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20 한국’의 택시운전사

전현진·조문희 기자
아, 나는 처음부터 당신을 만나고 싶었지요. 날 이해하시겠어요?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 얘긴 바로 내 얘기예요. 시장의 법칙 같은 그런 골치 아픈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내 얘기요. 들으시겠어요? 정말이죠? 그럼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당신에게 달려갈게요. 홍세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서문

아, 나는 처음부터 당신을 만나고 싶었지요. 날 이해하시겠어요?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 얘긴 바로 내 얘기예요. 시장의 법칙 같은 그런 골치 아픈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내 얘기요. 들으시겠어요? 정말이죠? 그럼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당신에게 달려갈게요. 홍세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서문

수십년 ‘사납금제’ 고통 시달리다
10년 소송 끝 얻어낸 전액관리제
그러나 기뻐할 겨를 없이 몰아치는
유사 택시, 플랫폼 영업의 ‘태풍’들

택시 노동자와 서울 254개의 회사
그들은 현재 어디쯤 달리고 있을까

[커버스토리]나는 ‘2020 한국’의 택시운전사

지난해 4월18일 오후, 경기 파주에서 개인택시를 하는 이창종씨(53)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향했다. “혹시라도 지면 개인택시 넘버(면허)라도 팔아야 할 것 같아.” 함께 재판을 이어온 동료에게 말했다. 택시기사가 된 지 15년 만인 2018년 받은 면허였다. 이길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뒤로 좀처럼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승소하면 성공 보수나 넉넉히 달라”며 웃는 마음씨 좋은 변호사를 만나 ‘외상’으로 8년 넘게 버텨온 재판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판결문을 낭독했다.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2016다2451’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관 다수의견은 “최저임금을 잠탈하기 위한 취업규칙상 소정근로시간 단축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월 209시간에 맞는 최저임금을 보장받기 위해 2010년 7월 민주택시노동조합 거성운수분회를 만들면서부터 시작된 투쟁이었다. 이씨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23명으로 시작했던 원고는 5명만 남았다. 재판정을 나서면서 그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다 끝났어. 이겼어.”

지난 12일 경기 파주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그의 가방에는 언제 받아두었는지 모를 고용노동부 공무원의 빛바랜 명함들과 10년도 더 지난 꾸깃꾸깃한 급여명세서, 문전박대를 당하며 겨우 얻어냈던 소송자료 등이 담겨 있었다.

이씨의 법정 투쟁은 2019년 택시산업의 지형을 바꿔놓은 사건 중 하나였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 개정돼 매일 번 돈의 일부를 회사에 납부하던 사납금제를 폐지하는 전액관리제가 시행됐다. 전국의 택시사업장에선 대법원 판결에 따른 소송이 오갔고, 새로운 임금체계를 만들기 위한 협상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밖에도 지난해 택시업계에 큰 화두가 여럿 던져졌다. 플랫폼·가맹점 형태의 택시 영업이 본격화됐고, 타다 등 유사택시 논란이 벌어졌다. 지난해 1월부터 카풀·타다에 반대하는 개인택시 기사 3명이 연달아 분신하는 일도 있었다. 개인택시 기사의 분신 사건은 한국 택시업계 사상 전례 없는 일이다. 법인택시 기사들이 꿈꾸는 개인택시 영업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경향신문은 지난해 11월부터 택시업계와 노동조합 관계자, 택시기사 및 관련 전문가 등을 만나 택시산업의 현 주소에 관한 심층 취재를 진행했다. 저마다 이해관계는 달랐지만, 택시산업이 현재 “최악의 상황”이라는 데는 의견을 같이했다. 택시산업의 피라미드 맨 밑바닥에 법인택시 소속 기사들이 있었다. 첫 회의 주인공으로 그들을 삼은 이유다.

