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셀 범죄는 외딴 섬이 아니다 독자님, 안녕하세요? 오경민 기자입니다. 낯선 생각으로 데려다주는 뉴스를 좋아해요. 독자님은 혹시 집에서 무언가 기르시나요? 저는 집에서 식물을 스무 개 정도 키워요. 하나둘 들이다 보니 순식간에 화분 개수가 늘어나 버렸지 뭐예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식물등을 켜줍니다. 선풍기도 사시사철 틀어 바람을 쐬어주고요. 여름엔 뿌리파리가 습격해 농약을 쳐줬고, 오늘 아침엔 건조함이 걱정돼 가습기를 꺼내 틀어줬어요. 식물을 기르며 느낀 것은, 무엇 하나 스스로 자라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물, 햇빛, 토양, 바람 등 그 식물이 자라날 만한 환경이 맞춰져야 비로소 자라나더라고요. 아니면 제 마음도 모르고 야박하게 꼼짝도 안 하고 세력을 뻗칠 때를 기다립니다. 최근 충격적인 여성혐오 범죄가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한 여성이 낮에 등산로를 걷다 살해당했고, 다른 여성은 짧은 머리를 했다는 이유로 일하다가 폭행당했어요. 신림역에서 여성 다수를 살해하겠다는 예고글을 올린 이도 있었고요. 전 "강간이 하고 싶어서" 여성의 목을 졸랐다는 최윤종과, "페미니스트는 맞아야 해서" 여성을 때렸다는 20대 남성, "신림역에서 한녀(한국여성) 20명을 죽이겠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20대 남성이 서로 닮아있다고 느꼈습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들을 길러냈다고도요. 이들이 고개를 내밀 수 있게 사회가 알맞은 환경을 제공한 거죠. 김수아 교수는 정부의 정책 기조도 여성 대상 폭력을 양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약 3분 분량의 칼럼을 읽고 이야기 나눠요. 🎈 오는 수요일 점선면은 오프라인 모임 준비로 휴재합니다. 목요일과 금요일 점선면Lite는 정상적으로 보내드려요. 독자님께 양해를 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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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여성가족부 예산안에서 여성폭력 방지 및 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 김수아 교수는 예산 배정은 단순히 특정 사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문제에 시간과 자원을 할애하는가를 알려주는 지표라고 말한다. ☑️ 김 교수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하며, 여성 대상 폭력 피해자 지원을 줄이는 정부가 각종 여성 혐오범죄가 범람하는 양상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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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일상을 더욱 위태롭게 하는 것들 2023.11.12.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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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신당역 여성노동자 스토킹 살인 사건' 이후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여성살해 추방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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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30일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 감축 철회 촉구 공동행동’과 정치인들이 2024년 여성가족부 예산안에서 여성폭력 방지 및 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이 대폭 감축된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정감사에서도 해당 문제가 제기되었다. 여성가족부 측에서는 정책 수행의 실효성을 따져 중복 사업을 줄이고자 예산을 감축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예산 삭감에 따라 피해자 지원이 실질적으로 어려워지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 답을 하지 못했다. 현장 활동가들은 중복 사업이라는 주장에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피해자 지원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노력해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예산 배정은 단지 특정 사업의 유무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문제에 시간과 자원을 배분하여 해결하려고 하는가를 알려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여성이 경험하는 복합적 폭력 문제를 해결하고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에서 예산을 배정하고 인력과 실행 체계를 지원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소수자에게 행해지는 사회적 차별과 폭력에 대응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예산 삭감은 효율성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폭력 문제 해결과 성차별 해소라는 보다 근본적인 가치를 무시하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는 그 유형과 양상에서 악화일로 상황에 놓여 있다. 무엇보다 여성에 대한 각종 형태의 혐오범죄가 가시화되는 상황이다. 여성 대상 폭력 피해자 지원을 줄이려는 정부의 정책 방향은 이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된다. 