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를 위한 변명

김광호 기획에디터

요즘 마음속을 맴도는 불안의 하나는 “나는 내셔널리스트인가” 하는 것이다. 의문이 아니라 불안이다. ‘노 저팬’의 일본 보이콧이 그리 걱정되지도 않고, 일본에 대한 정부의 ‘강 대 강’ 대응이 이상스럽지도 않다. 오히려 끈기 있게 이어지는 시민들의 ‘자발’적 불매운동에 감정이 고양되기도 한다.

[편집국에서]민족주의를 위한 변명

“애국심은 불한당들의 마지막 피난처”(새뮤얼 존슨)를 되뇌며 정치인의 “애국” 발언을 늘 의심하고, 지금도 한·일 시민들의 연대를 통한 미래를 희구하는 것을 생각하면 낯설다. 정부가 “관제 민족주의를 동원하고 있다”는 지적엔 멈칫하기도 한다. 그리 신실하지도 않았지만, 오래전 잊어버렸던 젊은 시절 운동권의 세례가 불쑥 튀어나온 것일까.

이런 불안 속을 배회하다 보면 마주하는 질문은 ‘국가’다. 국가의 실체는 있는가. 개인의 가치가 더 중요해진 21세기에도 국가는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질문이다. 세계화·정보화와 함께 국가의 경계란 그저 정치 영역에서만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은 아닌가.

일본의 실천적 지식인 다카하시 데쓰야는 “현대 세계에서 국가나 국민이라는 단위로 법적·정치적 결정이 이뤄지는 한 국가, 국민 단위의 정치적인 해결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대담집 <책임에 대하여>)고 말한다. 확연히 불온한 징후를 보이는 일본 내셔널리즘을 우려하며 고뇌를 담아 한 말이다. 이처럼 ‘국가’는 진보적 세계주의자들에겐 ‘아포리아(aporia·난관)’와 같은 문제다.

그의 말처럼 국가라는 것이 구성원들의 생활공동체로 공동의 이해관계를 다루는 단위가 되고 있다면 그 유효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근대국가의 목표가 시민의 자유와 생명·재산을 보호하는 것이었듯, 핵심은 구성원의 자유와 민생을 신장할 공동체로서 국가의 역할이 존재하는가의 여부다.

그 점에서 국가나 민족주의의 한계도 명료하다. 생활공동체로서, 구성원들 삶의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만 의미가 있다. 그것을 넘어 국가나 민족을 절대화하거나 인격화할 때 의미는 상실된다. 구성원의 자생적 의식의 발로가 아닌 정치적 수단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몹시 위험하기도 하다.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인류를 참화로 몰아넣은 1세기 전이 그러했다.

결국 내셔널리즘적 열정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지향하는 내용과 배경, 진로일 것이다. 긍·부정은 여기서 갈린다. 그럼 지금 한국사회의 ‘반일’은 긍정인가, 부정인가.

한·일 충돌의 직접 도화선은 일본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다.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한·일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모두 매듭짓겠다는 일본은 철저히 그들의 개인청구권에 대한 배상 책임을 부정한다. 소송을 한 징용 피해자들은 지금 큰 심적 부담을 느낀다. 우리 사회는 두 입장으로 나뉘어 있다. 안보 우려와 함께 정부를 향해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는 입장과 일본의 경제 조치를 부당하다고 보고 불매운동에 나선 입장이다. 어느 것이 더 피해자 개인에게 공감하는 것일까. 전자는 ‘안보를 위해 개인 희생은 일정부분 불가피하다’는 두려움은 아닌가.

일본 조치에 대한 응전이란 점에서 보면 강자의 간섭·억압에 반대하는 ‘저항적 민족주의’ 성격이 짙다. 지난 수십년간 정치·경제적 성장으로 고양된 자존감이 민족 단위로 표현되는 것이란 풀이도 들린다. 하지만 ‘반일·불매’를 주도하는 20·30대 젊은 세대들을 생각하면 민족 범주로만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그들은 앞선 세대들에 비해 훨씬 개인주의적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런 그들이 징용 피해자들에게 ‘연대’의 손을 내민 것은 ‘공정·정의’라는 그들 정체성과 닿기 때문일 수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지금 그들의 내셔널리즘을 불안해할 이유는 없다.

세계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함께 ‘경제적 신냉전’이라 할 불길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일본 도발은 그 한 부분이다. 그들이 정상국가로 주장하는 ‘메이지·쇼와 시대’ 정체성으로 회귀 조짐을 보일 때 예견된 일이다. 실체는 고작 동아시아에서 미국 대리인으로 작은 골목대장 노릇을 하려는 욕망일 테지만….

사실 걱정할 것은 ‘내셔널리스트인가, 아닌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사회의 책임 있는 세대로서 이 살벌한 시대를 살아갈 미래 세대의 국가 비전과 전략을 준비조차 못했다는 것일 게다. 굴욕의 100년 전처럼 앞선 세대들이 친미·친중식 세력주의 생존론만 우길 동안 ‘젊은 그들’은 길을 잃었다고 느낀다.

앞선 세대들은 성찰해야 한다. 청년들이 열정을 투사할 국가 정체성의 비전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공동번영, 행복하고 평등한 시민이 조합되는 어떤 지점 위에 있을 것이다. 그걸 젊은 세대의 ‘새로운 민족주의’라고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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