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힘들어 거리로 나왔는데…서울서만 7071건 막혔다

오경민·민서영·이홍근·조문희 기자

열린 광장에 닫힌 자유

[단독] [감염병 시대, 집회의 미래①]코로나 때문에 힘들어 거리로 나왔는데…서울서만 7071건 막혔다

경찰이 작년과 올해 코로나19를 이유로 집회 신청 10건 중 1건을 금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회·시위 장소는 자유롭게 선택 가능해야 하며, 집회를 막기 위한 차벽 설치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은 무시됐다. 그러면서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분향소 설치나 더현대서울 같은 상업시설 운영은 그대로 허가해 ‘이중잣대’라는 비판이 나온다.

집회를 ‘공공의 위협’으로 단정한 경찰

1년8개월간 집회 금지율 12.1%
2018~2019년엔 0.002~0.003%
올해 들어선 13.7%까지 치솟아

‘공공질서 위협’ 이유로 일괄 조치
헌재가 ‘위헌’ 결정했던 차벽도
지난해부터 광장에 다시 등장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난해 1월 이후 지난 8월까지 1년8개월간 집회 신고 대비 금지 통고 비율(금지율)은 12.1%에 달한다. 지난 6일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에서 받은 ‘서울시 집회 금지 통고현황’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7071건의 집회에 금지 통고했다. 2018년, 2019년 평균 0.002~0.003%에 그친 집회 금지율은 코로나19 이후 500배 이상 상승했다. 집회 금지율은 2020년 11.1%로 급등했고 2021년 들어 지난 8월까지 13.7%로 치솟았다.

금지 통고 건수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급증했다.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해 1월 경찰은 14건의 집회를 불허했다. 2월에는 59건, 3월에는 160건의 집회를 금지했다. 지난해 5월에는 금지 통고 건수가 200건을 돌파했다. 6월에는 불허된 집회가 394건으로 개최된 집회(363건)를 앞질렀다. 집회 금지가 가장 많았던 달은 지난해 8월로 597건을 기록했다. 금지율이 가장 높았던 달은 지난해 9월(22.34%)이었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월평균 집회 금지 통고 건수는 353.6건으로 집계됐다.

집회 금지의 주된 이유는 ‘공공질서 위협’이었다. 지난해부터 금지 통고를 받은 7071건 중 6827건(96.5%)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5조 제1항을 근거로 금지됐다. 집시법 제5조 제1항은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는 주최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다.

경찰은 지난해 2월, 감염병 전파 상황에서 집회를 하는 것은 집시법이 집회 금지 사유로 규정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에 해당한다고 결론내렸다. 이후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기로 계획한 ‘3·1절 국민대회’를 시작으로 지방자치단체가 방역을 이유로 금지한 집회에 대해 일률적으로 집시법 제5조 제1항을 적용해 금지를 통고했다.

10여년 전 위헌 결정을 받은 ‘차벽’도 다시 광장에 등장했다. 경찰은 지난해 10월3일 개천절 집회를 차단하겠다며 세종대로와 인도 등에 300여대의 경찰버스를 동원해 차벽을 세웠다. 이후 차벽은 광화문과 여의도 등에서 대규모 집회가 예상될 때마다 등장했다. 경찰은 최근 경찰버스와 크기가 비슷한 트레일러형 안전펜스를 집회·시위 현장 등에 시범 도입했다.

경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6월 시민들의 추모집회를 막기 위해 차벽을 만들었다. 헌재는 차벽으로 서울광장 출입을 막는 것에 “과잉금지원칙 위반”이라며 2011년 위헌 결정했다. 불법 집회 가능성이 있어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는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한다는 취지였다. 헌재는 차벽 설치는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해 취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단독] [감염병 시대, 집회의 미래①]코로나 때문에 힘들어 거리로 나왔는데…서울서만 7071건 막혔다
2016년 12월3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촛불집회에 시민들이 운집해 있다(위 사진). 코로나19 확산 이후인 지난해 10월3일 같은 장소에서 보수단체들이 예고한 집회는 경찰이 ‘차벽’으로 광장을 전면봉쇄하면서 열리지 못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연합뉴스

2016년 12월3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촛불집회에 시민들이 운집해 있다(위 사진). 코로나19 확산 이후인 지난해 10월3일 같은 장소에서 보수단체들이 예고한 집회는 경찰이 ‘차벽’으로 광장을 전면봉쇄하면서 열리지 못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연합뉴스