또한 17년 전 노동환경 조사에 참여했던 택시노동자들을 다시 찾아 그들의 현재를 살폈다. 서울 지역 254개 택시회사를 대상으로 경영 실태를 들여다봤다. 택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대안을 강구해봤다. 손만 내밀면 닿는 거리에 있는 택시. 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 택시 속으로 들어가본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택시기사는 갈면 그만인 ‘2만1개째 부품’

지난 12일 경기 파주시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창종씨가 8년 이상 끌어온 소송 자료들을 보여주고 있다.<br />이씨는 지난해 4월18일 대법원에서 자신이 근무했던 택시회사를 상대로 낸 최저임금 지급 소송에서 승소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지난 12일 경기 파주시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창종씨가 8년 이상 끌어온 소송 자료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씨는 지난해 4월18일 대법원에서 자신이 근무했던 택시회사를 상대로 낸 최저임금 지급 소송에서 승소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그동안 통용됐던 사납금제는
기사가 차량의 ‘사용료’ 내는 방식
전액관리제는 수익전액을 납입
회사가 임금협정 따라 급여 지급
기사의 노동자성 더욱 강조됐지만
제도가 바뀌어도 어려움은 여전


최규학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민주택시) 동성운수분회 분회장은 6년 전 경기 화성시로 왔다. 화성에서는 아직도 개인택시 면허가 발급된다는 말을 들은 뒤였다. 사업 실패로 부도 위기를 맞자 ‘나중에 밥은 먹고 살아야지’ 하며 택시운전 자격을 취득해뒀기 때문이다.

처음엔 안양에서 택시를 몰았지만, 하루 20시간을 꼬박 바쳐도 이런저런 비용을 제하면 채 1만원도 남지 않았다. 별다른 기술 없이 운전만 할 줄 알면 가능한 일인 줄 알았는데, 택시기사로 사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경험과 요령은 물론 체력도 필요했다.

법인택시 기사들의 꿈은 개인택시 면허를 취득하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1억원을 웃돌기도 하는 거액의 ‘프리미엄’을 치러야 함에도 개인택시 면허를 갖고 싶어 하는 이유는 자유로운 근무 시간도 한몫하지만, 무엇보다 운전으로 버는 돈이 온전히 자신의 수입이 되기 때문이다. 최 분회장은 법인택시 기사로 사는 7년간 늘 사납금의 압박에 시달렸다. 격일제 2교대 근무를 하는 동성운수는 지난해까지 사납금이 20만원이었다. 하루 10시간 넘게 일해 사납금을 채운 뒤 남는 초과운송수입이 그의 몫이었다. 사납금을 채우지 못하면 고정급여에서 부족한 만큼을 메꿔야 했다.

평생 노동운동 같은 건 모르고 살았던 최 분회장은 자신이 노동조합을 꾸리고 회사와 소송을 하고, 급기야 해고까지 당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을 공부하고 지방자치단체와 관공서를 쫓아다니게 될 줄도 몰랐다. 그저 개인택시를 몰고 싶었을 뿐이다.

지난달 30일 화성의 한 빌라 1층에 자리 잡은 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아이들 학교 등록금도 내고 딸아이에게 패딩이라도 사 입히고 싶은데 한 달에 80만원만 벌어서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했다. 최 분회장은 지난해 11월 무렵 해고됐다. 사측에 최저임금 차액 지급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후 대응하는 과정에서 “불성실 근로를 주동했다”는 것이 해고 사유다. (동성운수 사측 관계자는 최 분회장이 다른 직원들과 기사들에게 폭언을 한 것이 주된 해고 사유였다고 밝혔다.)

사무실에 모인 조합원들도 저마다 경험담을 보탰다. “최저임금 보장이나 노동조건 개선을 사측에 요구하면 크게 달라지는 것 없이 차별 대우가 이어졌다”고 했다. 동성운수에 민주택시 분회가 생긴 건 2017년 10월. 당시 사측과 기존 노조가 18만1000원이던 사납금을 20만원으로 인상하고, 초과운송수입금을 회사와 기사가 6 대 4로 나누기로 합의한 데 반발해 새로 결성했다. 퇴직 후 다시 1년 단위로 계약하는 고령의 촉탁제 기사들은 노조활동에 참여하면 사측에서 계약을 연장해주지 않을까 싶어 불안해했다.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 어려워지거나, 오래된 차량만 사용하게 하는 등 불합리한 처우가 이어졌다는 증언도 있었다. 최 분회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은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앞에서 한 달 넘게 1인 시위 등을 벌이며 투쟁했다.