편의점 여성 노동자의 헤어 스타일을 빌미 삼아 폭력을 행사하는 혐오범죄가 일어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물리적 폭력범죄뿐 아니라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사이버 불링과 다양한 디지털 혐오 양식을 사용하여 특정 여성을 공격하는 행위 역시 올해 일어난 사건만 일일이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다른 한편으로는 디지털 네트워크 환경의 특성을 악용하여 취약한 여성을 착취하는 일도 계속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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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서울 관악구 등산로 강간살해 이후,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사건 장소에서 피해자를 추모하고 여성폭력을 방치하는 국가를 규탄하기 위해 행진했다. 조태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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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우리 언론은 이러한 문제를 개별적이고 파편화된 사건으로만 보는 것 같다. 이번 편의점 여성 노동자에 대한 폭력 사건을 무차별 혹은 묻지마 폭행이라고 명명하면서 CCTV 사진을 첨부하는 식으로 보도한 것에서도 단적으로 볼 수 있다. 클릭 유도가 중요한 가치가 된 현재의 뉴스 소비 환경에서 언론이 하나의 주제를 집중하여 다루는 것이 어려워진 점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언론은 사건 발생 맥락을 설명하고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여론을 환기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최근 일어난 여러 여성 대상 폭력 사건 보도가 해야 할 일은, 왜 이러한 일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지 원인을 진단하고, 이를 정부의 성평등 정책 후퇴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정부 정책에 대한 사회적 감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일련의 여성 대상 폭력 사건에 대한 보도는 해외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있어 국가의 체면이 손상되었다는 식으로 이어지는 등, 자극적 흥밋거리 취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인식을 드러내며 출범한 현 정부는 성차별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예산을 없애고 실행 체계를 무력화하고 있다. 다층적 폭력 상황에 놓인 여성 피해자를 섬세하게 돌보는 것을 어렵게 하는 이번 예산 삭감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성평등 정책 후퇴는 여성의 일상을 더욱 위태롭게 한다. 정책적 보호가 약화되는 가운데 가해자들의 폭력이 발생하게 되는 구조적 맥락을 바라보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성평등 정책 후퇴라는 정부의 신호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양산하게 되는 문제를 언론이 보다 더 집중적으로 의제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 🔎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 전문을 읽으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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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 인셀 테러>라는 미국의 여성혐오 범죄를 다룬 책을 읽었어요. 적잖이 놀랐습니다. 인터넷에서 나누는 여성혐오자들의 말들, 여성혐오를 다루는 사회의 태도가 한국과 너무도 닮아있어서요. 가까운 미래를 보는 듯했어요. 미국의 인셀*들은 온라인 사이트에 모여 여성을 어떻게 학대할지, 어떻게 능욕할지 함께 이야기합니다. ' 지인 능욕' 문화, '소라넷' 'N번방 사건' 등이 떠올랐어요. 한국에서도 디지털 성착취의 핵심은 학대와 모욕입니다. *인셀: 비자발적 순결주의자. 연애 또는 성적 파트너를 원하지만 구할 수 없다고 스스로 정의하는 사람들. 미국 남성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여성들이 매력적인 남성들과 많은 섹스를 하다가, 진짜 사랑하지 않지만 금전적 수단으로 착취할 수 있는 볼품없는 남자에게 정착한다"며 여성과 맺어진 남성들을 '베타 호구'라고 비난했습니다. 이 논리 역시 한국에서 한때 유행한 '설거지론'이나 '퐁퐁남 담론'과 닮아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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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여학생 클럽에 총기를 난사한 후 경찰과 총격전 끝에 다른 차량을 들이받고 멈춰선 엘리엇 로저의 차량.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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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는 온라인에 머물지 않고 오프라인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014년 엘리엇 로저는 "나는 아직도 동정을 못 뗐다. 모든 타락하고 건방진 금발 XX을 도륙하겠다"며 대학교 여학생 클럽에 총기를 난사했습니다. 이후 커뮤니티에는 로저를 찬양하는 이들이 득실댔고, 모방범죄들도 일어났습니다. 한국에선 아직 총기를 이용한 범죄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칼, 너클 등을 이용한 여성 폭력 범죄가 발생했거나 예고됐습니다. '관악구 등산로 성폭행 살인' 가해자는 '부산 돌려차기 강간살인미수 사건'을 보고 범행을 계획했다고 발언하기도 했어요. 사회나 언론이 인셀 범죄들을 다루는 태도도 유사합니다. 범죄자들을 '정신이상자' '짐승' '괴물'로 묘사합니다. 이들의 범죄가 극단적 여성혐오 사상에서 기인했음을 부인하고요. 다시 칼럼으로 돌아가면, 김 교수는 여성 폭력 예산을 삭감한 정부와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언론을 함께 질책합니다. "언론은 사건 발생 맥락을 설명하고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여론을 환기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며 "여성 대상 폭력 사건에 대한 보도는 자극적 흥밋거리 취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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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뒤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여성을 추모하는 글이 빼곡히 붙었다. 