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피아

경향신문의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링크) 12월 22일자에 게재된 글입니다. 뉴스레터에는 해당 주제에 대해 추가로 읽을만한 책과 글 소개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편의 글로 하나의 깊은 영감을 드리는 <인스피아>를 구독해 주세요. 혹시 링크가 연결되지 않으면 괄호 안의 주소(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07426)로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연말이라 최근 이곳저곳에서 ‘올해의 좋은 책’을 꼽는 글이 올라옵니다. 반가운 책들이 많이 보였는데요. 다만 올해에도 역시 ‘올해의 좋은 책’과 ‘올해의 베스트셀러’는 많이 겹치진 않더라고요.

여러분은 주로 책을 어떤 기준으로 고르시나요? ‘독서 고수’라면 나만의 기준으로 책을 고르겠지만, 대체로 책을 가끔만 보는 ‘독서 초보’라면 누군가 추천해주는 책이나 눈에 익은 베스트셀러 위주로 고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예전에 바빠서 책을 좀처럼 못읽을 때는 책방에 들르면 정면 매대에 잔뜩 쌓여있는 책들에 눈이 먼저 가더라고요. 별다른 정보가 없을 때 베스트셀러를 골라드는 것은 어찌보면 낯선 곳에서 별점이 높은 음식점을 골라가게 되는 것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평점이 높은 음식점이라고 꼭 맛난 식사를 하게되는 것은 아니듯,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꼭 좋은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콧대 높은 독서가들이 무시하듯 베스트셀러라고 모두 꼭 나쁜 책도 아닙니다. 그러면 대체 우리는 베스트셀러를 어떤 기준으로 보아야 하는 걸까요?

서울 시내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매대에서 한 남성이 책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수많은 책들이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지만 진열조차 되지 못한 채 잊혀져간 책들이 훨씬 더 많죠.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시내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매대에서 한 남성이 책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수많은 책들이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지만 진열조차 되지 못한 채 잊혀져간 책들이 훨씬 더 많죠.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번 글에선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나아가 과연 좋은 책이란 무엇일지, 우리는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에 대해 다양한 결로 살펴보는 책들(박돈규 <우리시대의 밀리언셀러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프레데리크 루빌루아 <베스트셀러의 역사>, 한승혜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을 지팡이 삼아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팔리는 책엔 이유가 있다

‘밀리언셀러’와 ‘베스트셀러’의 차이를 아시나요? 통상 베스트셀러가 ‘잘 팔리는 책’ 정도의 애매한 개념이라면 밀리언셀러는 ‘100만권’이라는 구체적인 기준이 붙은 호칭입니다. 즉 ‘베스트셀러가 커피라면 밀리언셀러는 T.O.P’죠. 실제로 매년 베스트셀러는 나오지만 밀리언셀러는 흔치 않습니다.

박돈규의 <우리 시대의 밀리언셀러는 어떻게 탄생했는가>(이하 <밀리언셀러는>)는 제목처럼 밀리언셀러의 탄생 과정을 다룬 책인데요.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밀리언셀러에 오른 책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입니다. 즉, 밀리언셀러의 탄생 과정을 통해 사회상을 읽을 수 있는데요. 저자는 “밀리언셀러는 그 사회와 시대를 읽는 렌즈”라고 말합니다.

정의를 추구하는 시대, 멘토 원하는 시대가 밀리언셀러를 만들었습니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2010년 국내 번역 발간된 책인데요. 편집자는 “(많이 팔리겠다는 생각보다는) 사회에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해 계약했다”며 “1~2만권 정도만 팔려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100배 넘게 팔렸다”고 하는데요. 저자는 이 책의 발간을 앞둔 2009년 용산 참사나 노무현 대통령의 사망, 극심한 경제 불안 등으로 인해 ‘정의’가 화두가 되면서 이 책이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만약 이 책이 ‘현재(당시 2014년)’ 발간되었다면 이만한 성공을 얻을 수 있었겠냐는 물음에 편집자는 고개를 젓습니다. 즉 ‘시대’와 ‘책’이 만나 그 스파크에서 밀리언셀러가 탄생했다는거죠.

