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정부

정치부 구혜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지난 10년 동안 펄에 갇혔던 세상이 한꺼번에 밀물 위로 떠오르고 있다. 새벽 6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3시 무렵에야 퇴근한다는 청와대 관계자는 “하루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다 겪고 있다”고 ‘웃으며’ 푸념했다. 한 야당 인사는 “대통령 후보감인지 늘 의아했는데 대통령감은 맞는 것 같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자칼럼]더불어민주당 정부

정권교체기엔 과거 정부 흔적 지우기가 관례였다. ‘무조건’ 차별화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출범 20일 만에 40개가 넘는 정부조직을 뜯어고쳤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ABC(Anything But Clinton·클린턴만 아니면 괜찮아)’를 밀어붙였다. 문 대통령은 외려 과거 관례를 지우며 출발했다. 곳곳에서 시대의 변화를 해석하느라 분주하다. 문 대통령 리더십에서 찾자면 “비주류이지만 주류의 가치를 만들 줄 알기 때문”(도종환 의원)일 수도, “없음의 힘을 갖고 있어서”(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일 수도 있겠다.

대선은 권력 획득의 과정이다. 이번 대선은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여정이라는 의미가 보태졌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정부’를 선언한 것에 주목한다. 국회의원부터 기초의원에 이르는 조직 자원을 갖고 있는 정당은 여론을 결집하는 통로다. 그래서 정당은 정치 영역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대표한다. 하지만 역대 정권은 정당 정부를 용납하지 않았다. 집권 여당이라도 ‘보스’(대통령)의 눈치를 봐야 했다. 새정치국민회의 조세형 총재 권한대행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해외순방길에 오르자 “이제 권한은 떠나고 대행만 남았다”고 했다. 여당이 대통령의 사당화 제물로 전락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내내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라는 오명을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고리를 끊으려 했다. 당정분리를 시도하며 “정당을 좌우하지 않는 나의 무능력, 그게 나의 정당개혁”이라고 했다. 그러나 역사상 처음 시도된 당정분리는 집권 여당의 분열로 막을 내렸다. 정당의 실패는 정권의 실패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이 배출한 후보였고, 민주당을 장악한 후보였다. 내각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인데도 민주당 정부로 불리는 까닭이다. 국정자문기획위원회도 김진표 위원장 등 당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등 주요 인선 면면을 보면 당의 가치와 철학을 국정 중심에 두겠다는 문 대통령 의지가 읽힌다. 10년의 적폐를 불과 일주일 만에 뒤집는데도 안정적이라 평가받는 것은 선거 때부터 정당이 최전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땐 국회의원들이 유세차에 오르지 못할 정도로 정당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왼쪽’ 이재명부터 ‘오른쪽’ 안희정까지 경선 때부터 정당의 역동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 대통령과 김부겸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은 한목소리로 ‘민주당 정부’를 외쳤다.

정당 정부는 대통령 의지만으론 버겁다. 정당도 변해야 한다. 당 철학을 이해하는 인물들이 성장하고, 그렇게 성장한 사람들이 공천 받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분권도 필수적이다. 김성희 정치발전소 대표는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 떼주는 ‘약한 분권’을 넘어 독립적 힘을 나눠 갖는 ‘강한 분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방의회는 예산편성권, 인사권조차 없다. 경기도는 전체 인구 4분의 1을 차지하지만 올해 예산 규모는 국가예산(약 400조원) 15분의 1 수준이다.

칼럼을 마무리할 무렵, 양정철 전 비서관 퇴장 소식이 들렸다.

문 대통령과 양 전 비서관 관계를 헤아린다면 패권 청산이라는 해석만으론 부족하다. 권력의 공공성, 양 전 비서관을 눈물로 보낸 문 대통령의 결심이었을 테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로 가는 가장 아픈 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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