■ 복잡한 택시기사의 월급체계

동성운수 한 택시기사의 지난 1월 급여명세서. 20만원이 채 안되는 기본급에 승무수당, 무사고수당, 성실수당 등 각종 수당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동성운수 한 택시기사의 지난 1월 급여명세서. 20만원이 채 안되는 기본급에 승무수당, 무사고수당, 성실수당 등 각종 수당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지난 10일 동성운수 택시기사들에게 1월치 급여로 174만3770원(1일 6시간40분, 주 6일, 월 203시간, 월 26일 근무 기준)이 지급됐다. 동성운수의 기본급은 19만3115원이다. 여기에 승무수당, 장기근속수당, 만근수당, 성실수당, 무사고수당, 유급주휴수당, 상여금이 붙고 최저임금을 맞추기 위한 조정상여금이 더해졌다. 회사 게시판에 공고문이 붙었다.

공고 내용은 올해 1월1일부터 시행되는 전액관리제에 따라 이전과 같은 사납금제 방식의 급여 지급이 어려워졌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전액관리제에 따른 임금협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소정근로시간(1일 6시간40분/월 203시간)에 상응하는 최저임금(8590원×203시간)을 지급하고, 사납금제에서 기사들 몫이었던 초과운송수입금은 전액관리제 시행 후 성과급 형태로 지급할 예정이지만 아직 기준이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불성실 근로자는 제재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주52시간으론 최저임금도 못 벌어
한 달 근무 290시간 훌쩍 넘기도
20년 전 소득보다 오히려 더 줄고
매달 들쭉날쭉 수입에 스트레스
“월급날만 되면 일 그만두고 싶다”

택시기사의 임금체계는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구조이다. 그동안은 사납금제가 통용됐다. 사납금제는 차량을 기사에게 빌려줘 택시영업을 하게 한 뒤 ‘사용료’를 받는 방식에서 시작됐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사납금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손해 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고, 노무 관리를 별도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 택시기사에게는 사납금 외에 초과수입분을 챙길 수 있어 업무 성과에 따라 수익을 더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택시영업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사납금을 채우기 어렵다.

전액관리제는 택시영업으로 벌어들인 수익 전액을 회사에 납입하는 제도다. 수익 전액을 수납한 회사는 임금협정에 따라 택시기사들에게 정해진 급여를 지급한다. 전액관리제는 그래서 택시기사의 노동자성이 더욱 강조되는 제도다. 사납금 대신 전액관리제를 시행해야 하는 법과 제도는 일찌감치 갖춰져 있었다.

사납금제의 핵심은 택시영업 이후 회사에 납부하는 ‘사납금’을 얼마로 정할 것인가이다. 사납금은 노사의 임금협상 과정에서 결정된다. 사납금이 늘어날수록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초과운송수입금을 챙기기 어려워진다. 지난해 4월18일 대법원은 ‘최저임금을 잠탈하기 위해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무효’라고 결정했다. 최저임금법 제6조 5항에 따라 택시기사들의 ‘생산고에 따른 임금’은 최저임금을 계산하는 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조항에 따른 판단이었다. 초과운송수입금(생산고에 따른 임금)은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으니 고정급으로만 최저임금을 채워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 근무시간은 조정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줄이기 위해 노사협약상의 소정근로시간만 단축시키는 것은 무효라는 지적이었다.

전액관리제 시행을 앞두고 기사들은 과연 월급이 얼마나 나올지 걱정했다. 최 분회장은 “최저임금 수준으로 맞춰주려 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실제 근로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불성실 근로’의 기준이 무엇인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전액관리제가 적용돼 처음 지급된 1월치 급여는 지난해와 비교해 크게 줄었지만 근무시간까지 줄어든 건 아니라고 했다. 상여금 명목의 급여는 사실상 체불 상태다. 지난해까지는 휴일도 건너뛰며 일한 기사의 경우, 80만원 수준의 고정급에 각종 수당을 더해 매달 200만원이 넘는 월급을 가져갔다고 한다.

■ “택시기사는 2만1개째 자동차 부품”

최저임금 기준으로 계산되는 운송수입금이나 소정근로시간은 실제 근무시간과 큰 차이를 보인다. 조합원들은 동성운수의 1월치 급여가 사측에서 계산한 소정근로시간대로라면 203시간이지만, 실제 일한 시간은 격일제 2교대 근무이니 13일 만근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290시간을 훌쩍 넘는다고 했다. 전액관리제가 시행돼도 최저임금 수준의 돈을 벌려면 주 52시간 수준으로 근무해서는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결국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동성운수분회에 따르면 이곳에선 80여대의 택시를 130명이 운행하고 있다. 대당 1.5명꼴이다. 실제 운행하지 않는 차량도 있다. 보통 24시간 일하고 하루를 쉬는 격일제 근무로 택시 1대를 두 명이 운행한다. 2017년 9월 말에는 종업원이 230명이었다고 했다. 적정 근로시간을 유지하기 위해선 대당 2.5명의 기사가 필요하지만 전국 어느 곳에서도 대당 2명 이상의 택시기사를 보유한 지역은 없다.