2014년에 이 책을 냈다면 어떻게 됐을까. 편집자 김윤경씨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오래 기다려주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정의와 공정에 대한 열망이 끓어넘치던 시절의 열매라는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밀리언셀러에는 시대와 타이밍이 있고 대중은 그 책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경험한다. -박돈규, <우리 시대의 밀리언셀러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멘토 시대’의 문을 연 책입니다. 당시 출판사(쌤앤파커스)의 영리한 판단과 기획이 성공을 얻은 경우였는데요. 당시 담당 편집자는 흔한 자기계발서의 유행은 이제 끝물이라는 판단 하에 다른 측면에서 접근하는 자기계발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때 편집자의 레이더에 들어온 글이 슬럼프에 빠진 제자에게 김난도 교수가 보내는 편지글(‘슬럼프’)이었죠. “난 슬럼프라는 말을 쓰지 않아. 대신 게으름이라고 하지. 슬럼프라고 하면 왠지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아서.” 당시 김난도 교수의 이 ‘쿨한 채찍질’이 커다란 성공을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멘토 유행’의 바람이 불어닥쳤는데요. 흔한 말도 어떻게 포장하냐, 스피커가 누구냐에 따라 성공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죠.

현재 시점에서 출판 트렌드를 돌아보면, 젊은이를 채찍질하는 ‘멘토 유행’ 이후 ‘힐링 유행’(‘채찍질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마터면 채찍질하며 살뻔했다’)도 한물 간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럼 지금은 뭐가 유행일까?하고 생각해보니 역시 채찍질의 귀환(‘대충 살다 골로 간다’-재테크 서적)이 아닐까 싶네요. 그러면 역시 그 다음엔 다시 ‘대충 살다 골로 가도 괜찮아’류의 책이 유행하는 걸까요. 알쏭달쏭합니다.

한편 정말 벼락같이 온 성공들도 있는데요. <칼의 노래> <연금술사> 등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봤을 땐 밀리언셀러인게 당연해보이는 책들인데도 한때 ‘시원찮은’ 책이었다는 게 외려 놀라웠습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의 경우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국내 발행됐지만 심심한 성적을 받아들었는데요. 이후 작가가 <연금술사>의 재발행을 강하게 원하면서 (신간 판권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재발행을 결정하고 우연히 엄청난 성공에 이르게 됩니다. 그야말로 버려진 복권을 줍고 보니 1등 당첨된 격이죠.

문학동네는 ‘의외로 빵터진’ 책 베스트 5위 안에 <연금술사>를 꼽고 있습니다. 한때 거의 잊혀졌던 이 책이 150만부나 팔릴 것이라고 누구도 예상치 못했죠.(왼쪽) 김훈 <칼의 노래>의 경우 평소 독서가로 유명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상깊게 읽은 책으로 알려지면서 판매량이 급물살을 탔습니다. 문학동네 공식 유튜브 갈무리, 노무현 재단

문학동네는 ‘의외로 빵터진’ 책 베스트 5위 안에 <연금술사>를 꼽고 있습니다. 한때 거의 잊혀졌던 이 책이 150만부나 팔릴 것이라고 누구도 예상치 못했죠.(왼쪽) 김훈 <칼의 노래>의 경우 평소 독서가로 유명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상깊게 읽은 책으로 알려지면서 판매량이 급물살을 탔습니다. 문학동네 공식 유튜브 갈무리, 노무현 재단

김훈의 <칼의 노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 기간 탐독한 책으로 알려지면서 큰 관심을 받았는데요. <칼의 노래>는 출간 약 7년만에 밀리언셀러를 달성하게 됩니다. 다만 이런 책들이 아무리 ‘입소문’을 잘 탔다고 해도 책 자체가 부실했다면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드는 것은 어려웠을겁니다.

<밀리언셀러는>의 매력은 ‘밀리언셀러 만드는 법’류의 출판버전 자기계발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책은 출판 시장의 안과 바깥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밀리언셀러는>이 소개하는 20권의 책엔 하나하나 부제가 달려있는데요. 예를 들면 <정의란 무엇인가>엔 ‘명문대 마케팅’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에는 ‘제목으로 우뚝 선 책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유단자’라는 부제 하에 소개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서문 일부를 인용해보겠습니다. 이는 든든한 대중 교양서가 갖는 가치를 잘 드러내주는 문구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는 지금 신화라는 이름의 자전거 타기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라. 일단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기 바란다. 필자가 뒤에서 짐받이를 잡고 따라가겠다” -이윤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서문 중

■고상한 굶주린 작가 vs 싸구려 대중작가?