강윤중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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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칼럼을 읽고 반성했습니다. 사회부에 있을 때, 여성 폭력 범죄 피의자·피고인의 발언을 기사에 싣는 것을 지양해 왔거든요. '가해자의 서사를 다루지 않겠다'는 이유로 가해자의 사상을 깊이 취재하지 않거나 알고도 외면했죠. 비슷한 이유로, '설거지론'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여성혐오 담론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고 여겼습니다. '제2의 ○○○'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먼저 ○○○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가해자의 사상과 혐오 논리부터 다시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거나 ' 여성혐오란 말은 자극적'이라는 정부의 기조가 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물론이고요. <인셀 테러> 저자 로라 베이츠의 말에서도 용기와 당위를 얻었습니다. "더 이상 이런 집단을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을 타당한 논쟁의 한쪽 입장으로 인정하고 극단적인 선입견을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을 직시할 대비를 하지 않고서는 이 집단이 제기하는 실체적 위협에 맞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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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대상은 여성뿐 아닙니다.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신고하는 법이 유행처럼 공유됐습니다. 포천에서 10대들이 이주노동자를 폭행하는 일도 있었고요. 전문가들은 단속을 강조한 정부 기조가 혐오를 부추겼다고 지적했습니다. 최근 법무부 직원이 이주 여성의 목을 팔로 졸라 국내외 비판의 대상이 됐습니다. 과연 정부의 기조와 SNS의 혐오가 무관할까요. |
지난해 이상훈 서울시의원은 신당역 살인사건 가해자를 두고 "나름대로 열심히 사회생활을 했었을 것"이라며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까 폭력적 대응을 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가해자 서사'는 이런 종류는 아니겠지요. 뉴스레터 인스피아는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등을 인용해 가해자로부터 '변명'이 아닌 '진실'을 끌어내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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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정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점점 더 벌어지는 계층 간, 집단 간 이해 관계를 아우를 수 있는 길은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익명의 독자님) 📬 "지난 달 말에 기사가 올라온 뒤 2주도 채 되지 않아 김포 메가시티 논의나 공매도 금지, 전기 요금 관련된 포퓰리즘 정책이 올라오는게 참 공교롭고도 기막히게 시의적절한 주제라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본문에서 보여주고 싶어하는 내용이 댓글창에서도 일부 벌어지고 있어서, 굉장히 메타적으로 기사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찰보리빵님) 📝 "지난 점선면Lite < 🍕이탈리아가 되고 싶어?>를 읽고 보내주신 독자님 의견이에요. 레터 속 소개된 기사는 찰보리빵님께서 말씀대로 10월30일에 발행되었는데요. 이후 정부·여당이 잇따라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는 것을 보고 이 시점에서 다시 읽어볼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해 전해드리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공교롭고도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기사 원문을 보시면 41개의 댓글이 달려 있는데요, 찰보리빵님께서 말씀하신 '메타적 읽기'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시다면 직접 확인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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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면팀이 제1회 독자와의 만남을 개최합니다. '뉴스 어떻게 읽을까-나만의 점선면 그리기'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준비했어요. '강연'보단 '대화'의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점선면은 독자님들과 함께 만드는 뉴스레터니까요. 경향신문이 뒤늦게 시사 뉴스레터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뉴스를 사실-맥락-관점으로 분석하는 '점선면' 형식을 사용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그저 '독자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출발한 점선면의 기획·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드립니다. 뉴스가 많아도 너무 많은 세상, 기사를 어떻게 고르고 읽고 소화하면 좋을지 점선면팀 기자들과 함께 이야기해봐요. 참가를 원하시거나,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신청하러 가기' 버튼을 꾹 눌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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