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컷’ 여성 무차별 폭행…일상 속 퍼진 혐오폭력

전지현·김세훈 기자

심해지는 ‘젠더 백래시’

‘숏컷’ 여성 무차별 폭행…일상 속 퍼진 혐오폭력

20대 남성, 편의점 알바에
“머리 짧으니 페미, 맞아야”
여성들 분노 ‘숏컷 캠페인’

전문가 “여성 혐오 현실로”
일종의 ‘위험 신호’ 해석도
혐오 단체 실체 확인 시급

편의점 여성 아르바이트생이 20대 남성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머리가 짧은 것을 보니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폭행했다. 온라인상에서 주로 이뤄지던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백래시(반동)가 실생활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남 진주시 하대동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A씨는 지난 4일 0시15분쯤 20대 남성 B씨에게 폭행을 당했다. A씨는 술에 취해 편의점에서 행패를 부리던 B씨에게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고, 그러자 B씨가 A씨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는 등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는 당시 “머리가 짧은 것을 보니 페미니스트”라며 “나는 남성연대인데 페미니스트는 좀 맞아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자신을 말리던 50대 남성까지 폭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들은 골절상 등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공분한 이들은 SNS를 중심으로 ‘#여성_숏컷_캠페인’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짧은 머리 인증 사진을 올리며 피해자에게 연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6일 오후 4시 기준 엑스(구 트위터)에는 해당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7000여건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페미니스트면 맞아야 하나” “다시 쇼트커트할 것”며 인증 사진을 올렸다.

경향신문이 이날 통화한 학계·여성계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을 ‘페미니스트’라며 공격한 이번 사건이 일종의 위험신호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여성 혐오가 노골적인 형태로 가시화된 범죄”라고 사건을 규정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페미니스트는 학술적으로 성평등주의자라는 뜻에 불과하다”며 “그런데 한국에서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온라인을 통해 여성에 대한 분노를 부추기고 공격을 선동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대다수의 우리나라 남성들은 여성에 대해 공격적이지 않다”고 했다.

온라인상에서 페미니스트를 적대시하면서 이를 ‘검증’하려 하고, ‘페미’라며 표적이 된 이를 ‘댓글테러’ 하거나 ‘신상털기’ 하는 누리꾼은 소수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부가 내뱉는 혐오 발화가 현실에서 ‘영향이 있는 듯한’ 잘못된 효능감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게임업계에서는 일부 이용자들이 여성 종사자를 대상으로 ‘페미 검증’을 한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최근에도 여성 캐릭터 복장에서 노출이 적다는 이유로 이용자들이 항의하자 ‘페미’로 지목당한 일러스트레이터가 해고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출연자가 ‘유모차’라고 발언한 것을 성평등 용어인 ‘유아차’로 순화해 자막을 단 유튜브 프로그램에는 “페미가 묻었다”는 테러성 댓글이 달려 온라인상에 퍼지기도 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여성 혐오가 온라인을 넘어 현실에서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등 가장 큰 백래시를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혐오 정서를 방치하는 것은 이번 사건처럼 생명을 위해하는 일을 방치하는 것으로, 정부가 주도적으로 대책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가해자가 언급한 ‘남성연대’가 실체가 있는 조직인지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고 말한다. 신 교수는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조직적으로 여성에 대한 분노를 조장하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아주 위험한 현상”이라며 “성평등을 추구하는 자를 의미하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폭력을 부추기는 건 반사회적인 것으로 실체를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