대중적 관심을 얻는 데 성공하는 책과 실패하는 책의 차이는 뭘까요? 18세기에 소설 <트리스트럼 섄디>는 런던 시내에서 금을 줘도 못사고, 17세기 초 <돈키호테>는 전 유럽에서 인기가 하늘을 치솟는 바람에 무수한 ‘해적판’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오늘날 위대한 작가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스탕달, 앙드레 지드 등은 한때 ‘그저그런’ 안팔리는 작가 취급을 받기도 했죠.

프레데리크 루빌루아는 책 <베스트셀러의 역사>에서 출판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베스트셀러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앞서 소개한 <밀리언셀러는>과 어찌보면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요. <베스트셀러의 역사>의 핵심 메시지는 “많이 팔리는 책에는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루빌루아의 주장을 가장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는 결말 부분의 농담 한 구절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이런 출판계의 모험들이 자신이 어떻게 갑부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억만장자의 유명한 농담을 연상시킨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는 돈 한 푼을 주고 사과 하나를 사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그걸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서 두 푼에 팔았죠. 그 두푼으로 사과를 두개 사서는 또 잘 닦아서 너푼에 팔았습니다. 그 너푼으로 다시 사과 네개를 샀고 그런 식으로 날이 저물 때까지 계속 했습니다. 긴 하루를 보내고 지칠대로 지쳐 집에 돌아온 저는 미국에 사는 삼촌이 세상을 떠났고 저에게 20억달러를 유산으로 남겼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프레데리크 루빌루아, <베스트셀러의 역사>(이하 동일)

마치 ‘주식으로 1억 만드는 법 = 2억으로 시작한다’류의 허무개그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인데요. 그만큼 ‘베스트셀러의 법칙’을 연구하는 것이 어찌보면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루빌루아의 관점에서 보자면, 예를 들어 <정의란 무엇인가>가 당시 정의를 추구하던 시대상에 의해 성공했다고 하는 것은 ‘성공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동어반복 이상의 의미가 없으며, 동시대에 정의를 다룬 ‘다른 책’들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에 대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죠.(“물론 그 책은 있어야 할 순간에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다른 책들 역시 거기에 있었지만 갓길에 머물렀다.”) 그는 베스트셀러에 법칙이나 필연성을 부여하는 대신, 돋보기를 가져다댑니다.

저자는 ‘고상한 책’ vs ‘싸구려 책’의 이분법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아래는 흔히 ‘워스트셀러’는 곧 ‘고상한 책’이며 ‘베스트셀러’는 ‘싸구려 책’이라는 이들을 비판하는 대목입니다.

(베스트셀러 작가를 매문가賣文家로 치부하는) 문학관은 작가 역시 읽히기를 욕망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감춘다[...]요컨대 이 문학관은 팔린 책의 부수 외에는 크게 공통점이 없는 성공한 작가와 산업적 베스트셀러 제조자를 구별하지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베스트셀러엔 ‘성공한 책’과 ‘공장형 책’이 있습니다. 전자는 어떤 이유에서든 그 시대의 대중에게 널리 읽힌 책이며 이 중에는 훌륭한 책과 덜 괜찮은 책이 섞여 있죠. 후자는 팔리기 위해 만들어진 ‘글 공장’의 책들이며 여기엔 수십명의 대필작가를 두고 자신은 거의 사인만 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후예부터 시리즈 문학, 할리퀸 등의 “책을 펼칠 때 우리가 찾는 것을 찾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류의 책들이 뒤를 잇습니다. 이런 책들을 단지 잘 팔린다는 이유만으로 한 데 묶는 건 불공평할 수 있겠죠.

유럽, 영미권의 베스트셀러의 역사를 촘촘하게 엮어가는 이 책에서 제 눈에 띈 흥미로운 메시지는 두 가지 였는데요. 첫째,베스트셀러는 많이 읽힌 책이 아니라는 점. 둘째, 당대엔 ‘쪽박’찼던 작가들이 어떻게 지금은 ‘위인’으로 남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우선 첫째, 역사적으로 엄청난 베스트셀러들은 대체로 읽기 위한 책보다는 의무(종교, 정치, 교재 등) 또는 ‘체면 구매’가 대다수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베스트셀러 목록을 줄세우면 성경, 마오쩌둥 어록, 코란 등이 선두를 독차지하고 있고, 소설 <두 도시 이야기>는 7번째에야 얼굴을 내밉니다.

