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 한명당 노인 다섯…누가 연차 쓰면 스무명까지”

이혜인 기자

(2)돌봄노동, 열악한 환경

경기도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가 환자를 돌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기도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가 환자를 돌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요양보호사 300명 설문 결과
하루 10시간 노동…주3일 야근
“별도 계약기간 없어” 68.4%

시설 보호사 “힘쓰는 일 부담”
정서적 돌봄 제공할 여력 없어
가정 방문 보호사, 성희롱 고충
밭일·가사노동 등 강요받기도

낮은 급여, 자부심으로 버텨내
지자체 운영 국공립 1.1% 불과
“국가가 민간 운영 더 개입해야”

“누군가 연차라도 쓰게 되면 한 명이 노인 20명을 돌봐야 하는 시설이 많아요. 그러니까 드러눕게 되기 전에는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요양시설인 거죠.”(전지현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사무처장)

정부는 인구 고령화율이 10%에 도달한 2008년부터 향후 증가할 노인부양부담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도입하고 요양시설과 돌봄인력을 꾸준히 확대해왔다. 현재 전국에는 총 2만2577개의 요양시설이 있으며 약 44만명이 요양보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10년여에 걸친 국가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홀로 돌봄을 떠안고 있는 가정이 많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센터장 은기수)의 전지원·문현아 박사 등 연구진과 한국갤럽이 노인 돌봄가족 5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최근 한 달 기준으로 정부 제공 서비스나 사설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까’란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한 사람이 66.8%로 나타났다.

왜 그럴까. 돌봄노동 현장을 들여다보면 그 원인이 보인다. 질 높은 돌봄이 불가능한 열악한 노동환경이다. 연구진과 한국갤럽은 요양보호시설에서 일하거나 방문서비스(재가)로 일하는 돌봄노동자 약 300명을 별도로 설문조사했다.

평균 나이 54.5세의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보유한 여성들이 요양보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설문에는 돌봄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전체 설문 대상자의 57.7%가 유급휴일을 갖지 못했고, 68.4%는 “별도 계약기간이 없거나, 계약과 상관없이 고용주가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둬야 한다”고 답했다. 설문 대상자들은 돌봄일을 그만두고 싶은 이유(중복응답)로, 급여가 충분치 않고(78%) 돌봄일이 육체적으로 힘들어서(48.8%)라고 답했다.

돌봄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겨우 버티듯 일하고 있다는 것은 돌봄 대상자들에게도 양질의 돌봄이 제공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 시설 보호사, 와상 노인 여러 명 동시에

50대 후반 요양보호사 김미숙씨(가명)가 일하는 요양시설에서는 3명이 한 팀이 돼 노인 18명을 돌본다. 시설에는 기본적으로 누워서 생활하는 ‘와상’ 노인들이 많이 온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식사나 걷기 등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장기요양 1~2등급이다.

김씨는 아침 출근 후 이들에게 수분공급을 위해 수분젤을 먹이고, 눈곱을 떼주고, 세수와 가글링을 해주고,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돕는다. 수많은 업무 중에서도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는 와상 노인들을 일으키고 뒤집으면서 힘을 써야 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 가령 목욕을 한번 시키려면 누워 있는 노인을 들어 휠체어에 태웠다가, 욕실의 목욕 트레이에 올렸다가, 다시 휠체어로 옮긴 후 침대에 눕히는 등 내렸다 옮겼다를 반복한다. 꼼짝 못하는 노인의 온 체중이 요양보호사에게 쏠린다.

시설에서 일하는 돌봄노동자의 73.3%는 ‘돌봄일에 신체적 부담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몸을 많이 써야 하는 힘든 일은 수행빈도도 높다. 설문조사 결과 옷·속옷 갈아입히기, 용변처리 돕기, 잠자리나 의자에서 자리 바꿔주기 등 힘을 써서 노인을 부축해야 하는 업무는 하루 한 번 이상 하는 비율이 각각 86.7%, 93.3%, 92.7% 등으로 높았다.

이처럼 한 명 돌보기도 힘든 와상 노인을 시설 돌봄노동자들의 60.7%는 1인당 5명 이상 돌보고 있다. 현행법상 요양시설은 입소자 2.5명당 요양보호사 1명을 두도록 하고 있지만, 상시 돌봄인력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서 누군가 연차라도 쓰면 요양보호사 1명이 20명을 동시에 돌봐야 하는 상황도 쉽게 발생한다. 이 같은 환경에서는 정서적 돌봄은커녕 노인의 기저귀를 제때 갈고 끼니를 제때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일 정도다.

