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부정적인 학부모가 현저하게 많은 듯하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 만큼 알기에 그런 것 같다. 왜 그럴까?

우선 학종 주창자들의 얘기와는 달리 학종이 주는 시험 부담이 엄청나게 크다. 어쩌면 악명 높았던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넘어선다. 죽음의 트라이앵글 당시 학생들이 준비해야 하는 시험은 최대 세 종류였다. 그러나 학종은 네 종류나 된다. ①내신 ②수능(수능최저학력) ③구술면접고사 ④교과 경시대회 시험이다. 그런데 ④도 시험인가? 그렇다. 경시대회 중 영어, 수학, 국어, 사회, 과학 등의 경시대회는 명백한 시험이다. 물론 네 종류의 시험 중 2~3개만 반영하는 대학도 많다. 하지만 그것은 별다른 위로가 되지 못한다.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저학년일수록 다수의 대학을 염두에 두고 공부할 수밖에 없다.

[학교의 안과 밖]괴물 학종

무엇보다 학종은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입시경쟁의 영역으로 전부 편입시켰다. 그래서 학생의 모든 학교활동(봉사활동, 동아리활동, 독서활동, 진로활동, 학생회활동, 학급활동, 경시대회 등)은 사실상 입시경쟁이 되었다. 심지어는 장애우를 돕는 선한 활동조차도 이젠 입시경쟁이다.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잘할 수 있나? 조금 하고는 많이 한 것처럼, 부실하게 하고는 충실하게 한 것처럼 꾸미는 위선과 거짓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이것만으로도 걱정이 태산인데 학부모의 근심은 학생부 기록으로도 이어진다. 학생이 아무리 활동을 많이 해도 그것이 학생부에 빼어나게 기록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일 수 있다. 그래서 이제 학부모는 아이를 담당한 교사가 학생부 작성을 뛰어나게 잘해주는 사람이기를 기도해야 한다. 어떤 교사여야 할까? 글을 잘 쓰는, 기록에 정성을 다하는 교사면 좋겠는데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아이를 위해 과장된 기록을 서슴없이 하고, 필요하다면 거짓말도 해주는 교사여야 만족할 것 같다.

최대 네 종류의 시험과 수많은 학교활동…, 이것만으로도 입시 부담이 사상 최고인데 학종은 여기에 면접과 자기소개서까지 더한다. 그리고 이것들 모두에 대한 평가가 정성평가로 이뤄진다. 학종 주창자들은 정성평가를 최선의 평가라 예찬하지만 학부모에게는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애매모호한 평가일 뿐이다. 결국은 입시 부담만 증가한다. 물고기의 위치가 불확실할수록 그물을 더 넓게 쳐야 하는 어부처럼 학부모도 입시의 그물을 더 넓게 펼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입시를 돈과 시간이 부족한 학부모가 감당할 수 있을까? 순박한 학부모가 위선적 학부모를 이길 수 있을까? 대답은 자명하다. 대다수 학부모에게 학종은 부자에게 유리한 금수저 전형이고, 얼굴 두껍고 속 시커먼 사람에게 유리한 후흑학 전형일 뿐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학종 주창자들은 학종이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을 불러왔다고 내세운다. 좋은 일이긴 하다. 하지만 학부모는 이제 그런 활동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제 예전의 낭만적 순수성을 잃어버린 입시경쟁으로서의 힘겨운 활동들이다. 또 학종 주창자들은 학종으로 인해 학교 수업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론 아주 작은 변화일 뿐이다. 또 학종의 근본적 한계로 인해 앞으로도 그 변화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 작은 변화나마 이루어낸 교사의 고군분투는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지나친 과장과 일반화는 현실을 왜곡한다.

학부모에게 학종은 괴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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