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정치를 잘한 대통령은? 독자님, 안녕하세요? 낯선 생각으로 데려다주는 뉴스를 좋아하는 오경민 기자입니다. 전 점선면팀에 오기 전 문화부에서 영화를 담당했어요.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부럽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많이 배우면서 즐겁게 일했는데요, 한편으론 어느새 콘텐츠를 보는 게 일이 되어버렸던 것 같아요. 팀을 옮기고 나선 왠지 영화를 덜 보게 됐어요. 그러다 얼마 전부터 다시 주말에 영화를 한두 편씩 보기 시작했습니다. 극장에도 가지만 역시 OTT를 자주 보게 됩니다. OTT에선 주로 옛날 한국 영화를 보는데요, 한 땐 잘 나갔는데 최근 활동이 뜸한 배우들을 보면 '어, 저 사람 왜 요즘 안 나오지? 나락 갔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약이나 음주운전, 성범죄, 학교폭력에 연루된 연예인들이 활동을 장기간 못 하는 일이 워낙 많으니까요. 어떤 이들은 공식석상이나 SNS에서 한 발언이 논란을 일으켜 얼굴을 오랫동안 비추지 못하기도 하지요. 오늘은 이 '나락'을 다룬 기사를 가져왔습니다. 대중문화와 인터넷 밈을 통해 현대 사회를 설명하는 코너 ' B급 사회' 기사입니다. 고희진 기자가 썼어요. 읽는 데 3분 정도 걸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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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인에 대해 '(민심) 나락 갔다'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 사건·사고에 연루된 경우도 있지만, 일상적인 발언을 했을 뿐인데 '정치적'이라며 과도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를 포착한 <나락퀴즈쇼>가 등장했다.
☑️ 출연자들은 "저는 정치를 모른다"며 곤란해 한다. 한국 대중문화 속 인물들은 정치를 몰라야 하는 상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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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나락'과 나락 퀴즈쇼 2023.11.05. 고희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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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나락퀴즈쇼>에 참여한 래퍼 언에듀케이티드키드. 피식대학 유튜브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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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나락. 언젠가부터 문제가 되는 유명인에 대한 평가에 관용어로 쓰이는 말이다. 주로 '○○○, 민심 나락 갔다'로 쓰인다. 마약이나 음주운전처럼 비판받을 일을 저지른 이들이 이 말의 대상이 된다. 문제는 유명인의 말실수 하나 혹은 일상적인 발언들도 '정치적'이라며 과도한 비판을 받게 될 때다. 이런 흐름을 포착한 프로그램이 유튜브 피식대학 <나락퀴즈쇼>다. "cancel culture. 유명인이나 공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 논쟁이 될 만한 행동이나 발언을 했을 때,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대중의 공격을 받고 지위나 직업을 박탈하려는 캠페인의 대상이 되는 현상, 즉 나락." 마치 경고 문구처럼 이 같은 자막이 뜨며 영상이 시작한다. MC 김민수가 진지한 얼굴로 "당신도 언젠가 나락을 간다"고 말하며 게스트를 소개한다. 퀴즈가 시작된다. 태극 문양과 사괘를 복잡하게 섞어둔 여러 보기를 주며 제대로 된 태극기를 고르게 한다든가, 흔히 '히로뽕'으로 불리는 마약 '메스암페타민'을 보기에 넣어놓고 자신이 구입한 적 있는 약을 고르라는 식이다. 여기까진 '순한 맛'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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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미미미누도 <나락퀴즈쇼>에 출연했다. 피식대학 유튜브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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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가 가장 많이 당황하는 상황은 바로 이런 문제다. '가장 정치를 잘한 대통령 3명을 골라주세요.' '잼버리 사태 누구 잘못인가요' 문제가 나오자 난처해하는 게스트의 표정이 클로즈업된다. 게스트가 "정치에 대해 정말 모른다. 좌파가 뭐고 우파가 뭐고"라며 변명 같은 말을 하는 건 덤이다. 화면에 비친 연예인의 매니저가 고개를 푹 숙인다. 이런 상황에서 '웃음'조차 나락으로 빠지게 될 이유가 될까봐 MC인 김민수나 정재형, 이용주는 가능하면 무표정을 유지한다. 그렇게 이 모든 상황이 웃음 포인트가 된다. 유행하는 소재를 정책 홍보에 잘 녹여내기로 유명한 충북 충주시 유튜브의 홍보맨 김선태 주무관은 프로그램을 패러디했다. 지난달 10일 올라온 '홍보맨, 당신도 나락에 갈 수 있다' 영상이 그것이다. '충주 시민의 날은 언제일까요' 등 시 홍보에 관한 문제도 나왔지만, 영상은 '지난 시장 선거에서 누구 뽑았나요'라는 질문으로 달려간다. 문제가 나오자 눈을 질끈 감는 홍보맨의 행동이 웃음을 준다. 결국 "투표를 안 했습니다"라는 대답으로 영상이 끝난다. 나락퀴즈의 공통점은 '정치'다. 할리우드 연예인들이 시상식 등 공개적인 자리에서 정치 발언을 마다하지 않는 것과 달리 한국은 연예인의 정치 발언에 부정적이다. 양극화된 정치 지형에서 한편을 들면 다른 편은 모두 적이 되기 쉽다.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발언도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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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수 김윤아의 사례가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비판하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를 두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 "표현에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개념 없는 개념 연예인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라고 했다. 물론 이 일로 김윤아가 나락에 가진 않았다. 오히려 정치인들의 발언이 역풍을 불렀다. 가장 최근인 지난 4일 업로드된 <나락퀴즈쇼>엔 해당 프로그램을 패러디했던 김선태 주무관이 직접 출연했다. 마지막 질문은 '가장 떨어져서 아쉬운 후보는'이었다. 보기는 1번 이회창, 2번 정동영, 3번 홍준표, 4번 이재명. 