저자는 ‘체면 구매’에 대한 이야기에 아예 한 챕터를 할애하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체면 구매의 사례는 난해하기로 소문난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인데 이 책은 그야말로 날개돋친듯 팔려나갔지만 저자는 과연 그중 몇명이나 이 책을 제대로 읽었을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합니다. 또 과거 미국에선 ‘안읽는 베스트셀러 10위’를 선정하기도 했는데요. 스티븐 호킹의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가 상위권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정말이지 ‘짧고 쉽게’ 쓰여졌는데 문제는 그 기준이 스티븐 호킹이라서, 결과적으로 이 짧고 쉬운 책은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 정도나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사소한 문제는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데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죠. 워너북스 사장 하워드 카민스키는 <장미의 이름>에 대해 (구매자의 대부분이 읽지 않을)‘지적인 체면의 패스포트’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오늘날에도 교양서들의 경우 이런 지적 부채감과 과시욕에 의한 ‘언젠가 중고 시장에 팔릴 새책’들이 건재하죠. 참고로 <장미의 이름>은 우리나라에서도 약 80만부가 팔린 스테디셀러입니다.

2018년 알라딘이 내놓은 움베르트 에코 <장미의 이름> 특별 리커버판 이미지. 이런 책 한권쯤 책장에 꽂혀있으면 역시 뿌듯하겠죠. 비상금을 평생 숨길 수 있을지도 모르는종류의 책들이 교양 출판 시장에선 간혹 불가사의한 대박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2018년 알라딘이 내놓은 움베르트 에코 <장미의 이름> 특별 리커버판 이미지. 이런 책 한권쯤 책장에 꽂혀있으면 역시 뿌듯하겠죠. 비상금을 평생 숨길 수 있을지도 모르는종류의 책들이 교양 출판 시장에선 간혹 불가사의한 대박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둘째, 당대엔 쪽박찼던 작가들이 뒤늦게 ‘위인’이 된 사례에 대해선데요. 보르헤스의 경우 원래 아르헨티나에선 정말로 ‘안팔리는’ 작가였지만, 프랑스에서 ‘진지한 독자들’의 인정을 받으면서 역으로 아르헨티나에서도 유명세를 얻은 경우였습니다. 스탕달이나 앙드레 지드의 경우 눈물이 날 정도인데요. 지드는 <배덕자>에 대해 1902년에 300부를 찍은 뒤 몇년 후에도 그 책의 독자가 7명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스탕달의 경우에도 1815년에 출간한 <하이든, 모차르트, 그리고 메타스타시오의 생애>는 10년간 고작 127부 밖에 안팔렸고, 자비 출판한 <이탈리아 회화사>는 7년간 284부가 팔립니다. 생전에 그는 자신의 <연애담>의 한판 전체가 배에 선적됐는데, 팔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한 짐짝으로 실렸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책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한스 애빙) 속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예술 작품의 90%가 작가 사후 50년 이내에 소멸한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스탕달과 지드가 ‘마침내 시간의 힘을 이겨내고 역주행에 성공해서 어떻게 역사에 남을 위인이 되었는지’보다는 스탕달과 지드만큼이나 유명할 수 있었던, 영원히 무명으로 남은 위대한 작가들이 얼마나 많을지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루빌루아의 책을 즐겁게 읽은 또 하나의 이유는 베스트셀러의 독자, 저자, 출판시장 등을 폭넓게 다루면서도 결코 ‘나쁜 베스트셀러’의 화살을 독자에게 돌리진 않았다는 점이었는데요. 붕어빵 틀로 찍어낸 듯한 할리퀸 소설이라든지 뻔한 소리만 늘어놓는 나이든 현자의 ‘혁명 힐링책(스테판 에셀, <분노하라!>)’조차도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사람의 당연한 욕망인 것입니다.

밥 먹고 잠 자는 욕망에 선악의 딱지를 붙일 수 없듯, 이런 욕망이 좋으냐 나쁘냐를 가를 게 아니라 그 욕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죠.

