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넘어 변화를’…아동보호특별법에 쏠린 ‘시민의 눈’

김은성 기자

아동학대로 매년 40명 사망하지만 정부차원 진상조사 없어

‘특별법’ 내주 국회 논의 앞두고 “사후수습 아닌 예방” 요구

16개월 여아가 양부모 학대로 숨진 서울 양천 아동학대 사건(정인이 사건)의 첫 공판이 열린 지난 1월 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정인이 영정에 헌화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16개월 여아가 양부모 학대로 숨진 서울 양천 아동학대 사건(정인이 사건)의 첫 공판이 열린 지난 1월 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정인이 영정에 헌화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해 국가 차원의 진상 조사를 실시하는 내용의 ‘양천 아동학대 사망 사건(정인이 사건) 등 진상조사 및 아동학대 근절대책 마련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특별법) 통과를 촉구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건 발생 시 분노하며 가해자 처벌 강화에 그치지 말고,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로 구멍난 아동보호 시스템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요구이다.

세이브더칠드런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11개 시민단체가 지난 22일부터 진행하는 ‘죽음에서 배울 의무,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진상조사하라’ 온라인 캠페인(https://campaigns.kr/campaigns/307/pickets)에는 28일 현재 320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해 지지글과 인증 사진을 올렸다.

시민들은 “아이들의 죽음을 통해 배워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린이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입니다” “반복적인 아동학대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변화된 내일을 기대합니다” 등 법안 통과 지지글을 올리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이제라도 아동학대 대응 시스템의 누수지점을 찾아 구멍을 메워야 한다”며 “아동보호 및 돌봄정책이 망라돼야 또 다른 학대로부터 아동을 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여야 국회의원 139명이 지난 5일 발의한 특별법은 지난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돼 이르면 다음주 복지위 소위원회에서 본격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별법은 대통령 직속 진상조사위원회를 한시적으로 설치해 2018년 1월부터 법 시행일 전까지 발생한 주요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선정해 사회가 어떤 부분을 놓쳤는지 분석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특별법이 참고한 것은 영국의 ‘클림비 보고서’다. 2000년 영국에서는 당시 8세 소녀 빅토리아 클림비가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다 숨져 공분이 일었다. 영국 정부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2년여간 275명을 조사해 보고서를 냈고 이 보고서를 토대로 2004년 아동법이 제정됐다. 2016년 미국에서도 직전 5년간 학대로 숨진 아동들에 대해 조사한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국가전략보고서’가 나와 제도가 정비됐다.

한국에서는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가해자 처벌 강화 등을 골자로 한 대책이 나왔지만,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가 진행된 적이 없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2015년부터 매년 평균 40여명의 아동이 학대로 숨지고, 사망 아동 수도 느는 추세다. 학대에 따른 영아 사망자 수는 정확한 집계조차 없다.

개인적 헌신에 기댄 민간 차원의 조사가 2014년, 2017년 두 번 진행됐으나 자료 수집과 조사 범위, 조사 결과 이행 등에 한계가 있었다. 2014년 아동학대 사건(이서현 사건) 민간조사에 참여한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책상에서 나올 만한 대책은 다 나왔으나 바뀐 게 없다. 현장은 그대로인데 대책을 실행할 예산과 인력이 확보되지 않아 절차만 복잡해졌다”며 “대책이 현장에서 어떻게 이행되는지 확인하고, 국가 차원의 아동보호 체계를 조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장 내 전문 인력이 양성되지 않는 등 아동보호 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가해자인 부모와 아동이 분리된 후, 피해 아동의 삶의 질을 담보할 고민도 부족하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김상희 국회 부의장은 “영국은 클림비 보고서를 계기로 사후수습이 아닌 예방중심의 아동보호 제도 개혁이 이뤄졌다”며 “특별법을 3월 국회에서 통과시켜 아동학대 시스템이 있어도 많은 정인이들을 막지 못한 근본 원인을 찾아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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