국회·지자체 등 특정 장소 집회 전면 금지

국회·지자체도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데 열중했다. 당초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실내외 행사 및 집회 인원 기준은 장소를 불문하고 균일했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1단계에서는 500인 이상, 2단계에서는 100인 이상, 3단계에서는 50인 이상, 4단계에서는 모든 집회 및 행사를 금지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각 지자체는 이에 더해 특정 장소에서 일괄적으로 집회를 금지하거나 집회 가능 인원을 극소수로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하거나 집회 금지를 고시했다. 거리 두기 단계가 완화되거나 확진자가 줄었다고 고시를 해제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2월26일 서울역, 광화문광장, 종로 일대 등 도심을 중심으로 특정 장소에 대해 모든 집회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지난해 8월 이후 거리 두기 단계가 1단계로 하향됐던 지난해 10월12일부터 11월23일까지(43일)를 제외하고는 서울시 전 지역에서 10인 이상 집회를 금지했다. 거리 두기 2단계에서는 100인 이상, 3단계에서는 50인 이상 집회를 금지한 복지부 수칙보다 더 강한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이 규제는 지난 7월에야 완화됐다.

서울의 자치구와 다른 광역자치단체들도 개별적으로 집회 금지를 고시했다. 서울 종로구, 동작구, 영등포구는 집회가 많이 개최되는 특정 장소를 중심으로 집회를 원천 금지했다. 인천시도 지난해 5월20일 시 청사 주변 집회·시위를 비롯한 모든 행사에 대한 집합 금지를 고시했다. 대구시는 지난해 3월7일부터 시 전역에 모든 집회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국회는 지난해 6월 집시법 11조에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국무총리공관 인근 100m 안에서는 원칙적으로 집회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아 집시법을 개정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경찰의 자의적 판단·우려만으로 국회, 각급 법원 등의 앞 100m 이내 집회나 시위를 금지할 수 있는 악법”이라고 비판했다.

헌재는 2005년 “집회·시위 장소는 집회·시위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회·시위 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만 집회·시위의 자유가 비로소 효과적으로 보장되므로 장소 선택의 자유는 집회·시위의 자유의 한 실질을 형성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전문가들 “집회 금지 일관성 없어”

집회·시위는 금지하면서
드라마 촬영 등 다른 운집은 허용
백화점 등 실내가 제재 덜하기도

전문가들 “공연·스포츠는 허용
집회만 금지하는 건 형평성 어긋
방역 핑계 삼은 정부 비판 차단”

집회 금지 조치는 일관성 없이 적용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2월19일 서울광장에서 치러진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영결식 주최 측을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같은 달 27일 서울시와 종로구는 정부서울청사 앞에 마련된 고 문중원 기수의 시민분향소 천막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강제 철거했다. 그로부터 5개월 뒤인 지난해 7월11일부터 13일까지 설치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는 철거되지 않았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분향객들이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발열체크와 방문자 기록 작성을 도왔다.

집회·시위는 금지하면서 다른 목적의 운집은 허용했다. 인천시는 지난해 5월20일 시 청사 주변 모든 집회·시위를 금지하면서 같은 날 100여명이 모인 드라마 촬영은 허가했다. 지난 9월4~5일 충청도에서 진행된 더불어민주당의 지역 순회 경선에는 지지자 수백명이 몰렸다.

실외 행사보다 ‘3밀’(밀폐·밀접·밀집) 가능성이 높은 실내 행사가 오히려 제재를 덜 받는 경우도 생겼다. 거리 두기 3단계에서 실내 결혼식에는 49인, 공연장에는 2000명까지 모일 수 있지만 같은 시기 서울시에서는 10인 이상 집회가 금지됐다. 하루 평균 20만명이 방문하는 서울 최대 규모 백화점 더현대서울의 영업은 인원 제한 없이 가능하다.

지난 6월 ‘보건사회연구’에 게재된 ‘수도권 지역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 발생 시기별 감염경로 다이나믹스’에 따르면 가장 많은 집단감염 발생 공간은 사업장(6.1%)이었다. 종교 관련(5.9%), 의료기관(4.7%), 요양 관련(2.5%) 등이 뒤를 이었다. 도심 집회 집단감염 발생은 0.4%를 차지했는데, 모두 지난해 8·15 광복절 집회 관련 사례였다. 영국 등에서는 마스크를 쓴 상태로 장시간 접촉하며 소리치거나 노래를 하더라도 밀집도가 낮고 환기가 잘되는 실외 상황이라면 전파 위험이 가장 낮은 것으로 분류한다.

최홍주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은 “과학적인 원칙만을 놓고 보면 실내보다는 집회하는 실외가 훨씬 안전하다”며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지켰을 경우 소위 말하는 ‘3밀’에서 다 벗어난 것이라 더욱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접적인 경제활동이 허용된다면 정치적 의사 표현도 당연히 허용돼야 한다”며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는 허용하면서 정치적 집회는 금지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마찬가지로 같은 실내임에도 결혼식은 49인, 공연은 2000명까지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은 근거 없는 주먹구구식 방역지침”이라며 “방역을 핑계 삼아 정부에 비판적 목소리를 못 내게 하는 것 아닌가 의문이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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