최 분회장은 “자동차에 부품이 몇 개나 있는 줄 아느냐”고 물었다. “자동차 부품이 2만개 정도 된다고 하는데, 택시기사는 2만1번째 부품입니다. 갈아 끼우면 그만인 소모품 같은 거죠. 노조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받은 (사측의) 탄압뿐만 아니라, 사납금에 대한 압박감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계속되면서 많은 기사들이 업계를 떠나고 있습니다. 결국 처우는 개선되지 않은 채 남은 택시기사들의 근로시간이 늘어나버린 상황이 된 거죠.”

[커버스토리]나는 ‘2020 한국’의 택시운전사

경향신문이 만난 20여명의 현직 택시기사들도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대해 토로했다. 법인택시 기사 이모씨(64)는 “1999년부터 택시운전을 해왔는데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소득이 한 달에 170만~180만원가량 됐지만, 지금은 150만~160만원으로 줄었다”고 했다. 그의 평균 근무시간은 하루 12시간 정도다. 이씨는 “수입은 안 나오고, 일은 고돼서 몸이 많이 망가졌다”며 “이젠 근무시간이 줄어도 몸이 못 버틴다”고 했다.

2001년부터 택시를 운전한 이모씨(58)도 “요금이 올랐지만 사업주가 혜택을 보는 것이지 기사들 수익이 올라가는 게 아니다”라며 “최저시급과 우리(법인택시 기사)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택시기사들은 잦은 사고와 승차거부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승객 수요가 많은 심야시간대 강남·이태원·홍대 등은 대부분 상습 교통 정체 지역인데 이곳에 잘못 들어섰다가 장거리 손님을 만나지 못하면 길 한가운데서 시간만 낭비할 수밖에 없다는 것. 사납금을 채우려면 이런 지역으로 들어서지 말아야 하고, 이 때문에 승차거부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04년부터 택시기사를 하고 있는 정모씨(49)는 월급날이면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집에 많이 못 갖다주기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 꼬박꼬박 고정된 급여가 나와야 하는데 우리는 매달 수입이 다르니까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했다. 또한 “장거리 운행 손님이 많은 심야시간에는 욕설이나 발길질을 하거나, ‘왜 그 길로 가느냐’며 시비를 거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이 밖에도 “택시기사를 위한 복지체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장시간 좁은 공간에 앉아 있지만) 운동을 하면서 체력관리를 할 수 있는 여건도 안된다”는 호소가 이어졌다.

◆사납금 폐해 없앤다던 전액관리제…급여안정 기대보다 “불안”

16년째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이창종씨가 2018년 면허를 받아 운행하고 있는 개인택시. 이씨는 “법인택시 기사로 일할 때 매일 아침 사납금을 채울 수 있을지 불안감에 시달렸다”면서도 “개인택시 영업도 요즘은 어렵다”고 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16년째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이창종씨가 2018년 면허를 받아 운행하고 있는 개인택시. 이씨는 “법인택시 기사로 일할 때 매일 아침 사납금을 채울 수 있을지 불안감에 시달렸다”면서도 “개인택시 영업도 요즘은 어렵다”고 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 이름만 바꾼 사납금제

택시기사들이 이런 열악한 처우에 몰리게 된 데에는 택시 수익 감소라는 근본적인 원인도 있다. 택시영업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은 계속 줄어들었지만, 사납금은 변함없이 유지돼왔다. 사납금은 법인택시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깊숙이 밴 제도다.

사납금제의 폐해를 없애기 위한 전액관리제는 이미 1994년 도입됐다. 당시 신설된 자동차운수사업법(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24조 3항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자동차운송사업자는 운수종사자가 이용자로부터 수령한 운임과 요금의 전액을 당해 운수종사자로부터 납부받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차일피일 미뤄지다 1997년 9월1일에야 시행됐다. 1997년 3월18일 한국노총 산하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전택노련)은 ‘택시노련특보’를 발행하면서 “운송수입금 전액관리제 실현의 닻은 올랐다”고 평가했었다.

