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넘어 ‘필환경’ 정부를 바란다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크리스마스트리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구상나무의 학명은 ‘Abies Koreana’이다. 최초 발견지가 한국이고,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침엽수이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선정한 멸종위기종이다. 2018년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의 구상나무와 고산 침엽수는 일시에 죽음의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이는 다름 아닌 기후변화 때문이다. 구상나무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변화는 한반도에 111년 만의 ‘역대급’ 폭염으로 등장했다. 기온이 35도를 넘은 날이 26.1일에 달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럼에도 지난 3일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개최된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는 미국과 러시아 등의 반대로 ‘1.5도 특별보고서’를 결국 채택하지 못했다.

[NGO 발언대]‘친환경’ 넘어 ‘필환경’ 정부를 바란다

일상이 된 미세먼지는 시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환경문제 1위로 꼽힌다. 작년 대통령 취임 초기, 업무지시 3호가 미세먼지 응급 감축이었고 취임 1년 때 첫 번째 언급이 미세먼지 해결이었다. 2018년 환경부 업무보고 모두발언에서도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했다. 내년부터 시행될 특별법을 근거로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동되면, 정부와 지자체가 자동차의 운행 제한 또는 대기오염물질 배출시설의 가동을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비상시의 일시적 조치만으로 석탄화력, 교통 분야 등 미세먼지 원인자를 제거할 수 있을까.

세계 재활용쓰레기의 절반을 사들이던 중국이 수입을 중단하자 드러난 ‘쓰레기 대란’, 천일염에서 검출된 미세플라스틱, 침대 매트리스에서 확인된 1군 발암물질 라돈, 여성 필수품인 생리대의 유해성 문제 사례에서 보듯, 환경문제가 ‘지금, 여기, 나’의 생활 전면에 등장했다. 2019년 소비 트렌드의 키워드로 지목된 게 ‘필(必)환경’이다. ‘선택하면 좋은 친(親)환경이 아니라, 살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필환경 시대’라는 것이다.

기후위기와 환경의 문제가 인간 생존의 문제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수억년간 형성된 생태계가 무너지고 서식지가 파괴되어 생물들이 사라져 가는 모습, 지구가 오작동하는 징후를 우리는 생생히 목격하고 있다. 생존을 위한 체질 전환, 탄소 중독의 문명을 넘어 재생과 순환의 삶을 위한 윤리가 시급하다. 개개인이 자본주의적 과잉·과시적 소비 체제 앞에서 질문을 던지고, 소비의 함정에서 벗어나도록 서로 격려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개인의 생활습관을 바꾸라는 이야기만 하는 것은 본질을 은폐한다. 환경 변화의 결과는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의 전 의장인 라젠드라 파차우리의 말대로, “기후변화와 환경의 문제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 심지어는 부유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다”. 기후와 환경 문제는 경제와 정치, 고용이 구조화되어 떠받치고 있는 오늘의 체제를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해결할 방도가 없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추진하고 정책 패러다임을 혁신하겠다며 ‘에너지 전환’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전환은 ‘탈원전, 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에너지 공급원의 교체만을 의미하는 건 아닐 것이다. 수요관리, 에너지 분산과 분권, 이익 배분, 에너지 전환에 적절한 산업구조에 대한 모색, 사회 전반의 동시적 변화와 재구성이 필요하다.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기본원칙은 ‘생태적 지속가능성’이어야 할 것이다.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총동원’하며 더 개혁적이고 과감한 필환경 정부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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