애 극복기’ 혹은 ‘성공 신화’를 그리지 않는다.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며 그저 무수히 많은 인간 유형의 하나일 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건 오히려 선우를 향한 차별과 멸시의 시선이었다. 자신의 불법 의료행위가 탄로나자 선우의 스승이기도 했던 부원장은 예선우를 향해 “한 놈은 의지의 한국인인 척 하고 나머지는 전부 박애주의자 노릇을 하고 있는 동안에 그 피해는 몽땅 우리가 졌다”고 외쳤다. 심평원은 현장 조사에서 복귀한 선우를 ‘올해의 성취상’ 수상자로 선정하지만, 그는 “아침에 남들하고 똑같이 일어나고 밥 먹고 출근한 것 뿐인데 그게 뭐 대단한 성취냐”고 말하며 끝내 상을 거절했다.

예선우가 상국대병원 총괄사장 구승효에게 김태상 부원장의 불법 의료행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JTBC 캡쳐

예선우가 상국대병원 총괄사장 구승효에게 김태상 부원장의 불법 의료행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JTBC 캡쳐

상국대병원을 찾은 예선우가 장애인 콜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장면. JTBC 캡쳐

상국대병원을 찾은 예선우가 장애인 콜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장면. JTBC 캡쳐

선우의 비중이 늘수록 장애인의 일상도 자연스럽게 노출됐다. 대학생 이보람씨(22)는 “장애인 콜택시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동 휠체어도 충전을 해야 한다는 사실 등을 <라이프>를 보며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모씨(39)는 “사람들이 식당에 들어선 선우를 일제히 쳐다보는 장면, 선우가 장애인인 걸 알고 택시들이 그냥 지나치는 장면을 보며 미디어가 장애에 대한 차별과 불편함을 생략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드라마는 장애인을 수동적인 이미지로 그린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2005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760여명을 대상으로 드라마 속 장애인 인권인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드라마 속에서 장애인은 수동적이거나, 장애를 극복하는 ‘인간승리자’로 그려진다는 응답이 65.5%였다. ‘드라마 속 장애인은 실제 장애인의 현실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고 답한 응답자도 40%에 이르렀다.

해당 설문조사 이후 13년이 지났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MBC에서 방영 중인 일일드라마 <비밀과 거짓말>에서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한우철(이준영)은 성인이지만 나비 넥타이에 멜빵바지를 입는 ‘착하고 무해한’ 수동적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이따금 주목을 끄는 장애인 캐릭터가 나오기도 했다. 2016년 tvN에서 방영한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톱스타 조인성은 휠체어 장애인이자 소설가인 서연하 역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홈페이지 인물 소개란에서 ‘그 외 인물’로 분류되는 조연이었으며, 2016년 방영한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주인공의 친구로 등장한 휠체어 장애인이자 의사인 표지수(현쥬니) 역시 ‘감초’ 역할에 불과했다.

예선우가 한 전시장에서 수 오스틴의 휠체어 스쿠버다이빙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JTBC 캡쳐

예선우가 한 전시장에서 수 오스틴의 휠체어 스쿠버다이빙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JTBC 캡쳐

수 오스틴의 영상을 보며 예선우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 JTBC 홈페이지

수 오스틴의 영상을 보며 예선우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 JTBC 홈페이지

<라이프>도 한계는 있다. 극 후반부에 선우가 혈전후증후군 만성후기 상태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고, 짝사랑의 아픔을 그려내는 방식이 선우의 장애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신파라는 지적이 나왔다. 또 자신의 장애를 두고 ‘벌 받은 것’이라고 표현하는 장면은 장애를 부정적이고 죄스러운 것으로 치부하는 인식이 반영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드라마에 더 많은 장애인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는 손모씨(35)는 “TV 속에서 장애인 캐릭터는 잘 보이지 않는다”며 “나온다 해도 대부분 후천적 장애인으로 나온다.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TV에 많이 나오면 장애에 대한 차별적 시선도 많이 나아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이 지난 9일 기준 지상파 3사 14개 드라마의 등장인물(홈페이지 소개 기준)을 분석한 결과 241명 중 장애인은 3명에 불과했다. <라이프>가 방영 중인 JTBC 드라마 2편을 합치면 총 285명 중 장애인 캐릭터는 4명이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7년 등록장애인 수는 254만여 명으로 전체인구(5171만명)의 약 5%다. 이에 비해 드라마 속 장애인은 1.4%에 불과했다.

14회 방송에서 선우는 한 전시회장에서 휠체어를 탄 여성이 바다 속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영상 속 인물은 영국 예술가 수 오스틴이다. 1996년부터 지병으로 휠체어를 타기 시작한 오스틴은 2005년 스쿠버다이빙에 도전했다. 2012년 12월 테드(TED) 강의에 연사로 선 그는 휠체어 스쿠버다이빙을 두고 “인생을 통틀어 가장 놀라운 경험”이라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손해나 제약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신나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며 힘과 기쁨을 발견할 때, 다른 사람의 인생에 자유를 선사하는 새로운 사고의 순간이 찾아온다.” TV 속에서 더 많은, 더 다양한 선우를 보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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