쉬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시설 근무 요양보호사들은 하루 평균 약 10시간씩 일했고, 이들 중 절반 정도(45.3%)는 일주일에 평균 3일가량 야간근무를 한다고 답했다. 주간 이틀, 야간 이틀 근무를 하고 이틀을 연달아 쉬는 ‘주주야야휴휴’ 근무 형태와 24시간 꼬박 근무 후에 이틀을 쉬는 ‘퐁당당’ 근무가 일반적이다. 올해 7월부터 4시간 일하면 30분, 8시간 일하면 1시간을 반드시 쉬도록 하는 근무 중 휴식시간 의무화 제도가 시행됐지만, 시설노동자의 46.0%가 ‘근무 중 휴게시간에 쉬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 재가 보호사, 묘목 심기까지 ‘돌봄’(?)

노인장기요양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 7월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 노인 돌봄체계 구축, 노인 돌봄 종사자의 열악한 노동권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노인장기요양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 7월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 노인 돌봄체계 구축, 노인 돌봄 종사자의 열악한 노동권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전체 요양보호사 중 시설에서 일하는 경우는 18%에 불과하다. 84%는 재가요양보호사다. 재가요양보호사는 장기요양보험 수급 가정에 방문해 매일 3~4시간씩 목욕이나 가사 등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정에 방문해 요양보호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여러 명을 동시에 돌보는 부담은 없다. 설문에 응한 재가요양보호사의 59%가 일주일에 1명의 노인을 돌보고 있다고 답했다. 얼핏 시설요양보호사에 비해 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많은 재가요양보호사들이 허드렛일과 잦은 성희롱 등 고충을 호소한다. 업무 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돌봄노인이 아닌 다른 가족의 집안일이나 밭일까지 강요받는 경우도 많다.

올해 6월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등이 주최한 ‘재가요양서비스 노동실태 증언대회 및 처우개선 토론회’에서 5년 동안 재가요양보호사로 일해왔다는 이선례씨는 “몸 한쪽이 마비된 70대 노인을 9개월 동안 돌봤는데, 집에 방문할 때마다 ‘안아보고 싶다’ ‘손잡아보고 싶다’며 수시로 성희롱을 했다”고 말했다. 이씨에게 창고정리, 김장은 물론 한겨울에 묘목 심기까지 시킨 집도 있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재가방문요양의 경우 ‘내 돈 주고 일하는 사람을 썼다’는 인식이 강해 매일매일 대청소, 애완동물 돌보기, 손주들 돌보기까지 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 설문에서도 재가요양보호사의 41%만 ‘돌봄일의 범위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고 답했다. ‘돌봄노인의 가족을 상대하는 일이 어렵다’는 답변도 34%였다.

[노인돌봄 누구의 몫인가]“요양보호사 한명당 노인 다섯…누가 연차 쓰면 스무명까지”

시설에 비해 고용도 더 불안정하다. 시설요양보호사의 90%가 근로계약서를 썼다고 했으나, 재가요양보호사는 77%만 썼다고 답했다. ‘고용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거나, 계약기간이 남아 있더라도 고용주가 요구하면 그만둬야 한다’는 답변도 71%였다. 시설요양보호사에 비해 전체 노동시간은 적지만, 급여도 더 적었다. 월 100만원 미만을 번다고 한 경우가 시설요양보호사는 3.4%였지만, 재가요양보호사는 절반(50%)이었다.

■ 돌봄제공자의 ‘선한 의지’에 기댄 돌봄

열악한 노동환경에도 불구하고 요양보호사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고령화와 장기요양서비스 확대 등으로 인해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제2차 장기요양기본계획에 따르면 요양보호사는 2022년까지 약 53만명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약 38만명이던 요양보호사 수는 올해 약 44만명까지 늘었다.