현실에선 거의 모든 택시업체들이 사납금제를 유지해왔다. 올해부터 시행된 전액관리제는 1997년의 전액관리제와 비교해 구체적인 규정을 정해뒀다는 점이 다르다. 1997년 전액관리제는 “운송수입금 전액을 수납한다”는 의무만 있었고, 운송수입금의 배분 방식을 따로 규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액관리제를 시행한다고 했지만 월 기준 금액을 정해 미달하는 금액을 성과급이나 주유비 등의 명목으로 공제해 사납금제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기사들 “사납금 이름만 바뀐 것”
아직 적절한 방침 못 찾은 회사들
과세 달라 경영 더 까다롭다 호소
“오히려 기사님들 못 견디고 관둬”

2020년의 전액관리제는 구체적인 시행 지침 등이 마련된 상태다. 명칭이나 형태를 불문하고 기존 사납금 방식과 유사하거나 변형된 형태의 사납금 방식을 금지하고 있고, 실적에 따라 고정급여를 삭감하거나 과도한 실적 기준을 설정해서는 안된다는 등의 내용이다. 연료비 등 제반 경비를 택시기사에게 전가하거나, 운송수입금 전액을 수납한 후 일정 기준 이상의 금액을 되돌려주는 ‘초과운송수입금’ 형태의 배분 방식도 금지했다.

실시 두 달째, 전액관리제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정부에서는 금지하고 있지만 사실상 사납금제가 이름만 바뀌어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997년 전액관리제처럼 운송수입금 배분 방식에 대해 택시업체와 기사 측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부 노사협정에서는 매월 약 415만원가량의 운송수입금 기준금이 생기고, 초과금액에 대해 성과급을 지급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기도 했다.

■ “택시산업, 최악의 상황”

지난해 11월 민주택시노조 동성운수분회 택시기사들이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앞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다(왼쪽 사진). 택시기사들이 노동환경 개선 등을 요구한 투쟁은 오래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1984년 대구에서 근무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택시기사들의 집회 현장 모습(오른쪽).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해 11월 민주택시노조 동성운수분회 택시기사들이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앞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다(왼쪽 사진). 택시기사들이 노동환경 개선 등을 요구한 투쟁은 오래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1984년 대구에서 근무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택시기사들의 집회 현장 모습(오른쪽).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이 택시산업 전반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만난 택시기사들과 업계 관계자, 전문가 등은 택시산업이 심각한 위기라고 입을 모았다. 2000년 50억3900만명에 달했던 택시 수송인원은 2017년 36억1700만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반면 2000년 22만9254대(개인+법인)였던 택시는 2017년 25만2455대로 오히려 늘었다. 수요는 감소하는데 공급이 증가했으니 대당 수익은 자연히 감소했다. 하지만 사납금은 인상됐다. 근로환경이 악화되니 기사들이 떠나고, 남은 기사들의 근로여건은 더 열악해진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지난해 법인택시 기사들의 노동환경을 조사한 이문범 노무사(법무법인 이산)는 개인택시 기사들과 달리 근로시간과 급여 수준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법인택시 기사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고 했다. 이 노무사는 1987년부터 2001년까지 10년 이상 택시기사로 일한 경력자다. “지금 법인택시 기사를 ‘막장’이라고 하는데, 신규 입사자도 없어서 이렇게 10년만 지나면 자연히 소멸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에는 택시기사의 처우가 버스기사보다 좋았는데, 결국 법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는 버스기사가 택시기사보다 급여가 2배 가까이 높아졌습니다. 근로시간이 늘어나고 수익 압박을 받는 법인택시 기사들의 운전자 사고율은 13.3%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2019년 4월 기준으로 개인택시는 전국에 16만4844대, 법인택시는 8만7505대로 개인택시가 두 배 이상 많다. 이 노무사는 대중교통과 개인교통을 보완하는 택시의 역할로 봤을 때 법인택시가 공적인 기능을 더 많이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택시는 일반적으로 날씨가 좋지 않거나 심야시간대, 택시 수요가 몰리는 교통 혼잡 지역에서는 별로 운행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고 했다. 개인택시는 개인면허 사업자들이기 때문에 서울의 경우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4부제만 지키면 운행 시간은 비교적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사납금제, 기사 노동환경 저해”
1998년 판례, 지금도 현재진행형
난폭운전·승차거부·부당요금 뒤
기사들 불안정한 생활기반 자리
처우 개선이 곧 서비스 수준 결정