김 주무관이 한 말은 역시 "저는 정치를 모르고요"였다. 모두가 정치를 말하지만, 아무도 '정치를 모르는' 상황. 대중문화 속 한국 사회다. 📝 🔎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 전문을 읽으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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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읽고 지난해 BTS의 미국 라스베이거스 콘서트를 취재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콘서트장에서 만난 팬에게 의외의 말을 들었어요. BTS를 왜 좋아하냐고 묻고 들은 대답이에요. "많은 아티스트들이 있지만 BTS처럼 공개적으로 모든 성정체성을 가진 팬들을 환영한다고 말하는 아티스트는 드물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위치를 지키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얼마나 쉬운 것인지 안다. BTS의 발언들은 굉장히 정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니 BTS는 정치적 발언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2018년 유엔 총회에서도 "여러분이 누구든, 어느 나라 출신이든, 피부색이 어떻든, 성정체성이 어떻든 여러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시기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후에는 #흑인의삶은중요하다(#BLM) 운동에 12억 상당의 금액을 기부하며 "우리는 인종차별에 반대한다. 우리는 폭력에 반대한다"고 밝히기도 했어요.
저는 이런 발언이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거나 지난 선거 때 누구를 뽑았다는 말 못지않게 정치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발언을 금기시하는 한국 대중문화계 침묵을 깨고 BTS는 소신 있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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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브래드 피트는 민주당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2020년엔 아카데미 시상식에 올라 공화당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정지윤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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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뉴스는 정말 인기가 많아요. 포털이나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가장 댓글이 많이 달리는 뉴스가 정치 분야 뉴스일 거예요. 많은 이들이 정치에 대해 한마디씩 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연예인들은 한 마디만 해도 논란에 휘말리기 십상입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반대했던 자우림 보컬 김윤아씨처럼요. 반면 할리우드에는 대통령 선거철만 되면 지지하는 후보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후원금을 전달할 정도로 정치 활동에 적극적인 스타들도 많습니다. #BLM, #Metoo 같은 사회 운동이 벌어질 때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요. 왜 이렇게 다른 걸까요?
' 연예인은 공인'이라는 시선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연예인을 정치적 의견을 가진 혹은 사회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한 개인으로 보기 보다 '공인이니 행동과 발언에 신중해야 한다'고 여기는 거죠. 이때 '공인'의 개념과 질책의 무게는 다소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정작 사전적 의미의 공인인 고위공직자들은 보다 자유롭게 발언하고 있어서요. 하지만 이것만으로 대중문화 스타들의 오랜 침묵을 설명하기는 어렵게 느껴집니다. 독자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우체통 아래 '의견 남기기' 아이콘을 누르고 생각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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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특히 여성연예인들에게는 또 하나의 금기가 있어요. 바로 담배입니다. 담배를 피우거나 가지고 있는 모습을 들켜선 안 되고, 여성 배우들은 흡연 장면을 촬영한 뒤엔 으레 '흡연 연기가 힘들진 않았냐'는 질문을 받아요.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이두나!>에는 수지가 흡연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이 연예인의 흡연을 이야기합니다. |
최근 유튜브에서 '지뢰계'를 다룬 영상을 보셨을지 모르겠어요. 한 유튜버가 홍대 경의선 책거리에 모인 탈가정청소년들이 조건만남을 한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렸습니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을 '지뢰계'로 칭하고요. 몇몇 언론이 이들을 사회적 문제로 다루며 자극적인 제목의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김송이·이예슬·최혜린 기자가 이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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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어떻게 읽을까? 지난 수요일, 점선면팀의 첫 번째 독자와의 만남 '뉴스 어떻게 읽을까-나만의 점선면 그리기'를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레터로만 만나던 독자님들을 직접 뵙고, 눈을 마주치며 대화할 수 있었던 뜻깊은 자리였어요. '뉴스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한 점선면의 탄생과 제작 비화를 솔직하게 말씀드린 시간이었는데요. 다음 주 점선면에서는 이번 만남을 아쉽게 놓친 독자님들을 위해, 그날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소개해볼까 합니다. 뉴스 읽기에 진심인 독자님들께 도움이 될 만한 점선면팀의 경험과 정보를 최대한 나눠보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 점선면에서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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