“작가는 저작권인지 거짓권인지를 갖고 남루한 옷을 입은 채 자신의 다락방에 앉아 있다. 그는 죽은 후 무덤 안에서 온 나라와 세대를 다스린다. 하지만 그 온 나라와 세대는 작가가 살아있는 동안 그에게 빵을 줄 수도 있고 주지 않을 수도 있다.” -토마스 칼라일(알베르토 망겔, <서재를 떠나보내며>에서 재인용)

■그래서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당대 시대상을 보여주는 역할로서의 베스트셀러는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공장형 책’은 역시 피하고 싶죠. ‘보는 눈’이 있어서 베스트셀러 가운데서도 어떤 게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책인지, 나쁜 책인지를 알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슬프게도 책 고르는 안목이 하루 아침에 생겨나는 건 아닙니다.

한승혜의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는 이런 ‘안목’을 빌려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현재 서점에서 꽤 인기있는 베스트셀러 24권을 직접 꼼꼼히 읽어보고 그 책이 나쁘다면 구체적으로 왜 나쁜지, 좋은 점은 무엇인지를 조근조근, 매우 비객관적으로(!) 풀어냅니다.

화제의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가 허무한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의 상처에 단 하나의 반창고를 붙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는 “과거의 특정 경험을 통해 생겨나는 트라우마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경우에 따라서 그 트라우마는 단순한 ‘안좋은 기억’을 넘어 실제로 그 사람의 삶을 중요하게 결정지을 만한 일인 것입니다. 또한 이 책은 남편은 TV앞에 누워있고 가족의 도움 없이 홀로 집안일을 하는 아내에게 “(불평불만할 것이 아니라) 나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게 누구에게 ‘효과적인’ 조언일까요.

이 밖에도 <자존감 수업> <무례한 사람들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등의 자기계발, 힐링서적을 읽어내는 과정에서 저자의 사려깊은 독해는 책에 대한 독해를 넘어 현 사회에 대한 독해로 향합니다. 도대체 만병통치약처럼 쓰이는 ‘자존감’이란 무엇인가, 왜 항상 배려는 약자의 몫인가 등에 대해서요.

왜 무례한 행동을 한 것은 상대방인데 거기에 ‘웃으며’ 대처해야 하는가[...]당하는 사람은 노련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애쓰는 반면에,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려는 이들은 왜 이렇게 적은가.-한승혜,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중 <무례한 사람들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서평

이 책은 ‘제가 한번 읽어보겠다’고 대체로 중립적인 느낌의 제목을 내세웠지만, 사실 이 책의 제목으론 <제가 한번 비판해보겠습니다> 쪽이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책의 미덕은 비판할 땐 하되, 그 책의 좋은 점 혹은 의의는 객관적으로 짚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평이함이 강점이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혜민 스님의 책을 특히 선호하는 맘카페 회원들의 경우 대개는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집안을 쓸고 닦고 아이를 돌보는 와중에 길고 복잡하고 오래된 문장을 통해 삶의 비밀을 은유하는 고전이나 학술적인 지식을 포함하는 인문교양서등을 읽을 만한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읽기 편한, 어디선가 본듯한, 블로그 글같은 혜민 스님의 에세이가 인기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한승혜,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중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서평

베스트셀러에 대한 ‘가열찬’ 비판이 속을 뻥 뚫어주기도 합니다.

통상 어떤 물건에 대해서든(심지어 아보카도 껍질 까기나 가정용 가래떡 기계같이 쓸모가 수상한 것들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지 않은 리뷰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지만, 유독 책에 대한 리뷰는 더 그런데요. 이유는 첫째 책을 비판하기 위해선 책의 좋고 나쁨을 보는 안목이 필요하고, 둘째 책을 광고하면 운 좋으면 광고로 책과 돈도 얻고 독서 인플루언서로 ‘셀프브랜딩’을 할 수도 있지만 책을 비판하면 대체로 나오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중립적인 서평을 생산하는 언론사의 경우 책면에서 대체로 ‘덜 좋은 책’은 소개하지 않는 걸로 퉁치고 ‘훌륭한 책’들만 소개하곤 하기 때문에 책에 대한 양질의 비판은 더 찾아보기 힘들기도 하죠.