처음에는 생계 때문에 돌봄일에 뛰어들었던 이들은 경력이 점점 쌓이면서 스스로를 전문직 종사자라 여기고 있었다. 설문 대상자들은 스스로 노인을 잘 돌보기 위한 교육을 충분히 받았으며(69.7%),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62.7%)고 답했다. 노인을 돌보고 있는 자신이 자랑스러우며(40.3%), 힘든 환경이지만 계속 일하고 싶다(67.7%)고도 했다. 주야간보호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문영미씨(가명·50대 여성)는 “요양보호사도 자격증과 전문지식에 따라 임금 등에 차등을 줘서 능률이 오를 수 있게끔 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요양보호사들의 고용을 안정시키고 낮은 인건비를 올리려면 국가가 요양기관 운영에 더 개입해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말한다. 수익성에 연연할 필요 없는 공공 요양기관과 달리, 대다수 소규모 민간업체들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근로조건과 서비스질을 하락시키며 경쟁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노인요양시설의 경우 지자체가 운영하는 국공립 시설의 비중은 전체 2만2577곳(올해 9월 기준) 중 1.1%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지자체가 민간에 위탁운영하는 것이고, 건강보험공단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은 전국에서 서울요양원 단 한 곳이다. 전지현 사무처장은 “서울요양원처럼 수익의 대부분을 시설운영비와 인건비에 지출할 수 있는 공공 요양기관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서비스원의 확대는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사회서비스원은 지자체로부터 국공립 시설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서비스 종사자들을 직고용해 관리하는 ‘돌봄허브’다. 그동안 민간기관에만 맡겨둔 재무, 회계, 노무 등을 상담 자문도 한다. 올해 초 복지부는 사회서비스원 시범사업 지역으로 서울·경남·대구·경기를 선정했지만, 근거 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면서 설립 및 안정적 운영이 어려운 상태다.

최경숙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종합지원센터장은 “중앙정부에만 맡기지 말고 지자체가 민간기관 운영에 더 개입해 요양보호사들이 ‘돌봄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시는 서울지역 내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등 6만5000여명의 돌봄종사자를 지원하기 위해 2013년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종합지원센터를 설립했다. 돌봄종사자에게 직무교육을 하고,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노무사를 두고 노동상담도 진행한다. 최 센터장은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른 인건비 지출 비율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곳이 태반인데, 지자체에서 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나 조례를 만들어 요양보호사 처우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큰 틀에서는 사회 전반적으로 돌봄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 전지원 박사는 “돌봄에 들어가는 국가적 비용을 교육과 마찬가지로 사회 경쟁력을 기르는 ‘투자’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한 한국의 경우 앞으로 ‘돌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가 국가 경쟁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24시간 밤샘 근무 뒤 종교행사에 동원…국수 삶고 나르고”

전면파업 돌입한 월정사 요양원 요양보호사들

“24시간 꼬박 밤샘 근무하고 나서 ‘부처님오신날’ 행사에 가요. 가서 국수 삶고, 신도들에게 음식 날라주고 퇴근하면 40시간 내내 깨어 있는 거예요.”

지난달 25일 강원 평창군의 월정사 노인요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이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2008년 요양원이 문을 연 이래 처음 있는 파업이다. 이곳에서 2년 반가량 일했다는 요양보호사 ㄱ씨는 “동료들의 자존감이 너무 떨어지고, 극단적 선택까지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서 참다 참다못해 한 선택”이라고 했다.

이들의 근무실태를 들여다보면, 돌봄업무 외에 온갖 잡무에 시달리는 요양보호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알 수 있다. 요양원 관리직원들은 휴무일에도 아무렇지 않게 요양보호사들을 절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동원했다. ㄱ씨는 “1년에 최소 7~8번은 종교행사에 갔다”고 말했다. 부처님오신날, 단오, 어버이날이면 월정사 신도들이 절에 모이는데 이때마다 전체 요양보호사 51명은 일손을 거들러 갔다. 월정사 요양원은 24시간 꼬박 근무하고 48시간 쉬는 ‘퐁당당’ 근무 체제인데, 행사에 동원되는 날은 밤샘 근무 다음날 연속으로 일해야 한다.

휴무일에 전원 출근…업무 외 노동
항의하면 나머지 청소 등 ‘벌칙’


별도의 위생원이 있음에도 식사 후 설거지는 요양보호사의 몫이었고, 주말에는 노인들의 빨래까지 했다. 밤 근무 때는 혈당을 재거나 흡인(석션) 등의 간호사 업무도 요양보호사들이 해야 했다.

ㄱ씨는 “여러 차례 항의했지만, 그때마다 ‘벌칙’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요양원은 올해 1월부터 ‘일근제’를 도입했는데, 일근제에 배치되는 것이 요양보호사들에게는 벌칙처럼 여겨졌다. 불규칙하게 주간근무를 한 후 일손이 필요한 곳에 그때그때 배치돼, 휴무가 더욱 불규칙해지고 급여까지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ㄱ씨는 “근로기준법에도 없는 부당한 근무형태라서 항의하니, 4월부터 퇴근 후 30분씩 청소를 더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월정사 요양원은 사회복지법인인 월정사 종교재단에서 운영한다. 현재 월정사 종교재단은 조합원들의 파업에 대해 지난달 29일부터 직장폐쇄로 대응 중이다. 재단 측은 지난 3일 해명 보도자료를 통해 갑질과 횡포 등 노조 탄압은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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