이 노무사는 “대중교통이 끊기거나 택시 수요가 몰리는 지역에서는 의무 근무를 하는 법인택시의 역할이 보다 공공성에 부합한다”고 했다. 그런데 법인택시 기사들의 근무여건이 열악하다 보니 승차거부나 난폭운전 같은 부작용이 생기면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노무사는 “장시간 근로와 사납금의 압박감 등으로 인해 법인택시 종사자들의 근로조건이 악화되면서 서비스와 안전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루 10시간 이상 운전을 해도 한 달에 100만~200만원을 벌어가는데 어떻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전액관리제는 불안정한 급여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택시기사들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이창종씨가 일했던 경기 파주시의 거성운수도 지난 10일 급여를 지급했다. 지난해의 고정급과 같은 약 110만원을 받았다. 결국 기사들 사이에선 택시기사들의 안정적인 급여를 보장하기 위한 전액관리제가 탁상공론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아직 시행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취재과정에서 만난 택시기사들은 현장에서 제도가 제대로 시행될 것이라는 기대감보다는 ‘한 치 앞도 모르겠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민주택시 거성운수분회의 한 조합원은 “사납금이 이름만 없어지는 것일 뿐 기사한테는 더 불리한 제도가 생길 것 같다”며 “전액관리제가 되면 회사는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할 텐데, 결국 기사들의 부담과 손해만 커질 것”이라고 했다. “전액관리제가 시행돼도 사실상 사납금제가 유지될 것 같은데, 현장에서 이런 일을 개선하려고 해도 정부나 지자체는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두 손 놓고 있을 것이 뻔하다”는 그는 “결국 언제 끝날지 모를 소송을 또 해야 하는데, 택시기사들에겐 그럴 힘이 없다”고 항변했다.

■ 전액관리제…택시회사도 낯설다

전액관리제는 택시회사 입장에서도 낯선 제도다. 전액관리제 시행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 적절한 방침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전액관리제와 최저임금 지급을 둘러싸고 노조와 소송전을 치르고 있는 회사 측 관계자들의 입장은 택시기사들과 뚜렷한 온도차를 보였다.

동성운수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 이후 택시기사들의 고소·고발이 이어지고 있어 소속 기사들과 감정의 골이 계속해서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소송이 계속되면서 회사도 손해고 기사들도 손해를 보고 있다. 이미 월급이 두 번이나 지연돼 대출을 받아서 막고 있다”며 “예전에는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서로 이해하고 지나갔던 게 이제는 법에 의해서 정해져야 하니 복잡한 부분이 많아졌다”고 호소했다.

전액관리제 시행 이후 일을 그만둔 택시기사가 오히려 더 많아졌다고도 했다. 그는 “이제는 세금 신고도 해야 하고, 전액관리제로 인한 임금 인상분만큼 성과급 배분에 필요한 월 기준금도 증가할 것”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의욕도 없이 기본적인 운송비용을 충족하지 않고 정해진 급여를 받아가려는 기사들도 적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거성운수도 아직 전액관리제에 따른 임금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회사 측 관계자는 “경기 지역은 아직 임금협상 체결률이 30%가 안될 것”이라며 “전액관리제를 시행하도록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현재 시행은 하고 있지만 사납금제에 몸이 익은 상태이다 보니 임금교섭에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사납금 초과분을 매일 받아 생활하던 방식에 익숙해졌는데 하루아침에 바뀌니 기사들이 오히려 못 견디고 그만두는 일이 많다”고 했다.

이어 그는 “성과급을 줘야 하는데 그 기준을 어떻게 둬야 할지에 대해 아마 모든 회사들이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며 “운송수입이 1만원밖에 안돼도 최저임금을 줘야 할 것인지, 어떻게 제재를 할 것이고 초과수입은 어떻게 성과급으로 줘야 할지 양면적인데 (운송수입의) 기준금액을 설정하지 않고는 어렵다”고 했다.