이 책은 ‘진지한 독자’와 ‘초보 독자’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진지한 독자는 아마도 자신이 평생 안읽을 책을 믿을만한 서평가가 대신해서 읽어 정리해준다는 이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초보 독자는 어떤 책이 나쁜 책인지, 혹은 책을 읽을 때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을지를 배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맺음말

좋은 책과 베스트셀러는 두 마리 물고기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마리 물고기는 각자 영영 다른 물길로 가버릴 수도 있고, 우연히 가는 길이 겹칠 수도 있죠. 모든 위대한 작가가 큰 영광을 얻는 것은 아니듯, 모든 진정성 있는 책이 꼭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쯤에서 “역시 인생사 알 수 없다네”란 말만 던져두고 홀연히 떠나기엔 뭔가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아마도 그 아쉬움의 정체란, 도서관 구석에서 우연히 깜짝 놀랄 정도로 훌륭한 책을 찾았는데, 그 책을 구입하고 싶어서 찾아봤더니 나온지 불과 몇년밖에 안된 책임에도 이미 절판된 책인 것을 알게 됐을 때의 씁쓸함이 아닐까 싶습니다.(인스피아에 소개한 책들, 소개하고 싶었던 책들 중에서도 그런 책들이 많습니다)

과거 한 인터넷서점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베스트셀러와 관련된 간단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그중 흥미로웠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읽고 나서 실망한 책”을 묻는 질문이었는데요. 1, 2위에 나란히 <아프니까 청춘이다> <시크릿>이 올랐습니다. 일단 ‘읽은 책’ 중에 골라야 하니 밀리언셀러가 선정되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베스트셀러 매대의 독자들도 어렴풋이 알아차린 것이 아닐까요. 이런 책들이 결국 청춘의 ‘아픔’을 물리쳐 줄 단 하나의 ‘비밀’이 될 수 없음을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책을 손에 들 여유가 없어서, 베스트셀러 매대 말고 다른 곳을 해찰하기엔 너무 피곤해서 베스트셀러 바깥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종종 실망합니다. 미국 작가 린다 티라도는 <핸드투마우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최저임금을 받을 땐 책을 읽지 않는다. 그러기엔 너무 피곤하다. 책장 위로 눈알을 굴리며 정보를 소화하는 노력조차 그저 너무 힘에 겨워서 잠들어버린다. 내게 남아 있는 그 알량한 에너지를 자기계발 같은 부질없는 것에 쓰도록 나의 뇌가 허락하지 않는다.”

베스트셀러 쏠림 현상의 이유는 ‘교양없음’이라기보단 ‘여유없음’입니다. 어디에 훌륭하고 재미난 책이 숨어있는지 알면 지친 독자들, 혹은 비독자들도 얼마든 책 앞에 앉을 수 있을 겁니다.

베스트셀러 매대 바깥을 상상할 수 없는 독자들과 도서관 구석을 유영하는 독자 사이에 더 많은 서평들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베스트셀러 매대에 놓여있지 않아도, 제목에 내가 원하는 단어가 쓰여있지 않아도, 어딘가 구석엔 반드시 나의 고민과 비슷한 결의 고민을 치열하게 해온 삶의 동료와 선배들의 글들이 있습니다. 이런 숨겨진 보석같은 책들(누군가에겐 보석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돌멩이에 불과할 수 있는)을 찾아내는 데는 조금 수고가 필요하지만 “적어도 읽고 나서 실망”할 가능성은 훨씬 줄어들겠지요. 그리고 이런 구석에 있는 책들은 베스트셀러‘만’ 팔리는 생태계에선 살아남기 힘듭니다. 베스트셀러가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 베스트셀러의 바깥‘도’ 살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책의 안과 밖에서, 쓰는 사람으로서, 만드는 사람으로서, 읽는 사람으로서 고군분투해온 모든 분들께 사랑과 존경을 보냅니다. 2021년 올 한해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연합뉴스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연합뉴스

경향신문의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링크) 12월 22일자에 게재된 글입니다. 뉴스레터에는 해당 주제에 대해 추가로 읽을만한 책과 글 소개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편의 글로 하나의 깊은 영감을 드리는 <인스피아>를 구독해 주세요. 혹시 링크가 연결되지 않으면 괄호 안의 주소(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07426)로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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