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무가당 (5)

내가 이대남·이대녀라고?

전현진 기자 최유진 PD
[2030 무가당 ⑤] 내가 이대남·이대녀라고?

“당신은 이대남·이대녀인가요?” 한 자리에 모인 20대 네 사람. 질문을 듣고 표정을 찡그린다. “그 말이 너무 싫어요.”

언론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대선후보들의 입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이대남’, ‘이대녀’가 끝없이 호명된다. “20대가 대선의 주요 변수다”와 같은 구호가 대표적이다. 경향신문과 정치 플랫폼 섀도우캐비닛이 함께 하는 ‘무가당(무(無)+당)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년들은 이 호칭이 청년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잘못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무가당 프로젝트는 1983~2003년생 100명이 참가했다.

무가당 프로젝트 멤버 중 4명의 청년들이 지난 21일 경향신문 뉴콘텐츠팀과 만났다. 이날의 주제는 젠더 이슈. 이들은 ‘젠더’라는 이슈가 갈등과 혐오를 일으키는 주제로 인식되는 분위기인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전체 맥락과는 관계없이 말 꼬투리 하나를 잡아 공격당할 수 있는 최근 분위기 때문이다.

젠더 이슈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대남과 이대녀의 갈등’을 질문하자 인터뷰에 나선 이들은 모두 엑스(X)를 그렸다. 박형우씨(25)는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는데 이대남·이대녀로 묶는게 싫다. 어떤 틀로 묶는 것 자체가 지금의 시대 감성과 맞지 않다”고 했다. ‘이대남’이라는 말이 실제 20대 남성의 삶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유일하씨(25)도 “이대남은 보수, 이대녀는 진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주변 친구들을 보면 정말 다 다르다”며 “사회 구성원을 전부 담아낼 수 없는 말이고 무수히 많은 특수한 상황들이 배제되고 무시된다”고 우려했다. 정민지씨(29)는 “물리적으로 생각하면 나는 20대 여자가 맞다”면서도 “이대남·이대녀라는 말이 양극단에 있는 의견들만 가리키는 것 같다”고 했다. 극단에 있는 이들이 20대 남성과 여성의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여겨지면서 “그 사이의 수많은 의견이 묵살당한다”고 했다.

이시진씨(27)는 “이대남·이대녀라고 하면 중산층 가정에서 수도권 대학을 나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정치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집단을 상정하는 것 같다”며 “이것이 20대의 전부인 것처럼 과대표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정치적 이권을 얻기 위한 이들이 계속 사용한다는 의심이 드는 개념이다. 이런 단어를 계속 써야할 이유가 있을까”라고 말했다.

이대남 담론를 통한 성별과 세대 갈라치기에 반대하는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회원들이 지난 2월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에서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이대남 담론를 통한 성별과 세대 갈라치기에 반대하는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회원들이 지난 2월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에서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해 3월8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페미니즘당 창당모임과 정치하는엄마들 주최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증가한 20대 여성 자살률을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해 3월8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페미니즘당 창당모임과 정치하는엄마들 주최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증가한 20대 여성 자살률을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권도현 기자

20대 여성과 남성들을 이대남·이대녀로 적당히 갈라 통칭하는 것이 갈등을 부추기고 서로를 혐오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는 게 이들의 진단이다. 여성과 남성이 서로를 향해 혐오 발언을 하며 목소리를 키우는 일부가 세대 전체를 과대표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들은 사회 현상으로 여겨지는 ‘젠더 갈등’이라는 표현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젠더갈등을 겪었는냐’고 묻는 질문에 민지씨는 “차별이나 성희롱을 직장에서 여러 번 경험했다”면서도 “젠더갈등이라는 말 자체가 잘못된 표현인 것 같다”고 했다. “갈등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어떤 선택을 놓고 고민하는 상황에서 쓰인다”며 “성차별과 성평등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상황을 ‘갈등’이라고 써도 되나 고민이 된다”고 했다.

일하씨는 “젠더 갈등이 심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우선 이 갈등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젠더 갈등이라는 말이 불분명한 의미로 확산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형우씨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 갈등이 무엇인지 조금 더 자세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간한다”고 말했다.

시진씨는 “젠더 갈등이 있는 게 아니라 젠더에 대한 폭력이 있는 것 같다”며 “젠더에 대한 폭력이라는 것은 남성, 여성, 트렌스젠더, 논 바이너리(비규정)를 가리지 않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갈등이라는 말은 젠더들 간의 다툼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조적인 폭력이 있다는 의미라고 그는 설명했다.

젠더 이슈를 두고 마음에 드는 공약을 고르라는 질문에 형우씨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의 디지털성범죄 근절에 관한 정책들을 꼽았다. 그러면서도 “젠더 관련 문제를 근본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아직 두드러지게 나타난 정책이나 공약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시진씨는 성정체성에 혼란 겪거나 하는 사람들을 위한 차별금지법, 혈연·부부 관계가 아니어도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있는 연대관계등록제 등의 정책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몇몇 후보들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민지씨는 “지지율이 높은 후보들만 생각하면 희망이 안 보인다”며 “군소 후보 중에선 김재연 진보당 대선후보의 ‘주부 국민연금’이 인상깊었다”고 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가사 노동도 경제적 노동으로 인정하고, 이런 부분이 성평등 사회로 가기 위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들은 후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을 때는 깊이 고민했다. 형우씨는 “편 가르기를 넘어 정치적 이익 여부를 떠나 정말 필요하고 옳은 일을 위해 국민들을 설득시킬 수도 있어야 한다”며 주요 대선 후보 모두에게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시라”는 말을 남겼다. 일하씨는 “공존하는 정치를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높은 자살율을 거론하며) 죽지 않는 정치를 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20대가 착취 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근본적인 체질 변화가 청년들을 위한 정치”라고 말했다.

같은 20대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민지씨는 “고생이 많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며 “갈등을 하는 이유도 더 잘 살기 위해서다. 결국 남성과 여성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니 같이 살기 위해 고민하고 더 많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시진씨는 인터뷰에 나선 이들이 남녀 2명씩 구성된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면서, 자신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논 바이너리’도 있다고 했다. 이어 “(트렌스젠더가) 차별과 혐오를 온 몸으로 받아내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지만 오래오래 살아 남아 세상이 변하는 걸 지켜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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