과세기준도 달라지기 때문에 택시회사를 경영하는 입장에선 전액관리제가 더욱 까다롭다. 과거엔 사납금만 회사의 수익에 포함됐다면, 운송수입금 전액이 회사의 수익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거성운수 측은 지난해 4월18일 이창종씨 등과 벌인 대법원 판결에 대해선 “노사의 합의가 인정되지 않은 것이니 소수가 다수 결정을 이긴 셈”이라면서 “어쨌든 지금 틀 안에서 진행 중인 소송이나 새로운 제도에 대해서도 최적화된 방향을 찾아야 한다. 택시회사도 더 이상 ‘갑’이 아니고 ‘을’이다”라고 했다.

■ 택시기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왜 택시기사들 사정까지 알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1998년 10월29일 ‘(구)자동차운수사업법 제24조’ 등에 대한 위헌확인 소송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한 판단이 답이 될 수 있다. 당시 택시업계는 새로 신설된 전액관리제에 반발해 위헌확인 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헌법재판관 전원은 “정액사납금제가 일반택시업계의 일반적인 운송수입금 관리방법이자 택시기사의 임금형태”라면서도 “사납금제로 인하여 택시기사는 생계를 보장하는 월급을 사업자로부터 기대할 수 없어 생활기반이 불안정하고, 사납금 이외의 수입금 확보를 위하여 난폭운전, 승차거부, 부당요금의 징수 등 무리한 운행을 함으로써 일반 국민의 안전과 운송질서를 저해하는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현상도 발생하였다”는 등의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당시 헌재는 전액관리제가 “관련 기업의 경영투명성 확보에 기여할 것은 물론 일반택시 운수종사자(택시기사)의 생활안정을 통한 일반택시 이용자에 대한 서비스의 질 제고도 기대된다”며 “전액관리제의 도입과 함께 택시기사의 임금형태는 정액사납금제에서 택시기사가 수입금 전액을 사업자에게 납부하고 사업자는 일정 기준액을 초과한 운전자에게 성과급을 포함한 월급을 지급하는 소위 성과급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 조항의 입법 목적이 기업의 경영투명성 제고와 택시기사의 생활안정을 꾀해 무리한 운행요인을 줄여 택시 이용자에 대한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고 판단했다.

택시기사의 노동환경은 택시를 이용하는 승객의 안전과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오래된 판례는 노동자의 처우와 서비스의 질이 연결돼 있고, 공공성을 지닌 교통수단인 택시 승객의 안전을 위해선 건전한 노동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을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사납금’ ‘난폭운전’ ‘승차거부’ 등 택시 관련 키워드는 20년도 더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돈 주고 타는 택시인데, 서비스가 엉망”이라거나 “택시만 타면 왠지 무섭고 불안하다”는 승객의 불만 뒤에는 택시기사들의 불안정한 생활기반이 자리하고 있다.

안기정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결국 법인택시는 사업자와 노동자의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 권력관계가 사업자에게 쏠려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그런데 실질적으로 서비스를 승객에게 제공하는 사람들은 택시기사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에 대한 처우에 따라 서비스의 수준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서비스 관리를 하지 않고 새로운 실험과 도전도 하지 않으면서 사납금만 유지하려는 방식으로는 이제 살아남기 힘들다”고 했다.

이창종씨는 이제 3년차 개인택시 기사지만 여전히 안갯속을 달리는 기분이다. “자유로운 개별 사업자가 된 건 좋지만 택시산업 자체가 좋지 않다 보니 쉽지만은 않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막 개인택시 면허를 딴 기사 세 분이 과로사로 숨졌습니다. 차량 구입 등 그동안 진 채무로 인해 무리하게 운전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씨는 그래도 미래를 낙관한다고 했다. “과거 택시기사들은 ‘대기업 부장’만큼 돈을 벌었고, 택시기사가 되려는 사람들이 회사 앞에 줄을 서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버스기사도 과거엔 사납금제였지만 전액관리제가 시행되고 처우가 훨씬 좋아졌습니다. 택시는 이제 전액관리제가 시행된 지 한 달밖에 안된 만큼, 기사들이나 사업자들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방식에 적응해 가야 합니다.”

※목차

1. 나는 ‘법인택시’ 기사입니다
2. 2003~2020, 택시노동자 추적조사
3. 서울 택시업체 전수조사
4. 택시의 과거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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